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은퇴자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세상에 발로 차이는 게 청년실업자요, 열 집 건너 한 집에 은퇴자가 사는 세상이 왔다. 청년실업자는 알바로 살아가며 미래의 꿈을 키운다지만, 은퇴자는 포기할 꿈도 없고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아야할 꿈도 없다. 모든 게 불가능해 보이지만, 모든 게 가능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은퇴자들 앞에 놓인 삶이다.

직장생활이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지만 퇴직 이후의 삶 또한 그리 만만치 않다. 그동안 고생했다며 이제 이리 와서 편히 쉬며 즐기라고 반겨주는 이 하나 없고, 좋은 자리가 있으니 같이 일해보자는 곳도 없으며, 이러저러한 일이나 활동을 하면 될 거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이도 없다. 경험과 경륜을 활용하여 제2의 멋진 인생을 살라고 덕담을 주고받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거라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각자 스스로 자기 갈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은퇴자에게 어김없이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그 손은 은퇴자의 목에 '멍에'를 씌울 손이다. 그 손은 누구의 손일까? 그 손은 은퇴자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은근하고도 기습적으로 다가온다. 추측컨대 그 손은 은퇴자의 입장에서는 '검은 손'일 확률이 높다. '착한 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사기꾼이나 검은 유혹의 손길은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그런 유혹에 넘어갈 은퇴자는 요즘 흔치 않다. 은퇴에 대비해서 그동안 쌓은 내공이 얼마인데 넘어가겠는가?

그 손은 다행히 거친 남자의 손은 아니다. 아마도 여자의 손일 확률이 크다. 여자의 손이라고 하여 부드럽고 따스할 거라고 예상한다면 그 은퇴자는 세상을 헛 살은 것일 게다. 이제 여인의 '검은 손'이 은퇴자를 노리고 있다. 그 손이 은퇴자를 편하고 안락한 세계로 이끌 거라고 기대한다면 대단한 오산이요 엄청난 착각이다.

그 손은 은퇴자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은퇴자에게 멍에를 씌울 주인공은 바로 은퇴자의 배우자다. 은퇴자가 퇴직을 하고 어떻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고민할 즈음 아내가 본색(?)을 드러낸다. 아내는 은퇴자가 어떤 고민을 하며 대책을 세워 가는지 지켜본다. 정확히 말하면, 관찰을 하고 있다. 은퇴자가 자기의 삶만 생각하는지 아니면 아내인 자신과 더불어 어찌 지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지 유심히 살핀다. 더 나아가 직장에 있는 동안 소홀했던 가사를 돌보거나 떠맡을 의사가 있는 지까지 세심하게 관찰한다.

은퇴자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 자신의 은퇴 후의 삶과 생활에 대해서만 몰입한다. '검은 손'은 은퇴자가 몰입의 한 가운데 있을 때 기습적으로 덮쳐온다. 그 기세에 눌려 은퇴자는 넋을 놓거나 할 말을 잃기 십상이다. 은퇴자가 경제적 활동이나 사회적 활동을 알아보고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은퇴자의 허를 찌른다. 은퇴 후 아무리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잘 한다해도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 모든 게 헛수고가 될 거라며 작심하고 경고를 날린다.

배우자의 요구는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든 말든 가사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이다. 가사의 임무는 구체적이다.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빨래는 일이 세분화된다. 세탁기에 빨랫감 돌리기, 널기, 개기가 그것이다. 은퇴자들에겐 도무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업무(?)들이다. 직장 다니면서 어쩌다 한번 도와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시적인 참여와 적극적인 분담을 해달라는 것이다. 사실 '검은 손'은 희생의 손이었고, 한 평생 은퇴자를 말없이 보좌해온 착한 손이었다. 은퇴자가 그 사실을 모를 리야 있겠는가마는 사정이 딱하다.

이제 은퇴자 앞에는 아내의 분명한 요구에 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선택이 놓여 있다. 한번 말려들면 평생을 고생할 것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끝까지 못하겠다고 버텨볼지 생각해본다. 만약 가사에 참여한다면 어느 선에서 타협을 볼 것인 지까지 잠시 머리를 굴려보기도 한다. 그런데 아내의 기세가 서슬이 시퍼렇다. 안하겠다고 하기엔 명분도 약하다. 남는 게 시간인데 왜 못하느냐고 따지면 딱히 핑계 거리가 없기도 하다. 진퇴양난이다.

은퇴자는 그제야 알아차린다.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걱정하기 전에 아내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를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했어야 한다는 것을.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가끔 맛난 요리를 해주는 것으로 때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의 수고를 대가로 가정의 평화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가정의 불화를 대가로 몸의 평안을 얻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은퇴자의 앞날이 벌써부터 걱정되기 시작한다. 대체로 은퇴 후 짧으면 6개월, 길어야 1년 이내에 벌어지는 일이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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