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박힌 막말 도려내기

한국은 막말 공화국. 특히 북한을 말할 때면 지나치다 못해 극단에 치우친다.

공식 자리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란 이름을 온전히 불러 준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이름 꺼낼 때마다 빨갱이, 쳐 죽일 놈, 전쟁광 같은 말을 앞에 달았다. 한국인 심성이 표독스럽거나 남달리 모질어서? 학습효과 아닐까.

국가보안법으로 콕 찍은 ‘북한괴뢰집단’을 누가 온전히 부를 수 있었겠나.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정권을 지켜오던 범법 독재자들은 사람들 마음마다 분노와 실체 희미한 적 들여앉혀 아무에게나 손가락질 총이라도 겨누어야 살 숨통 틔워주었다. ‘함께 잘살자’는 바람 불면 저 무리 속에 날리는 붉은 깃발 봤다며 고자질시키고, 짐승보다 못한 삶 주먹 쥐고 일어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누군가는 빨갱이가 되어 감옥에 갇혔고, 누군가는 죽어 나가야 했다.

‘저 빨갱이들 때문에’ 잘 사는 일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 지금 고루 나누며 함께 살아갈 수 없다! 끊임없는 혐오와 적대 만들어 삶을 옥조였다. 적대감 부추기는 -반공- 막말을 터전 삼아 연명해온 부일 폭력 모리배 독재정권이 씌운 굴레는 크고 깊었다.

막말을 더듬어 올라가면 북한 괴뢰집단과 전쟁 공포라는 뿌리에 닿는다.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괴뢰’ 또렷이 밝히고 전쟁 공포 걷어내면 막말은 사라질 터이다. 막말 사라지면 막연한 적대감도 가라앉는다. 막말 잦아들면 차분한 토론과 비판 봄날 새순처럼 솟아오르겠지. 잘잘못 가려내자고 따지기라도 하면 ‘다 똑같은 놈’이라며 퉁치고 들이대던 억지와 폭력 줄어들겠지.

허상인 ‘북한 괴뢰 수괴’ 아닌 실체인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는 다음에야 막말이 진 치고 설칠 자리 옹색해지지 않겠나.

▲ 막말이 살아있는 한 차분한 토론과 비판대신 갈등과 공포만이 어둠속에서 자란다. 사진 : 關刀山/대만 2018.2 김동호

 

내 마음에 잠든 상상력 깨우기

여행은 파주, 철원 ... 3・8선 아래까지만? 깊고 드넓은 바이칼호수와 유라시아를 꿈꾸지만, 섬나라 대한민국에서 찻길은 언감생심? 김일성대학 유학은? 김책공대 학생과 만남은? 평양 시내 마라톤대회 달리고 대동강 가에 앉아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73년 분단이 갈라놓은 건 땅덩어리만이 아니다. ‘왜 안 돼?’라는 말 가두고 호기심 반 토막 냈다.

생각 쪼그라들게 만들고 상상력 틀어막았다. 0과 1로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도 생각을 자극하는 건 내뱉는 말이고 소리이고 냄새고 사람들 체온이다. 삶에서 걷어 올리지 못한 상상력은 쓸모없는 허상일 뿐이니, 북한 인민들 삶은커녕 소식 한 자 들을 수 없는 남한에서 북한은 늘 허깨비였다. (돈과 시간만 있다면) 가지 못할 나라 없다고 믿는 우리들 머릿속에도 늘 북한만은 괄호 밖이었다. 꿈에서조차 발길 끊어버린 북녘 땅으로는 고개 돌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상상 굳어져 오감 멈추고 딱딱 굳어버린 세월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온다면.

그이 머리 모양, 옷차림, 걸음걸이, 웃는 모습, 손잡을 때 눈짓 우리들 눈으로 들어오고. 숨소리 말소리 마음으로 들어와 꿈쩍 않던 감각 살살 간질일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보여준’ 잣대로만 판단하고 정권이 ‘들려준’ 말만 믿던 실체를 우리들 눈과 귀로 바로 보고 들을 수 있을 터. 손 맞잡고, 웃음 터뜨리고, 말 다투고, 화내고 푸는 시간들 건너야만 안전과 평화 깃들고 쌓일 틈 생기겠지. 그 첫 발걸음이다.

말 넘쳐나고 웃음 일렁거려도 서로 거리낌 없이 바투 다가서기 당장은 힘들겠지만. 북한에서 아장아장 넘어온 말과 웃음과 몸짓과 남녘 땅 수놓은 발길 보듬어 꾸덕꾸덕 굳어버린 우리들 호기심과 상상력 흔들어 깨우면 거리는 점점 좁혀질 것이다.

▲ 서로 만나면 이렇게 좋은걸!           사진 : 고창 선운산 2018.6 김동호

“가만 북에서 3대째 권력을 세습했다는데, 세습이라면 남한 땅에도 존재하는 거 아냐? 사카린 밀수로 일으킨 기업 삼바분식회계로 3대째 물려받은 건 정당한 상속이냐? 사람들 눈 속이고 법 가지고 논 부당한 세습이냐?”

김정은 위원장이 몰고 온 상상력은 돌고 돌아 남쪽에서도 분단선 못지않게 우리들 눈과 귀와 생각을 틀어막고 음습하게 피어 사람들 목숨 앗아가고 공동체 갉아먹는 권력으로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은 홀로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 머물지 않으니까.

남녘으로 내딛는 발걸음 금단의 영역 뚫고 와글와글 피어오르는 말글로 북적대는 2019년 한반도 만들 것이다. 분단으로 차꼬 채운 우리들 상상력 푸는 열쇠로 올 것이다. (계속)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김시열 시민통신원  abuk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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