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넋두리[南瓜歎]

출처 : 다산시문집 제1권

 

궂은비 열흘 만에 여기저기 길 끊기고 / 苦雨一旬徑路滅
성 안에도 시골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져 / 城中僻巷煙火絶
태학에서 글 읽다가 집으로 돌아와 / 我從太學歸視家
문 안에 들어서자 시끌시끌 야단법석 / 入門譁然有饒舌
들어보니 며칠 전에 끼니거리 떨어져서 / 聞說罌空已數日

▲ 출처 : 한겨레, 호박죽. 누구에게는 간식이요, 누구에게는 생명의 양식.


호박으로 죽을 쑤어 허기진 배 채웠는데 / 南瓜鬻取充哺歠
어린 호박 다 땄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 早瓜摘盡當奈何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열매 아직 안 맺었네 / 晩花未落子未結
항아리만큼 커다란 옆집 밭의 호박 보고 / 隣圃瓜肥大如瓨
계집종이 남몰래 그걸 훔쳐 가져와서 / 小婢潛窺行鼠竊


충성을 바쳤으나 도리어 맞는 야단 / 歸來效忠反逢怒
누가 네게 훔치랬냐 회초리 꾸중 호되네 / 孰敎汝竊箠罵切
어허 죄 없는 아이 이제 그만 화를 푸소 / 嗚呼無罪且莫嗔
이 호박 나 먹을 테니 더 이상 말을 말고 / 我喫此瓜休再說
밭주인에게 떳떳이 사실대로 얘기하소 / 爲我磊落告圃翁


오릉중자 작은 청렴 내 아니 달갑다네 / 於陵小廉吾不屑
나도 장차 때 만나면 청운에 오르겠지만 / 會有長風吹羽翮
그게 되지 않으면 금광 찾아 나서야지 / 不然去鑿生金穴
만 권 서적 읽었다고 아내 어찌 배부르랴 / 破書萬卷妻何飽
밭 두 뙈기만 있어도 계집종 죄 안 지었으리 / 有田二頃婢乃潔

 

O, 오릉중자 : 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진중자(陳仲子)를 말한다. 귀족의 자제로 지나치게 청렴결백하여 자기 형이 받은 녹을 의롭지 않은 것이라 하여 먹지 않으며 자기 어머니가 만든 음식도 먹지 않고, 아내와 함께 오릉현으로 가서 자기는 신을 삼고 아내는 길쌈을 하면서 살아갔다. 《孟子 滕文公下》

ⓒ 한국고전번역원 | 송기채 (역) | 1994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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