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옵니다. 매년 그렇지만 연말이 다가오면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행사가 열립니다. 사랑의 열매나 구세군 자선냄비가 대표적입니다. 요란하진 않지만 국군장병 위문 성금모금도 연례행사처럼 있어왔지요. 과거 독재정권에선 일괄적으로 일정액수를 정해 부서별로 걷었던 적이 있습니다. 학교마다 성금액이 비교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반강제성 성금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던 관행이 사회민주화에 힘입어 반강제성을 띤 획일적인 성금 모금이 한 때 주춤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 다수가 문제 제기를 했던 탓입니다.

▲ 교육부에서 교육청으로 내려온 국군장병 위문 성금 모금 협조 공문.학교별 모금액을 집계하여 상급관청에 기한 내에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사진 출처 : 하성환)

그런데 촛불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 학교별 성금모금이 아직도 존재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다만 '자발적 모금을 추진하되 물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 내지 협조사항이 담겨 있을 뿐 별로 변한 게 없더군요. 교육청 관료들이 이젠 이런 공문을 내려 보내지 않을 정도로 내부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가 봅니다. 이젠 이런 공문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게 현장 교사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아니 교육부 차원에서 이런 공문을 교육청으로 내려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군가 고통을 받거나 차별과 빈곤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 동시대인으로서 당연히 도와야 할 의무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기아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를 생각하고 내전으로 고통 받는 시리아를 생각하는 게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수긍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지요. 그래서 다양한 시민단체(NGO)의 활동에 공감하고 회원 가입을 하기도 합니다. 구호 활동 NGO에 일정액을 매달 기부하기도 하는 게 보통 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이지요. 그러나 연례행사처럼 시행하는 국군장병 위문 성금 모금엔 고개가 갸웃거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국군장병 위문 성금 모금은 과거 국가주의가 일사불란하게 관철되던 시절의 폐단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엔 교육청별로 그리고 학교별로 모금액이 걷히고 비교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권위주의 교육행정이 낳은 오래된 낡은 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내려온 협조 공문에도 학교별로 모금한 액수를 서울시 교육청으로 입금하게 되어 있고 기한 내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자발적 성금 모금임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논란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되 학교별 모금액을 보고양식에 기재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학교별로 비교되는 상황에 놓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금 모금은 자발성을 띠기보다 학교현장에선 눈치껏 하되 어느 정도 공개적으로 반강제성을 띠게 됩니다. 모금 금액도 획일적으로 정해지길 마련이지요. 진보교육감 시대! 더구나 촛불 정부 이후 상당히 실망스러운 공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금은 글자 그대로 성의껏 아무도 모르게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게 맞습니다. 따라서 기부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성금을 내는 것임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현행 협조 공문 형태의 국군장병 위문 성금 모금은 군대에 간 청년들의 당면 문제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형태로 바뀌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21세기 오늘날 군인들은 먹고 자는 데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일 년 한 번 걷는 위문 성금 행사를 연례행사로 치르기보다 진심으로 군대 간 청년들을 생각하고 살피는 게 더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군복무 중인 청년들이 유무형의 폭력에 노출되지는 않는지 상사로부터 갑질을 당하지는 않는지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게 절실합니다. 바로 <군대 옴부즈만 제도 도입> 등 군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관심과 참여가 더 절실히 필요하겠습니다. 독일식 군대 옴부즈만 제도는 국방감독관이 상시적으로 군대 방문 등을 통해 군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감독체계를 구축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군대 사회를 더욱 투명하게 노출시키고 일반 시민의 감시 하에 두도록 하는 제도로서 군 인권 개선을 위해 반드시 도입돼야 할 필수적인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 2002년 8월27일 오후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 폭력 근절을 촉구하며 군의문사 유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이 자식의 영정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고 있다.
▲ 2002년 8월27일 오후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 폭력 근절을 촉구하며 군의문사 유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이 자식의 영정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고 있다.

그런 제도 개선을 위한 서명운동이나 군 인권단체, 군의문사유가족협의회를 소개하고 정기적으로 후원을 권유하는 공문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겠습니다. 왜냐하면 매우 뜻 깊은 시민활동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깊은 연대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전쟁 후 군대사망자 숫자가 6만 명에 이른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심지어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34,000명이 사망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유신시대인 70년대엔 매년 1300명이 군대에서 사망했습니다.

80년대엔 매년 600-700명의 신체 강건한 장정들이 군대에서 죽어갔습니다. 당시엔 징병검사 수검자 가운데 정말로 신체가 건강한 절반 정도만 현역으로 징집돼 갔던 시절이었습니다. 소규모 국지전이나 전투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청년들이 죽어나갔다는 사실 앞에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87년 민주항쟁과 90년대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90년대엔 매년 평균 300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듭니다. 그래도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죽었습니다.

민주화 이행기인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3864명의 군인들이 죽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집권기에 100명으로 떨어지고 2014년까지 100명을 상회하다가 2015년부터 100명 아래로 줄어들었지요. 2017년엔 75명이 군대에서 사망했습니다. 민주화의 급진전으로 군대사망자가 급속히 줄어든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e-나라지표에 공개된 국방부 내부행정자료(2017)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서서도 매년 100명 넘게 죽었습니다. 문제는 100명 가까운 군대 사망자의 2/3가 '자살'이라는 사실 앞에 또다시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멀쩡한 아이들이 죽어갈까요? 소규모 전투나 국지전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사망자 가운데 60%가 넘는 군인들이 왜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요?

국방부는 군내 사망사고 원인 가운데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에 공감하면서도 통계청 자료(2016년)를 인용해 20대 일반 청년 자살률(19.9%)에 비하면 군인 자살률(8.2%)이 높지 않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군대에 간 뒤 죽어서 돌아오는 비극은 사라져야 합니다. 2011년 논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임에도 제대로 진료조차 받지 못한 채 아스피린 두 알로 죽어간 노우빈 훈련병 사건, 2014년 상급자의 잔혹한 구타 끝에 죽어간 윤승주 일병 사건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선연히 남아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체 건강한 아이를 군대에 보냈는데 죽어서 돌아온다면 그 슬픔은 온 가족을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한 젊은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족구성원의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남아 평생 가슴에 지고 가는 아픔이기 때문이지요.

전두환 정권에서 군 의문사한 최우혁 이병 묘소.(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최우혁 이병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재학 중 녹화사업으로 강제 징집돼 20사단에서 근무 중 1987년 쓰레기 소각장에서 분신자살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보안사의 위법한 권력행사로 가혹한 구타 끝에 희생된 사례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진실을 밝혀냈다.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되었다. (사진 출처 : 하성환)
전두환 정권에서 군 의문사한 최우혁 이병 묘소.(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최우혁 이병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재학 중 녹화사업으로 강제 징집돼 20사단에서 근무 중 1987년 쓰레기 소각장에서 분신자살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보안사의 위법한 권력행사로 가혹한 구타 끝에 희생된 사례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진실을 밝혀냈다.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되었다. (사진 출처 : 하성환)

1987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최우혁 이병 사건 당시 어머니는 아들을 군대 보낸 죄책감으로 스스로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습니다. 신체 강건한 청년이 군대에서 복무를 마치고 다시 건강하게 사회로 돌아오는 게 정상입니다. 그게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 보고서 『군 사망자에 대한 조사 및 심사실태 개선방안』(2013년)에 따르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차가운 냉동고에 보관된 시신이 23구에 이르고 안장되지 못한 유골이 146기에 이른다고 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이 군대 내 군기사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원통한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국방 옴부즈만 제도의 도입과 군 인권센터나 군의문사유가족협의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 그것이야말로 우리 어른들이 진정으로 국군장병을 위로하는 방식이자 그들과 연대하는 방식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 가운데 '국가를 위한 헌신에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표방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국방일보』 (2017. 6. 25)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군인사법 시행령'을 개정해 군 복무 중 사망 사건의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길을 터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억울하게 죽은 90명의 군인들이 2018년 올해 순직 처리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국가인권위나 국민권익위의 조사기록이 있을 시에 군 복무 중 사망자 전체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 순직 여부를 재심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국방일보』 2018. 6. 4.) 군대에 징집돼 가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군인들의 원통한 죽음에 대해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이자 진일보한 자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국군장병 위문 성금 모금을 현행처럼 계속 추진할 생각이라면 모금방식을 전향적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학교별로 모금액을 산정해서 보고하는 현행 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 자율에 맡기도록 모금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통상적인 시민단체(NGO)의 활동처럼 교육청이나 교육부 또는 국방부 홈페이지에 교사나 시민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항시 기부할 수 있도록 기부 메뉴서비스를 신설해 제공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훨씬 촛불정부다운 모습이자 진보교육감 시대 성숙한 민주행정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1년에 한 번 연례행사처럼 일회성 성금을 모금하는 행위보다 군대사회가 열린사회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관심과 도움을 주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시민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진정으로 국군장병들이 처한 군대 내 인권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국군장병들로 하여금 군복무에 보람과 자긍심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주주통신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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