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산장군의 맏손자 최윤주

최성주 주주통신원l승인2018.12.05l수정2018.12.09 21:0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지난 7월 5일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최운산장군 순국 73주기 추도식에서 맏손자인 큰오빠는 참석해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그동안 직계 손자 손녀인 우리가 부족하여 할아버지 최운산장군과 만주 무장독립군의 삶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음을 자책했다. 아니 오히려 그 부담감을 떨쳐버리려고 긴 세월 동안 최운산장군과 봉오동 독립전쟁의 역사를 외면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했다.

▲ 최운산장군 순국 73주기 추도식에서 후손 인사말 하는 최윤주

가톨릭 사제가 되고 싶었던 큰오빠는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접었다. 자식들이 무엇을 하던 언제나 존중해 주셨던 아버지도 큰아들에게만은 이런저런 기대를 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큰 아들이 육사에 진학해 군인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큰오빠는 쿠데타로 정권을 유린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육사 진학을 포기했다. 맏아들이란 부담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큰오빠는 자신의 이상형보다 어머니가 안 계신 우리 집안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배우자를 선택했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인가. 큰오빠는 결혼 후 곧 분가했고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해외지사에 근무했다. 어머니 없는 가정을 책임지고 싶었던 장남, 큰오빠는 세월이 흘렀어도 그 부채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난 2015년 작은오빠와 막내 동생,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봉오동을 방문하고 봉오동 선산에서 증조할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서 돌아왔다. 우리와 함께 가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동행하지 못하고 공항에 마중 나온 큰오빠에게 얼른 그 영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바로 영상을 틀었다. 큰오빠는 숲에 가려져 있던 증조할아버지의 산소가 풀을 베어내자 제 모습을 찾는 장면과 증손자인 우리가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심정이 어떨지 잘 알기에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눈물이 났다. 우리는 얼른 봉오동에서 만난 6촌 형제들의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우리 5남매가 모두 봉오동을 찾아 증조부 묘소에 비석을 세워드리고 성묘를 드렸다. 아마 큰오빠는 그날 이후에야 마음의 짐을 조금은 벗어버릴 수 있었을 게다. 큰오빠는 답답하리만큼, 흔들리지 않는 나무 같은, 잔잔한 호수 같은 정중동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 2016년 10월 증조부 최우삼 비석 제막식 후 

지난 7월 5일 최운산장군 순국 73주기 추도식 감사 인사의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운산장군의 아들 최봉우(최치영)의 큰아들 최윤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김성곤 국회 사무총장님을 비롯한 내 외빈과 참석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최운산장군의 맏손자로 이 자리에 서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 하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회와 감동이 밀려옵니다.

올해로 일흔 살이 된 저는 1949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선친께서는 평양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하셨습니다. 저는 두 살 때인 1951년 1·4후퇴 때 평양에서 거제도까지 걸어서 내려오신 부모님의 등에 업혀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머물다가 선친께서 부산으로 나와 정착하셨기에 저도 피난민의 가족으로 부산에서 성장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라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평양에서 살 때 저희 부모님과 할머님께서는 저를 데리고 평양비행장 근처 할아버님 묘소를 자주 찾아뵙고 성묘를 드렸습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 몸이 너무 허약해서 남이 볼세라 포대기에 싸서 다닐 정도였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면서도 손자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할아버지 묘소 근처에서 발견한 뱀을 잡아 먹이고 나서 제 몸이 건강해졌다며 아마도 최운산 장군께서 장손을 위해 뱀을 보내주신 것 같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습니다.

오늘까지 큰 문제없이 제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도 다 할아버님의 음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있을 때 통일이 될 수 있다면 아니 자유롭게 왕래만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면 평양에 가서 할아버지 최운산장군의 묘소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희망적으로 급변하는 남북의 정세를 보면서 그 바람이 어쩌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장군의 아들로 자라셨던 저희 선친께서는 우리 집안은 무인 집안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당신이 무인의 길을 걷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셨습니다. 사실 선친께서는 제가 육사를 나와 군인이 되기를 바라셨는데, 저는 5.16쿠데타로 군인이 민주주의와 국권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고 그 세력의 하수인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평범한 시민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맏손자인 제가 부족해서 오랫동안 할아버지 최운산장군의 역사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늘 죄송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할아버지 최운산장군과 봉오동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형제들은 모두 간도 지역 고토 회복의 꿈을 지니셨던 증조할아버지 최우삼과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던 할아버지 최운산장군의 역사를 바로 알려야겠다는 소망을 오랫동안 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섯 남매가 모두 60, 70을 바라보고 나서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직접 사료를 찾고 가족사를 통해 전해진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뜻에 동참해 주신 역사학자들을 만나면서 기념사업회를 창립할 수 있었고, 작년에 처음으로 공식 추도식을 올렸습니다.

올해 국립현충원에서 최운산장군의 추도식을 올리는 마음은 정말 남다릅니다. 만주 봉오동에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세운 첫 군대 <대한군무도독부>를 창설하신 최운산장군의 삶을 이곳 현충원에서 기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라도 추도식을 국립현충원에서 올릴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돌아가신 선친께 이제야 자식 노릇을 한 것 같습니다. 윤경로 이사장님을 비롯한 기념사업회 임원 여러분께 저희 선친을 대신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만주의 독립운동 역사를 바로잡을 때까지 후손으로서 할 수 있는 몫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빈 여러분과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큰오빠의 말처럼 우리 형제들은 이제는 더 이상 모르는 채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미룰 수 없는 역사의 호명 앞에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뒷걸음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불려 나온 것이 아니라 기꺼운 응답이었다. 우리 형제들이 함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최운산장군의 만주 무장독립전쟁을 재조명하는 일은 일본강점기를 살았던 선조들의 저항정신을 엿보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란 것이다.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던 그분들의 역사가 간직한 민족적 자부심을 우리 세대가 지금이라도 찾아 공유하고 다시 후세대에 전해주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그 치열하고 아름다웠던 선조들의 무장투쟁이 왜곡되고 축소된 채로 묻어두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매 순간의 어려움을 넘어서고 있다.

▲ 봉오동 증조부 묘소에 첫 절을 올리는 우리 형제들

비틀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후손들의 숙제로만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지금까지 우리 윗세대의 어른들은 무기력하게 일본강점기를 보냈다고, 몇몇 개인적인 의열사건이 있었을 뿐,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존해 아무런 노력 없이 민족의 해방을 거저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일본강점기 우리 선조들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고, 온 일생을 걸고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저항하고 투쟁했다.

만주의 독립전쟁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이러한 식민사학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시작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최성주 주주통신원  immacoleta@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성주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참여소통 데스크  |  전화 : 02)710-0093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미경, 박효삼, 서기철, 심창식, 안지애,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동호, 김태평, 김혜성,허익배
Copyright © 2018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