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이병진 교수의 8년 옥중 서간문집 출판

▲ 11월 30일 향린교회에서 이병진 교수의 8년 옥중 편지 모음<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2018년 한 해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하여 남, 북, 미 정상들이 만나고, 많은 실무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많은 합의와 진척이 이루어지고 있어 전 세계가 이 움직임에 큰 관심을 갖고 주목했다. 남북한은 상호 합의에 의하여 비무장 지대 일대의 군사 시설들을 해체하면서 군사적 적대 청산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70년의 분단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하여 모든 문제들이 술술 풀리는 것만은 아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하여 북미 간의 시각 차이가 커서 요즘 북미 간의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평화의 기운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남북 고위급 인사들은 물론 스포츠와 문화의 교류,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 등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과는 달리 상호 방문과 만남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남북 분단 등을 이유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서 그 기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병진 교수의 옥중 서간집이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교수는 인도의 델리대학에서 인도의 정치와 문화, 역사 등을 연구했다. 경희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 강사로 출강하던 이병진 씨는 200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되었다. 북한 조국통일위원회의 초청으로 1993년과 1994년 북한을 방문했고, 베이징, 캄보디아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났다는 이유 등이다.

인도 델리대학에서 유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에서 유학을 온 북한 학생들과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인도의 정치제도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제3세계의 정치와 외교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관심은 남북 문제에도 당연한 관심을 갖게 했다. 남북 분단으로 인한 대치와 대결 등의 갈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런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기 위하여 김영삼 정부 시절에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하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을 뛰어넘어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문제가 되질 않았다. 이 교수의 말을 빌면,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활동을 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반대하는 의견을 자주 드러내면서, 과거의 행적을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으로 내몰려 긴급 체포되어 구속 수감되었다 한다.

이 교수는 꼬박 8년 옥살이를 하고 지난해에 만기 출소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헤어져야 하는 이산의 아픔을 남북 화해의 시대에도 고스란히 곱씹고 있다.

그가 투옥되어 옥살이를 하는 소식이 알려지자 통일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종교계, 법조계, 학자,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많은 시민 등이 법정 투쟁을 지원하거나 면회를 가고, 후원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특히 8년 옥살이를 하는 동안 이런 사람들과 서신 왕래를 했는데, 그가 쓴 편지가 2천 편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책으로 엮기 위하여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이 서간문들 중 90편을 엄선했다. 그 결과가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목의 옥중 서간집이다.

이 책은 '야만과 마주하기', '새로운 싸움의 시작', '알몸검신과 서신검열', '포승줄을 풀며' 등과 같은 중간 제목 아래 편지글이 쓰인 연대와 날짜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68쪽에 이른다.

11월 30일 명동 향린교회에서는 70여 명의 인사들이 모여 이병진 교수의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 출판 기념과 그의 만기 출소, 활발한 연구활동과 남북 평화와 통일운동 등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쳤다.

▲ 통일운동, 노동운동 등에 앞장서고 있는 인사들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은 남북 화해의 시대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많은 시민 등이 참석하여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김희헌 향린교회 목사, 장창원 오산다솜교회 선교목사, 권오헌 양심수 후원회 명예회장, 이규재 범민련 의장,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의 조순덕 상임의장과 회원들, 심재환, 송상교 변호사, 노동자정치협의의 정인탁 씨, 김장호 민플러스 편집국장, 박몽구 시인, 박금란 시인, 권말선 시인, 가수 희망새 등이 참석했다. 출판기념회는 김혁 전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이들은 한목소리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부정하고, 인륜마저 저버리는 '국가보안법'은 남북 평화와 화해, 협력의 시대에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주요 참석자들의 인사말에 이어 박금란, 권말선 시인의 시 낭송, '희망새'의 통일 노래 공연, 김호성 대학생의 옥중 서간집 독후감 발표 등이 있었다. 이 교수의 자녀들을 향한 외침의 시 <지원, 인규에게 - 뿌리가 꽃들에게>를 권말선 시인이 낭송할 때 이병진 교수는 눈물을 흘렸고, 참가자들은 숙연해졌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세계의 석학들의 학문적 논쟁들이 이적행위가 된다면 이 땅은 좀비들의 세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기에 악법의 굴레를 떠나 통일과 노동을 따로 논할 수 있느냐는 동지의 주장은 이식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글을 보내와 참석들의 박수를 받았다.

송상교 변호사는 “이 교수님은 몸은 감옥 창살 밖에 나와 있지만 권력은 여전히 보안관찰의 족쇄로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 국가보안법 딱지가 삶을 옥죄려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 교수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세계 인권선언 70주년의 이면에는 국가보안법 70년의 야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부디 이 책이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을 보다 많은 이들이 직시하고 폐지하는 길에 소중한 디딤돌이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병진 교수는 마지막 순서로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병진 교수

"그동안 제가 옥중에 있으면서 힘들고 좌절할 위기가 왔을 때, 힘과 용기를 주셔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제가 인도에서 공부하던 중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베이징과 캄보디아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이는 민족애와 통일의 열망, 학문적 양심의 발로였으며, 민족의 화해를 염원하는 정치학도의 자연스러운 교류였습니다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대 북한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에 체포되었다고 봅니다. 알몸검신과 서신검열 등 비인권적 처사에는 결연히 맞서 투쟁하기도 하였습니다."

"출감 후에는 한국으로 부임해 오는 인도 대사가 제일 먼저 저를 찾아와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인도 연구는 물론 학자적 양심으로 사회 진보와 남북 화해 및 통일,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을 위하여 연구하고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한편, 이 교수의 옥중 서간집의 원고선정 작업에 참여한 전비담 시인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이 편지들은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결을 지닌 한 청년 정치학자가 시대착오적인 야만의 법으로 인해 어떻게 혼란과 좌절과 훼손의 시간을 겪었는지의 노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원고 선정 작업은 그러한 노정을 함께 하는 일이었으며, 그의 편지들을 읽는 시간은 그의 성실하고 선한 의지를 따라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해 되돌아보며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고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그가 맑은 영혼으로 자신의 역사적 소명을 다 이루어가기를 기원하고 응원한다."

이 교수는 옥중에서도 많은 칼럼을 써서 기고를 하고 논문을 쓰거나 거의 매일 편지를 쓰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했다. 현재는 자신의 후원자이면서 국내 유일의 인도박물관을 30여 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양식 박물관장을 도와 박물관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명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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