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먼저 내려가 있을게!”
다향이가 말합니다. 신발을 꿰어 신으면서 다향이가 말합니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빙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향이는 후다닥 뛰어나가고, 아빠는 물건을 챙깁니다. 작은 가방에 물병과 지갑과 전화기를 챙깁니다.

아빠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향이가 미끄럼을 타고 있습니다. 매일 타는 미끄럼인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헤벌쭉 웃으면서 미끄럼을 탑니다.

“다향아, 가자.”
다향이가 달려와 아빠 손을 잡습니다. 아빠와 다향이의 산책이 시작되었습니다. 멀리서 밤꽃냄새가 날아옵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걸어갑니다. 가로수가 줄지어 선 길을 걸어갑니다.

육교를 오르려던 아빠를 다향이가 잡아끕니다.
“아빠, 가위바위보 해야지!”
“오늘은 그냥 가지?”
다향이 얼굴이 찌푸려졌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합니다.
“싫어. 가위바위보 해.”
“빨리 미미 보러 가야지.”
“미미!”
미미라는 말에 다향이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위바위보 하고 가.”

가위바위보가 시작됐습니다. 아빠와 다향이의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먹을 움켜쥐고 있다가 ‘가위바위보’를 외치면서 손을 내밉니다. 아빠는 보자기를 내었고, 다향이는 가위를 냈습니다. 다향이가 이겼습니다. 씩 웃으면서 다섯 계단을 올라갑니다. 신이 난 다향이가 큰소리로 외칩니다.

“가위바위보.”
아빠는 또 보자기를 냈고, 다향이는 또 가위를 냈습니다. 또 다향이가 이겼습니다. 씩 웃으면서 또 다섯 계단을 올라갑니다.
"가위바위보.”
아빠와 다향이 모두 주먹을 냈습니다.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가위바위보’를 외치면서 손을 내밉니다. 이번엔 아빠가 이겼습니다. 아빠는 주먹을 냈고, 다향이는 가위를 냈습니다. 아빠가 계단을 올라갑니다. 휘파람을 불면서 올라갑니다. 다향이를 지나쳐 올라갑니다. 스무 계단이나 올라갑니다.

육교의 계단은 2단으로 되어있습니다. 1단이 스무 계단씩으로 모두 사십 계단이지요. 아빠는 단숨에 1단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다향이 볼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입도 삐죽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퉁명스런 목소리로,
“빨리 가위바위보 해.”
아빠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합니다.
“다향아. 놀이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야.”
“알아. 그러니까 빨리 가위바위보 해.”
여전히 심통 난 목소리로 다향이가 말합니다.
“가위바위보.”
아빠는 주먹을 냈고, 다향이는 보자기를 냈습니다. 다향이가 이겼습니다. 심통 난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열 계단을 올라옵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같은 계단에 섰습니다. 나란히 섰습니다. 아빠를 바라보면서 다향이가 깔깔깔 웃습니다. 웃으면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가위바위보.”
아빠는 가위를 냈고, 다향이는 주먹을 냈습니다. 다향이가 이겼습니다.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스무 계단을 올라갑니다. 계단 꼭대기에 올라선 다향이가 외칩니다.
“와! 내가 일등이고, 아빠는 꼴찌다.”
“아니야. 다향이는 일등이고, 아빠는 이등이야.”
“아니야. 나는 일등이고, 아빠는 꼴찌야.”
다향이가 혀를 내밀어 ‘메롱’하고는 육교 반대편으로 뛰어갑니다. 아빠도 뛰어갑니다. 붙잡으려는 시늉을 하면서 뛰어갑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합니다.
“와! 아빠가 일등이다.”
내려올 때는 아빠가 이겼습니다.
“괜찮아. 아빠 한 번, 나 한 번 이겼으니까! 아빠, 저거 따.”
다향이가 손으로 나무를 가리킵니다.
“저게 뭐랬지?”
“으음! 아카시아 꽃 나뭇잎.”
“땡! 그냥 아카시아 잎이지. 아카시아 꽃은 하얀색이잖아.”
“알아. 내가 아카시아 잎이라고 했잖아!”
“피! 또 거짓말.”
“빨리 따. 가위바위보 하게.”

아빠가 아카시아 나뭇잎을 땁니다. 나뭇잎 둘을 따서 다향이한테 하나를 건네줍니다. 재빠르게 이파리를 센 아빠가 묻습니다.
“아빠는 열 개(잎). 다향이 건 몇 개야?”
다향이가 나뭇잎을 셉니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가면서 웅얼거립니다.
“열세 개.”
“그럼, 열개로 맞춰.”
“알았어.”

세 잎을 떼어낸 다향이가 또 가위바위보를 외칩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걸어갑니다.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걸어갑니다. 이긴 사람이 나뭇잎을 하나씩 떼어내면서 갑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갑니다.

“야호! 내가 또 이겼다.”
“아빠. 칼싸움.”
잎이 다 떼어진 가는 줄기를 겨누면서 다향이가 말합니다. 아빠도 자세를 취합니다. 다리를 벌리고 팔을 뻗어 펜싱선수 시늉을 합니다. 그리고 칼싸움을 합니다. 한 뼘밖에 안 되는 줄기로 칼싸움을 합니다.

칼을 맞부딪치던 아빠가 외칩니다.
“머리.”
다향이가 허리를 굽혀 피합니다. 아빠의 칼을 피합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다리.”
아빠가 움찔하고 뛰어 오릅니다. 뛰어오르다가 칼을 맞습니다.
“으아악!”
칼싸움도 다향이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 뻐꾹 뻐꾹 뻐꾹……
밤꽃냄새가 코끝을 찔러댑니다. 호수 한가운데에서 분수가 솟아오릅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번지점프대가 보입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걸어갑니다. 호숫가를 걸어갑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호숫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갑니다. 돌들이 호수 가장자리에 나란히 서있습니다. 각설탕처럼 생긴 돌 의자들이 죽 늘어서 있습니다.

“아빠 나 봐!”
다향이가 돌 의자를 건너뜁니다. 깡충깡충 쿵! 깡충깡충 쿵! 토끼처럼 뜁니다. 깡충깡충 쿵! 깡충깡충 쿵!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갑니다. 다향이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혀있습니다. 송골송골 맺혀있습니다.

호수를 벗어나 산으로 향합니다. 약수터가 있는 산으로 갑니다. 약수터 근처에 키 큰 산딸기나무가 있습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산비탈을 올라갑니다. 새콤달콤한 산딸기를 생각하면서 올라갑니다. 손을 잡고 올라갑니다. 옥수수 밭을 지나갑니다. 상추와 쑥갓, 고추밭도 지나갑니다. 계란 꽃(개망초)위로 배추흰나비가 날아갑니다. 팔랑팔랑 날아갑니다. 시냇물이 재잘거리면서 여행을 떠납니다. 직박구리가 나무사이를 오가면서 노래를 합니다. 때 이른 매미울음도 들려옵니다.

다향이가 걸어갑니다. 코와 입 위로 손가락을 치켜세워 ‘쉿!’하고는 배추흰나비한테 다가갑니다. 살금살금 슬금슬금. 다향이가 손을 뻗치면 배추흰나비는 팔랑팔랑. 또 살금살금 슬금슬금. 배추흰나비는 또 팔랑팔랑. 살금살금 팔랑팔랑. 슬금슬금 팔랑팔랑……

“아빠! 아빠가 잡아봐.”
한참동안 배추흰나비를 쫒던 다향이가 아빠를 찾습니다.
아빠가 걸어갑니다. 숨을 죽인 채 배추흰나비한테 다가갑니다. 살금살금 슬금슬금. 조용히 숨을 들이마신 아빠가 숨을 멈춥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낚아챕니다.
“야호!”
아빠가 주먹을 치켜들면서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빠, 잡았어?”
“당연하지.”
아빠가 뽐내듯이 어깨를 으쓱거립니다. 그리고 배추흰나비를 다향이한테 줍니다. 환한 얼굴로 다향이가 나비를 받습니다. 검지와 중지를 펼쳐 나비날개를 잡습니다.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면서 배추흰나비를 구경합니다.

“다향아. 나비다리가 몇 개야?”
“다리? 잠깐만.”
하나 둘 셋…… 다향이가 숫자를 셉니다.
“여섯 개.”
“맞아, 여섯 개. 그러면 거미다리는 몇 개일까?”
“거미는 여덟 개지. 저번에 아빠가 가르쳐줬잖아!”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합니다.
“그런데 다향아. 나비도 놀러가고 싶지 않을까?”
“그건 당연하지! 나도 놔주려고 했어.”
다향이가 배추흰나비를 놓아줍니다.
“안녕-. 안녕 나비야-. 잘 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비탈을 올라갑니다. 두 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왼쪽 은 울퉁불퉁한 길이고, 오른쪽은 매끈한 길입니다. 아빠가 묻습니다.
“어느 쪽으로 갈까?”
“글쎄.”

그때 오른쪽 길 위로 자동차가 나타났습니다. 아빠와 다향이는 얼른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조금 걸어가던 다향이가 무언가를 가리킵니다.
“아빠, 저기.”
아빠가 다향이의 손끝을 바라봅니다.
“저기 바위가 곰처럼 생겼어.”
“정말-. 우왕! 아빠는 곰이다.”

다향이가 뛰어갑니다. 진짜 곰이라도 만난 듯 뛰어갑니다. 아빠가 쫒아갑니다. 진짜 곰이라도 된 듯 두 팔을 치켜든 채 쫒아갑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달려갑니다. 산과 밭 사이로 길게 나있는 오솔길을 달려갑니다. 앞서가는 다향이 등짝이 땀으로 젖어 있습니다.

저만치서 독경소리가 들려옵니다. 목탁 두드리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독경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다향이가 약수터로 달려갑니다. 조롱박에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십니다. 목을 축인 다향이가 새로 물을 받아 아빠에게 건넵니다. “고마워”하면서 아빠가 물을 마십니다.

다향이가 산딸기나무로 다가갑니다. 바로 그때 ‘휙’하고 미미가 나타났습니다. 바람처럼 나타난 미미가 다향이 다리에 제 몸을 비벼댑니다. 정강이에 비비고, 종아리에도 비벼댑니다. 정강이로 종아리로, 종아리로 정강이로 비벼대던 미미가 가랑이사이를 오고갑니다. 제집처럼 오고갑니다.

“아빠. 미미 좀 봐.”
다향이가 헤벌쭉 웃고 있습니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두 다리는 돌처럼 굳어 있습니다. 조심조심 미미를 만져봅니다. 살짝 만져보고는 ‘꺄!’하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조금씩 대담해진 다향이가 미미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 등을 쓰다듬고 배도 쓰다듬어 줍니다.

미미는 어제 처음 만난 고양이입니다. 다향이가 산딸기를 따먹고 있을 때 숲에서 튀어나왔지요. 그리고 다향이 종아리며 정강이에 제 몸을 비벼댔습니다. 깜짝 놀란 다향이는 울어버릴 뻔했습니다. 하지만 곧 친해졌고, 미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입니다.

“아빠. 미미 집에 데려가면 안 돼?”
고양이를 품에 안은 다향이가 말합니다.
“안 돼. 엄마는 개나 고양이를 무서워하잖아.”
아빠가 검지를 흔들면서 말합니다.
“치! 엄마는 겁쟁이야. 고양이가 뭐가 무섭다고 그래.”
“미미는 주인이 있는 고양이일거야. 야생고양이는 사람한테 다가오지 않거든. 그리고 주인을 잃어버려서 병에 걸렸을지도 몰라.”
“아니야. 집에 데려가 아빠.”

오래전부터 강아지를 갖고 싶어 하던 다향이가 아빠를 조릅니다.
“그럼, 네가 똥오줌 다 치우고, 목욕도 시키고 할 거야?”
“똥은 아빠가 치워.”
“왜? 네가 키우면 네가 다 책임져야지.”
“알았어. 똥도 내가 치울게.”
“…….”
“다향아! 우리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아빠가 강아지 사줄게. 그럼 바깥에서 키워도 되잖아. 오리랑 병아리도 키우고.”
“알았어. 빨리 이사가.”
“안녕-. 안녕 미미야-. 내일 또 만나-. 잘 있어-.”

아빠와 다향이가 산을 내려갑니다. 빈 물병에 물을 담아 내려갑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갑니다. 올라왔던 울퉁불퉁한 길 대신 매끈한 길로 내려갑니다.
“으악! 뱀이야. 아빠, 뱀!”
뒤따르던 다향이가 비명을 지릅니다.
“어디어디?”
아빠가 움찔하면서 묻습니다.
다향이가 손으로 숲을 가리킵니다. 그리고는 깔깔대면서 웃습니다.
“아빠, 속았지? 진짜 뱀인 줄 알았지?”

죽은 소나무가 길 쪽으로 뻗쳐있습니다. 뱀이 방향을 바꿔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여기저기 버섯이 피어있습니다. 머리위에는 곤충마냥 더듬이가 달려있습니다.
“에이, 깜짝 놀랐잖아. 그런데 뱀 같지는 않은데.”
“왜? 뱀이랑 똑같잖아? 황새새끼 잡아먹으려는 뱀 말이야.”
다향이가 ‘은혜 갚은 황새’이야기를 합니다.
“그건 구렁이지! 저렇게 크고 굵은 뱀이 어디 있냐? 아나콘다라면 몰라도. 그런데 진짜 구렁이 닮았다.”

호수로 돌아왔습니다. 대여섯 마리의 오리가 헤엄을 칩니다. 대장오리를 따라 나란히 호수를 가로질러갑니다. 그 위로 백로가 날고, 청둥오리도 납니다. 백로의 날갯짓은 여유가 있고, 청둥오리의 날갯짓은 매우 바쁩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걸어갑니다. 저만치 가던 아빠가 멈춰 기다립니다. 다향이는 많이 바쁩니다. 쭈그리고 앉아 노란 민들레꽃을 들여다봅니다. 둥근 민들레홀씨를 손바닥에 놓고 후우- 붑니다. 뻐꾸기소리를 흉내 냅니다. 호수를 둘러 선 울타리사이의 거미줄을 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마다 아빠를 불러 이야기해줍니다.

갈대밭을 지날 때 개구리울음이 왁자지껄합니다.
“다향아. 빨리 와.”
아빠가 다향이를 부릅니다. 갈대밭 바깥에서 부릅니다.
“잠깐만.”
다향이가 대답을 합니다. 갈대밭 안에서 대답을 합니다.

잠깐만이라고 대답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다향이는 갈대밭에서 사마귀와 놀고 있습니다. 풀잎으로 사마귀를 희롱합니다. 사마귀는 앞발을 들고 맞섭니다. 사마귀를 희롱하다 머리를 슬쩍 칩니다. 사마귀도 앞발을 내저으며 대적을 합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이리와. 아빠가 마술 보여줄게.”
아빠가 강아지풀을 뽑아들면서 말합니다.
다향이가 달려옵니다. 갈대밭에서 쏜살같이 달려옵니다.
“어떤 마술?”
“잘 봐!”
아빠가 강아지풀을 손에 쥐고 주문을 외웁니다.
- 수리수리 마하수리…… 위로, 위로 올라가라.
아빠 손안에 있던 강아지풀이 위로 올라갑니다.
“와! 아빠 어떻게 한 거야?”
아빠는 대답대신 또 주문을 외웁니다.
- 수리수리 마하수리…… 왼쪽으로 나와라.
- 수리수리 마하수리…… 오른쪽으로 나와라.
 

어찌된 영문인지 강아지풀이 아빠의 주문대로 움직입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빠,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가르쳐 줘.”
강아지풀을 손에 쥔 다향이가 재촉을 합니다.
“다향아. 강아지풀은 털이 한쪽 방향으로만 나있어. 그래서 주먹을 조금씩 쥐었다 폈다 하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야.”
“정말이야?”
“당연하지! 너도 한번 해봐.”
강아지풀을 쥔 다향이 손이 조몰락조몰락 합니다. 조몰락조몰락 할수록 강아지풀이 움직입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입니다.

“그런데, 아빠.”
“왜?”
“내 건 왜 자꾸 위로만 올라가? 아빠는 주문대로 움직이는데.”
아빠가 너털웃음을 웃습니다.
“그건 손 방향을 바꿔주면 돼지. 잘 봐!”

-수리수리 마하수리…….
아빠가 시범을 보입니다. 다향이가 따라합니다. 아빠 옆에 서서 똑같이 따라합니다.“아하! 이렇게 하는 거구나.”

어느새 개울에 도착했습니다. 물놀이 하는 아이들 소리로 왁자그르르합니다. 저마다 손에 병을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병을 들고 있는 아이도 있고, 유리병이나 깡통을 들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병을 들고 다니면서 올챙이를 잡습니다. 다슬기를 잡습니다. 조금 큰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습니다.

개울 건너 놀이터는 한산합니다. 햇살만이 가득합니다. 어른 두엇이 아기들과 놀고 있습니다. 기저귀를 찬 아기가 미끄럼을 탑니다. 어른 무릎에 앉아 탑니다. 어른 손을 잡고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어떤 아기는 그네를 탑니다. 역시 어른 무릎에 앉아 그네를 탑니다.

개울과 놀이터 사이에 나무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개울과 놀이터 사이에 그늘이 있습니다. 그 그늘아래 돗자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돗자리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돗자리 위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과일을 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빠! 저거.”
다향이가 용기를 가리킵니다. 물을 첨벙거리면서 다른 아이들의 용기를 가리킵니다. 아빠가 손을 들어 가리킵니다. 재활용품수거통을 가리킵니다. 다향이가 고개를 젓습니다.
“아빠가 갖다 줘.”
아빠가 플라스틱 병을 주워 옵니다. 병 안을 헹구어 다향이한테 건네줍니다. 다향이가 병을 받으면서 물을 끼얹습니다. 아빠한테 물을 끼얹습니다.
“으! 차가워.”
소스라치게 놀란 아빠가 황급히 몸을 돌립니다. 그러다가 한쪽 발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게 뭐야?”

다향이가 웃습니다. 좋아라고 웃습니다. 깔깔대는 웃음이 햇살처럼 퍼져나갑니다. 젖은 바지를 들어 올리는 아빠를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아빠도 물을 뿌립니다. 다향이한테 물을 뿌립니다. 손으로 물총을 만들어 물을 쏩니다, 다향이한테 쏩니다.
“그만, 그만. 그만해.”
다향이가 외칩니다. 손사래를 치면서 외칩니다.

물싸움이 끝났습니다. 옷이 젖었습니다. 둘 다 옷이 젖었습니다. 아빠는 개울 밖으로 나갑니다. 옷을 말리러 나갑니다. 다향이는 개울에 남았습니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남았습니다. 몹시 더운 초여름입니다.

아빠가 벌떡 일어납니다. 옷이 구덕구덕해졌을 때입니다. 나무그늘아래 앉아있던 아빠가 벌떡 일어나 무언가를 지켜봅니다. 한참동안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꼼짝 않던 아빠가 몸서리를 치면서 팔꿈치를 때립니다.

- 까르르…….
다향이가 웃고 있습니다. 강아지풀을 들어 보이면서 웃고 있습니다.
“에이! 벌렌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아빠. 뭐해?”
웃음을 그친 다향이가 묻습니다.
“이것 좀 봐.”
아빠가 손으로 아빠의 눈앞을 가리킵니다.
“어! 애벌레잖아.”
말을 마친 다향이가 나뭇가지를 주워듭니다.
“애벌레 아니야.”
“그럼 뭐야?”
아빠가 다향이를 안아 올리면서 말합니다.
“잘 봐. 자벌레잖아.”
“어어. 진짜.”

자벌레가 줄에 매달려있습니다. 거미줄처럼 투명한 줄이 나뭇가지위에서 내려와 있습니다. 한 올의 줄에 매달린 자벌레가 이리저리 몸을 뒤채면서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다향이가 나뭇가지를 휘두르려고 합니다. 정의의 기사라도 된 듯 휘두르려고 합니다.

“안 돼, 다향아.” 아빠가 막습니다. 손을 뻗어 다향이를 가로막습니다.
“왜? 거미줄에서 풀어줘야지.”
“그냥 놔둬. 저건 거미줄이 아니라 자벌레 몸에서 나온 거야.”
“정말?”
“그래, 맞아. 자벌레는 다리가 머리하고 꽁지에만 있어서 저런 식으로 움직이기도 해.”
“아, 그렇구나!”
“그래. 저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거니까 우린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돼.”
아빠와 다향이가 자벌레를 지켜봅니다. 자벌레가 점점 더 높이 올라갑니다. 곰질곰질하던 자벌레가 나뭇잎사이로 사라졌습니다. 다향이가 서 있습니다. 넋이 나간 듯 서있습니다.

“다향아. 물고기 많이 잡았어?”
“아니. 올챙이하고 다슬기만 잡았어.”
다향이가 플라스틱 병을 들어 보이면서 말합니다.
“올챙이 다섯 마리, 다슬기 아홉 마리.”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이제 집에 갈까?”
“응! 빨리 가.”
다향이가 신이 나서 말합니다.

“올챙이하고 다슬기는 놔줘야지.”
“왜? 내가 키울 건데.”
“다향아. 그거 가져가봐야 다 죽어. 그러니까 놔주자.”
“아니야. 올챙이 키우면 개구리 되잖아. 유치원에서 다 해봤어.”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다향아. 다향이는 동물원에 갇혀있는 사자나 호랑이를 보면 어때? 행복해 보여?”
“아니.”
다향이가 심드렁하게 대답합니다.
“그럼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들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
“그건 바로 자유가 없기 때문이야.”
“알았어. 놔주면 되잖아.”

개울로 내려간 다향이가 플라스틱 병을 뒤집습니다. 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올챙이도 쏟아집니다. 다슬기도 쏟아집니다. 올챙이가 꼬물꼬물 헤엄을 칩니다. 앞서가던 다향이가 빈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품수거통에 넣습니다.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집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걸어갑니다. 호숫가를 따라 걸어갑니다. 물에 젖은 신발이 절거덕절거덕합니다. 뭔가를 주워 먹던 다람쥐가 조르르 나무위로 올라갑니다. 서너 마리의 오리가 뭍에서 햇볕을 쬐고 있습니다. 다향이가 달려가서 공연히 발길질을 합니다. 아까부터 말도 없습니다.

부처꽃밭을 지나 번지점프장이 눈앞에 들어옵니다.
“다향아.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을까?”
다향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말없이 아빠를 바라보면서 끄덕입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놀이터에서 놀다가자.”
“내 마음대로 골라도 돼?”
“그래. 네 맘대로 골라 봐.”
“아빠. 나 먼저 갈게.”
다향이가 냉큼 뛰어갑니다. 번지점프장 안에 있는 가게로 뛰어갑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놀이터 옆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아빠. 이거 봐.”
다향이가 혀를 쑥 내밀어 보입니다. 혓바닥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어때?”
“귀신같아.”
다향이가 낄낄거립니다. 귀신같다는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댑니다.
“불량식품 먹으니까 좋아?”
“응! 나는 세상에서 불량식품이 제일 맛있어.”
- 으이그. 아빠가 다향이한테 꿀밤먹이는 시늉을 합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걸어갑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갑니다.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고 갑니다. 개울을 따라 내려갑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오갑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리들이 헤엄을 칩니다. 청둥오리 두 마리가 자맥질을 합니다. 뾰족한 꽁지를 하늘로 치켜세우고 물고기를 잡습니다. 검은 물잠자리가 납니다. 수초 사이를 날아다닙니다. 두꺼비가 기어갑니다. 풀이 수북한 길섶 사이로 기어갑니다.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길섶에 계란 꽃이 피어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토끼풀 꽃도 피어 있습니다.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아빠가 계란 꽃을 엮어 나갑니다.
“아빠. 뭐 만들어?”
“다향이 왕관.”
“왕관?”
“그럼 나는 아빠 왕관 만들어야지.”
아빠가 계란 꽃을 엮어 나갑니다. 다향이도 엮어 나갑니다. 다향이 왕관이 다 만들어졌습니다. 다 만든 왕관을 아빠가 다향이 머리 위에 씌워줍니다. 왕관을 쓴 다향이가 눈부십니다.

“아빠. 나는 잘 안 돼.”
“왕관은 어려우니까 토끼풀 꽃으로 아빠 반지 만들어 줘.”
“좋아.”
다향이가 토끼풀 꽃으로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다 만든 반지를 아빠 손가락에 끼워줍니다. 아빠 손이 환해집니다.

아빠와 다향이가 걸어갑니다. 꽃으로 만든 왕관을 쓴 다향이와 꽃반지를 낀 아빠가 걸어갑니다.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재밌게 잘 놀았다.”

*분당 율동공원 근처 산책길을 그린 글입니다(다향이 일곱 살 때).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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