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이야기 7 : 맥길에서 살아남기

이지산 주주통신원l승인2018.12.05l수정2018.12.05 12:0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눈이 펑펑 오는 날 실험실에서

시원하고 쾌적한 몬트리올 가을이 지나갔다. 나는 추위를 몹시 타서 몬트리올 겨울이 무서웠다. 아니나 다를까 11월부터 이른 겨울이 시작되었다. 11월 내내 눈과 비가 반복해서 왔다. 영하 16도 이하로 떨어진 날은 집이 따뜻해지질 않아 숨구멍은 내놓고 방풍 비닐을 치기도 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처음엔 매섭게 느껴졌던 캐나다 추위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견딜만해졌다. 번거롭게만 느껴졌던 눈도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몬트리올 기후에 살아남게 된 거다.

▲ 작은 학회에서 포스터 발표

실험실 생활도 익숙해지고 지난 6개월 동안 얻은 실험결과를 정리하여 작은 학회에 포스터 발표도 했다. 맥길대학의 똘망똘망 예비 석·박사 학생들을 만나 나의 연구와 박사과정 생활에 대해 소개해주고 질문도 받았다. 질문이 으스스하게 아주 날카로웠다. 나는 그 나이에 멍~~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즈음 도교를 소개해준 Jasper가 갑자기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지산, 혹시 Huei Yu 이야기 들었어? “

(Huei Yu는 3개월 전 우리 실험실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한 대만에서 온 여학생으로 석사과정 중 제 1저자 논문을 4개나 낸 뛰어난 학생이다.)

“ 응?? Huei Yu에 대해서 따로 들은 얘기 없는데.. 혹시 무슨 일 있어? 오늘 Huei Yu 얼굴 표정이 어두워 보이긴 했는데..”

“응.. Huei Yu가 어제 교수님하고 만나서 상담했는데 교수님이 일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12월 중순까지만 있고 다른 곳 알아보라고 그랬데. 그래서 오늘 나한테 찾아와서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하더라고...”

평소에 Huei Yu와 교수님이 서로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험은 잘 진행되어가는 줄 알았기에 이 소식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Jasper를 쳐다보다가...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우리 교수님이 Huei Yu보고 나가라고 하셨다고? 우린 실험실 식구들은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다들 Huei Yu가 잘 지내고 있는 줄 알고 있어. 나 또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네... Huei Yu는 좀 어때?”

“Huei Yu는 외국에 나와서 산 게 이번이 처음이고 박사과정 도중 실험실을 나온다는 걸 상상도 못해서 어찌할 바 몰라 하더라고... 네가 같은 실험실이니까 옆에서 위로 좀 해줘. 너한테도 이런 상황이 충격일 텐데 너라도 흔들리지 말고 강하게 있어야해”

Japser가 말한 대로 이 상황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실험실 모든 학생들한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같은 박사동기가 학기도중 잘린다는 것은 우리도 언제든 잘릴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경고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 막 가까워지기 시작한 동기가 좌절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우리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지난 5월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7개월 동안 우리 실험실에서 Huei Yu 외 박사과정 학생 1명이 나갔다. 내가 오기 전 박사과정 학생 3명이 잘렸다는 얘기를 실험실 학생들을 통해 들었다. 우리 교수님 스타일은 박사과정 학생을 뽑은 다음 6개월 동안 차분히 이 학생이 어떤지 모니터링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6개월 동안 학생이 본인 연구스타일과 맞으면 계속 이어서 연구를 하게 하고, 맞지 않으면 단칼에 내보낸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한 건 아니지만 한국보다는 많은 편이다. 교수님이 학생을 내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학생이 교수님과 연구스타일이 맞지 않아 다른 실험실을 알아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실험실 박사과정 학생인 Martin은 다른 실험실에 있다가 지도교수와 연구방식이 맞지 않아 우리 실험실에 오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 교수님 장점은 학생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인종, 종교, 문화 그리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무조건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하는 스타일이 기대에 부응하지 않거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 냉정하게 내보낸다. 처음엔 이런 모습이 너무하다 생각해서 교수님께 차가운 눈길을 종종 주곤 했다. 근데 과연 이런 결정이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우리 교수님이 내보낸 박사과정 학생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 Sam, 박사과정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 교수님이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하였다. 지금은 같은 기관 다른 실험실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현재 지도교수님이 굉장히 꼼꼼하셔서 Sam을 하나하나 차분히 챙겨준다고 한다. Sam도 이런 면이 자기와 훨씬 잘 맞는다고 한다.

• Sofie, 석·박사과정을 시작하고 1년이 조금 안되어 교수님이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 학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현재 다른 실험실에서 더 활기차고 자유롭게 석·박사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 Minh, 박사과정 시작한지 3개월 만에 교수님 그리고 본인 동의하에 나갔다. 본인은 연구보단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더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현재는 그런 직종을 모색 중이다.

다행히 지도교수를 바꾸는 절차가 캐나다에선 복잡하지 않다. 나간 사람들도 자기와 더 잘 맞는 교수를 찾아 새로운 실험실에서 잘 지내고 있다. 어느 집단에서 타의로 나가게 된다는 건 개인 자존심에 일시적으로 상처가 될지는 몰라도, 길게 내다봤을 땐 본인과 잘 맞는 곳을 찾아 가는 것이 더 만족감과 행복을 주는 것 같다. 안 맞는 신발을 억지로 계속 신으면 발이 부르트듯,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중간에 멈춰 서서 맞는 신발로 바꿔 신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Huei Yu에게 지금 상황이 엄청난 상처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Huei Yu와 더 잘 맞는 교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안타깝게도 Huei Yu는 지금 누구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공황상태인 것 같았다. 하지만 Huei Yu의 똘똘한 눈빛, 당당한 태도, 꾸준한 경력이 곧 그녀를 좋은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지도교수님이 정해지면 학생들은 선택에 여지없이 기본 5-7년 정도 지도교수님과 함께 연구하게 된다. 지도교수님 또한 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선택한 교수 그리고 교수가 선택한 학생이 서로 잘 맞지 않더라도 계속 이어가는 경우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한국과 달리 미국은 석·박사를 시작하기 앞서 1년 동안 다양한 실험실에서 3개월 정도씩 경험한다고 한다. 그리고 1년 지난 후, 학생들이 어느 교수 밑에서 일하고 싶은지 선택한다고 한다.

어느 하나의 가치나 선택이 끝까지 옳을 수도 있지만,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가 적당히 잘 공존한다면 연구에 임하고자 하는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이롭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최근 한국에서는 교수 갑질 기사가 잊을만하면 나오곤 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근본 이유는 학위 중 학생들은 지도교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바꾸는 순간 모든 교수의 적이 될 수 있기에 시도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상황을 교수들도 알기에 각종 갑질을 알게 모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는 연구에만 신경 써도 시간이 부족하다. 연구는 시간과 에너지와의 싸움이다. 나처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학생들이 연구에만 온 신경을 몰두할 수 있도록, 대학에서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고, 혹 마련이 되어 있다면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공정한 시행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나저나 7개월 지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연구도 재미있고 실험실 식구들도 좋아 타의로 떠나고 싶지는 않은데... 

▲ 눈 쌓인 공원과 하늘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지산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김동호 2018-12-05 11:34:31

    지산일 자르면 교수 손해지!

    추위에도 적응하고,
    교수와 동료들에게도 인정받고,,,,

    오래 버티려면 건강이 최고!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거르지 않길!신고 |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참여소통 데스크  |  전화 : 02)710-0093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미경, 박효삼, 서기철, 심창식, 안지애,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동호, 김태평, 김혜성,허익배
    Copyright © 2018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