[대만이야기 64] 塞翁之馬(새옹지마)

김동호 객원편집위원l승인2018.11.23l수정2018.11.2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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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선택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어떤 선택은 큰 후회로 남기도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선택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떠올리는 성어가 새옹지마입니다.

대만 사범대 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시절, 우언(寓言, 우화)책에 塞翁得馬(새옹득마)라고 나왔더군요.

▲ 사진 : BAIDU 百科

옛날 북쪽 변방에 말을 잘 기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새옹이라고 불렀지요. 어느 날 새옹의 말이 마구간을 뛰쳐나가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달려와 위로를 합니다. 새옹은 슬퍼하지도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비록 말이 도망갔지만 혹시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몇 달이 지난 후, 집을 나갔던 말이 준마 한 필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축하의 말을 건넵니다. 새옹은 얼굴을 찌푸리며 “거저 얻은 이 준마가 꼭 좋은 일만은 아닐 거요.”

새옹의 아들은 이 준마를 몹시 좋아하여 즐겨 탔습니다. 어느 날 이 말을 타고 놀러 갔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맙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를 합니다. 생각과는 달리 새옹은 그저 담담하게 말합니다. “아들이 다리가 부러졌지만, 오히려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슬픔이 지나쳐 머리가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오랑캐가 대거 침략하였고, 마을 젊은이들은 대부분 전쟁에 나가 전사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때야 깨닫습니다. 새옹이 말한 속뜻의 지혜를.

당시 중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도수 높은 안경을 낀 할머니 선생님이었는데 북경어 발음이 참 좋았습니다. ‘새옹득마’라는 말이 너무 어색해서 새옹지마라고 해도 되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마도 다른 한국학생들이 많이 질문을 했던 듯, 단호하게 안 된다며 새옹실마(塞翁失馬)는 된다고 하였습니다.

최근에 대만의 30-40대 젊은이들과 고3에게 물어봤는데 이구동성으로 새옹득마라는 말은 안 쓰고, 새옹지마를 많이 쓴다고 합니다.

회남자(淮南子. 人間訓)에 실린 이 이야기는 현대에 와서「塞翁失馬 焉知非福, 塞翁得馬 焉知非禍」이라는 성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새옹이 말을 잃었다고 해서 복이 아니라고 어찌 알 수 있고, 새옹이 말을 얻었다고 화가 아니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입니다.

▲ 사진 : BAIDU 百科

결국 새옹득마, 새옹실마, 새옹지마 모두 같은 뜻으로 함께 쓸 수 있지요.

대만의 한 친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만은 중소기업들이 많아서 경쟁이 치열합니다. ‘대만이야기 1’에서 언급한 친구가 소개를 해준 고등학교 친구가 일본제품을 수입하고 있었는데, 갈수록 가격경쟁이 심해지면서 수입처를 한국으로 옮기고 싶어 했습니다.

이 친구 집안은 초콜릿 원료를 가공해서 납품했는데, 경리를 보던 뛰어난 미모의 가난한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만들고 독자적인 사업을 했습니다. 베어링 등에 들어가는 쇠구슬을 수입해서 여러 공장에 납품했지요.

아름다운 부인과는 달리 이 친구는 절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포대화상과 매우 닮았습니다. 작은 키, 대머리 그리고 배는 바다처럼 널찍합니다.

타이베이역에서 걸어갈 정도의 요지에 회사와 집을 가지고 있었고, 사업 수완도 좋아서 나름 명성과 안정을 유지하였습니다.

부인은 경리를 보면서 자금을 관리했고, 부인의 남동생은 영업을 시켰습니다. 홀로된 장모를 집에서 모셨고, 아들 둘이 있었지만 아내가 부엌에 들어가지 않아서 자기가 음식을 만든다고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미모는 자기 얼굴로 회사 달력을 만들어서 거래처에 줄 정도고, 물론 저도 직접 부인에게서 받았지요.

부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도 잘못하면 일방적으로 친구 편을 들 수 있어 생략하겠습니다.

직접적인 발단은 부인이 어떤 미국에서 온 남자 말을 듣고, 미국에 가서 네일 샵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며 돈을 요구했습니다. 친구는 싸움 중에 부인에게 손찌검했고, 부인은 남편을 고소했습니다.

회사의 탈세, 폭력, 사업상 돈이 급하면 부인에게 돈을 빌리며 써준 차용증(모두 친구가 준 돈이지만), 그리고 이혼에 관한 소송을 당해 잠적을 해야 했습니다.

평소 저뿐만 아니라 한국 친구들과 대만을 찾아도 꼭 밥을 사고 노래방에도 데려가 주었던 친구라 연락을 해서 숨어있던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타오위엔 공항에서 가까운 도시의 사촌동생 사무실에서 초췌한 모습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신문 하단에 ‘사람을 찾습니다(尋人)’ 코너에 친구의 범죄형 사진이 실려 있는 신문도 봤습니다.

위로하는 제게 오히려 안심을 시키더군요. 까오슝(高雄) 항구 부근의 창고에 있던 물건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놨으니 다시 재기할 거라고 했습니다.

또 얼마가 지나서 사무실을 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창고에 가건물을 짓고,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하나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회사도 집도 모두 부인에게 넘기고 범법자가 되어 다른 친구의 회사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제 지갑에 얼마간의 현금이 있기에 친구에게 나가자고, 냉장고 하나 사주겠다고 했더니 펄쩍 뛰며 마음은 고맙지만 자기도 돈은 있다고 합니다. 두툼한 지갑을 꺼내 현금을 보여주면서. 말이 친구지 6살이나 더 어린 저에게 면목이 없어서 그런가 하고 더는 우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대만에 갈 때마다 이 친구 지인들이 나를 보면, 네가 그 유명한 진똥하오(金東浩)냐며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아는 사람 모두에게, ‘자기가 어려울 때 찾아와준 것만도 고마운데 냉장고를 사준다고 했던 친구다. 그때 냉장고가 정말 필요했는데 염치가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돈 한 푼 안 쓰고 낯 뜨거운 인심만 얻은 경우지요.

부부가 이혼하면서 미국에서 공부하던 큰아들은 엄마와 함께하고, 둘째는 군 입대를 앞두고 가난한 아빠를 선택해서 창고에서 함께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심천에 있는 10여 년간 이 친구의 사업은 비약을 거듭합니다. 중국 공장에 직접 발주를 해서 수백 수천 가지의 다양한 베어링을 생산합니다. 독일과 일본의 대형 업체 다음으로 많은 종류의 베어링을 가진 업체로 키웠습니다.

상해 회사와 더불어 대만에서도 공장과 집을 모두 장만했지요.

2010년은 대만에서 쓰는 연호로 민국 99년이었습니다. 그즈음 많은 결혼식이 있었는데, 봄부터 아는 친구들 아들딸 결혼이 3번 열렸습니다. 이 친구 아들이 먼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아버지를 돕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권유로 한 살 많은 여직원과 결혼했지요.

결혼식장에서 혼주 인사가 있는데, 이 친구 마이크를 잡고 두세 마디 하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결국 꺼이꺼이 한참을 울다가 여자 사회자의 도움으로 감사하다는 말 겨우 한마디 하고 내려오더군요.

이제 대만 시장은 아들과 며느리가 맡아서 사업을 잘하고 있습니다. 예쁜 손녀도 얻었고요.

우리 사는 삶이란 대개 비슷하더이다. 로또 맞고 행복하다는 사람 못 봤고, 구박 덩이가 집안의 자랑이 되는 일이 다반사 아니던가요?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새옹지마입니다. 한 친구 아들이 ‘아저씨가 해주신 새옹지마라는 말을 아직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기뻤지요.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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