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힘이란 무엇일까? 권력은 어떤 의미일까? 도덕 기준은 차치하고라도 법적으로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의심을 사는 권력자가 법원에서 가벼운 형벌을 받거나 무죄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광경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다. 일부 재벌 회장이 구속됐다가 징역살이하지 않고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는 광경을 텔레비전에서 보노라면, 그런 의문은 더 심해진다. 풀려나는 그들의 얼굴에 드러나는 미묘한 웃음기는 ‘너희가 나를 징역살이시킨다고? 돈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어? 돈 벌어 힘 좀 써보라니까?’라고 하는 듯하다.

▲ 이재용 ‘솜방망이 판결’, 유전무죄 부활인가(사진출처 : 한겨레, 2018.02.05)
▲ 이재용 ‘솜방망이 판결’, 유전무죄 부활인가(사진출처 : 한겨레, 2018.02.05)

2018년 2월 6일 자 신문 보도를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지 353일 만에 풀려났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혐의가 항소심에서 대거 무죄로 바뀌었다. 11월 18일 자 신문을 보니, 2003년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은 분식회계 1조 5800억 원과 배임을 사유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두산그룹도 2005년 2800억 원 분식회계 혐의로 박용오 전 명예회장과 박용성 전 회장이 나란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재벌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경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석방’으로 이름 붙여도 좋겠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은 20조 원대 분식회계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월을 선고받았지만 2008년 특별 사면됐다. 또한 이명박 정부 시절 2009년 12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한 사람만을 사면·복권한 ‘콕 찍어 한 명만 사면’이 결정되었다.

반면 사장은 실형을 받았다.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을 2012년부터 이끌었던 고재호 전 사장은 5조7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2017년 말 대법원에서 징역 9년이 확정됐다. 아마도 중규모 사업체의 사장이 이와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대형 사업체의 사장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리라는 점은 쉽게 유추된다.

높이가 각각 50m와 100m인 폭포를 상상하면, 어느 폭포 물이 더 강할까? 어느 폭포가 더 큰 물레방아를 돌릴까? 답은 뻔하다. 높이가 100m인 폭포가 50m인 폭포보다 위치에너지(potential energy)가 더 크다. 한편 힘은 정지하고 있는 물체를 움직이고,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나 운동 방향을 바꾸거나 물체의 형태를 변형하는 작용을 하는 물리량이다. 힘은 변화의 원동력이다. 높은 위치의 물일수록, 위치에너지가 클수록,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많고 힘이 세다. 또한 그 에너지는 다양한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바꿔진다. 예컨대, 수력발전은 물의 위치에너지를 발전기 터빈의 운동에너지(kinetic energy)로 변환하고 발전기 내부의 전자기유도 현상을 이용하여 전기에너지(electric energy)를 얻는 방법이다.

높은 곳의 폭포는 낮은 곳의 폭포보다 위치에너지가 커서 파괴력이 크다. 질서를 깨트리고 틀을 깨버리는 힘이 강하다. 위치에너지가 낮은 물은 그저 물길을 따라 떠나갈 뿐이지만, 위치에너지는 낮더라도 운동 에너지가 큰 홍수는 많은 사람의 삶에 생채기를 낸다. 일개 백성의 저지른 잘못은 영향력이 고만고만하지만, 위치에너지나 운동에너지가 현저하게 큰 한 나라의 재벌 회장이 저지른 행위는 광범하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힘(power)을 가진 자는, 권력자(ruler)는 평범한 사람보다 위치에너지나 운동에너지가 큰 부류이다. 그 에너지는 얼마 전에 법조계를 떠난 고위 법관이나 검찰을 변호사로 동원하여 전관예우 혜택을 누림으로 드러난다. 재벌 회장의 총에너지가 개별 대기업의 사장보다 더 큼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 차이가 작용한 결과는 현저하게 다르다. 재벌 회장은 사면·복권되거나 풀려나고, 사장은 실형을 산다. 뒤집으면,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 혐의로 실형을 회피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힘이 센 재벌 회장이 아니다. 힘은 부정부패 행위 처벌을 회피하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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