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독일 밑거름이 된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빌헬름2세'와 상수시 궁전

유럽 최강의 군대를 키우고 여러 차례 침략 전쟁을 일으키면서 문화 발전에 기여했던 임금 김광철 주주통신원l승인2018.12.27l수정2018.12.2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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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수시 궁 옆 뜰에 자리 잡고 있는 프리드리히 2세와 그의 애견들의 무덤, 봉분도 없이 철판 하나가 덮여있고, 그 위에는 시민들이 갖다 놓은 감자들이 여러 개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유럽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웬 나라도 이리 많고, 민족도 이리 많은가? 머리가 복잡하다. 그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는 없는데, 나라와 민족마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역사들을 갖고 있다. 이런 역사들을 다 엮어서 들여가 보기는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로마제국 멸망은 사치하고 부패에 빠져 있던 로마제국을 향해 게르만의 대이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그렇지만 유럽 전역은 대부분 가톨릭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중세 유럽은 로마 교황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든가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의 국가의 왕들도 그 영향력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알프스 이북의 중부 유럽은 신성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렇다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제후들이 통치를 하는 제후 연방국가와 같은 느슨한 형태의 황제국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힘이 약하던가, 특정한 지역 제후 중에서 야심가가 나타나서 주변국들을 정복하던가, 왕위 계승 문제를 가지고 시비가 일어난다든지 하면 힘 있는 왕국이나 제후국들은 전쟁을 일으켜 해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갔다. 그런 역사 속에서 유럽의 왕실들과 힘 있는 제후국들 중에는 혼인 관계를 맺으며 합종연횡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은 프랑코 왕국을 중심으로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 프랑코 왕국도 나중에는 서부 프랑코의 프랑스와 동부 프랑크의 독일, 중부의 이탈리아 등으로 나뉘면서 유럽 역사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바다 건너 영국 등이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 여느 유럽의 궁전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게 유럽의 전통 양식에 의하여 지어진 정문과 건축물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동 프랑코는 신성로마제국으로 계승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은 오스트리아 지방에 자리 잡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황제의 자리를 세습했다. 그렇지만 신성로마 제국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지배력이 탄탄한 것은 아니었다. 내분이 자주 일어나면서, 1356년에 제정된 금인칙서에 의하여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선제후들에 의하여 선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선거권을 가진 선제후들이 5명이었으나 후에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과 보헤미아 왕이 추가되어 신성로마제국은 7명의 선제후들에 의하여 황제가 선출되었다. 브란데부르크는 베를린을 포함한 동부 독일에 위치한 곳으로, 후에 '프로이센' 왕국을 일으킨 중심 지역인 것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대략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마차를 타고 지나면서 상수시 본궁 가까이 가 보았지만 수리중이라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 마차 위에서 보이는 상수시 본궁의 정문의 모습

[1657년 대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폴란드의 종주권에서 벗어나 1701년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프로이센 왕국을 세우고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프리드리히 1세로 즉위하면서 프로이센 왕국의 역사는 시작이 된다. 프로이센은 부국강병을 내세우면서 정규군제를 도입하고 유럽에서 4위에 해당하는 군대를 보유한다. 특히 제3대 왕인 프리드리히 2세 때는 정규군이 20만에 이르러 유럽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다. 주변 국가들과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키며 많은 영토를 확보한다. 수차례에 걸친 오스트리아와 전쟁에서는 승패를 거듭하다가 최종적으로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확보한다.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신성로마제국의 통치권을 사실상 상실하고 신성로마제국은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그가 죽고 나서,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휩쓸 때는 한 때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워털루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크게 힘을 떨쳐 지금의 독일 지역 대부분을 통치하면서 유럽에서 막강한 권한과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1870년 프랑스와의 전쟁(보불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프로이센 왕 빌헬름 1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즉위식을 하면서 독일 제국을 완성하게 된다. 1918년 독일이 제1차 대전에서 동맹국들이 패전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을 주도했던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왕 빌헬름 2세는 퇴위하였으며, 프로이센 왕국은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 상수시 궁전 건물과 포도원, 유럽 남부에서 흔한 그 포도를 이곳 추운 지방의 궁전으로 옮겨 심고 가꾸던 모습을 볼 수 있다.
▲ 상수시 궁전에 자립잡고 있는 포도원
▲ 이 지역은 날이 추워서 따뜻한 곳에서 재배되는 무화과를 심어서 가꾸고 있는 유리 온실도 있었다.

2014년 8월 1일 전교조 동유럽 연수단 '베캄원정대'는 낮에 포츠담의 세실리아궁을 둘러본 다음 오후에는 인근에 있는 상수시 궁전으로 향했다. 상수시 궁전은 프로이센의 제3대 왕인 프리드리히 2세가 세운 아름다운 여름 궁전이다. 1747년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을 본떠서 지었다고 한다. 상수시궁에는 프리드리히 2세의 집무실과 왕비의 방, 화려한 콘서트홀 등이 있고, 궁전 동쪽에는 회화관이 있다. 이 회화관에는 프로이센 왕가에서 수집한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궁전의 왼쪽 귀퉁이에는 프리드리히 2세가 잠들어 있는 묘도 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묘라고 하지만 봉분도 없다. 우리나라의 왕릉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봉분도 없이 평장을 하여 철판을 덮어놓고 있었다. 그 위에는 시민들이 갖다 놓았다는 생감자들이 놓여 있었다.

▲ 프로이센을 유럽 최강의 국가로 성장시킨 프리드리히 2세 대왕의 무덤 위에는 독일에 처음 감자를 도입하여 독일의 식량난을 해결했다는 왕의 업적을 추모하면서 시민들이 감자들 가져다 이렇게 올려놓고 있었다.

 샤를마뉴, 나폴레옹과 더불어 유럽 3대 정복 군주의 한 사람 프레드리히 2세

척박한 땅인 독일에서는 당시 농사를 지어먹고 살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2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외국에서 감자를 들여와 국민들에게 먹을 것을 권장하였다. 하지만 당시 프로이센 국민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은 음식이라 하여 먹으려고 하질 않아서 프리드리히 2세는 귀족들이 시범적으로 먹도록 하고 나서, 널리 권장함으로써 비로소 프로이센 국민들이 감자를 먹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감자가 프로이센(후에 독일 제국)에 도입이 되어 프로이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프로이센의 부국강병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에서 보면 대부분, 새로운 왕조를 창업하면 이어서 2~4대 왕의 시대에 왕조가 최전성기에 이르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우리의 역사에서 고려의 광종 시기나 조선의 세종 시기, 중국 당나라도 태종 시기,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마뉴 등이 그렇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그 왕조는 문물이 정비되어 장수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센도 마찬가지 전철을 밟고 있었다. 프로에센을 유럽 중앙에서 강력한 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제3대 프리드리히 2세 때인 것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프로이센을 유럽 최고의 군사 강국으로 성장시킨다.  부왕인 프레드리히1세는 사치를 즐기고 낭비벽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프르드리히 2세는 부왕과는 달리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다. 볼테르 등 계몽 사상가들과 많은 교류를 했으면 왕위에 올라서는 각종 악법들을 폐지하고 인권을 신장하고, 학문과 문화가 활짝 꽃 필 수 있는 선정을 많이 베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부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여 주변국들과 많은 전쟁을 일으키는 등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했던 문인, 음악가, 미술가, 계몽가들로부터는 전쟁광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수많은 전투를 직접 지휘를 하기도 했던 프리드리히 2세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프랑스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도 노력하였다. 전쟁의 고립에 빠지기 않기 위해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 평화가 찾아오자 상수시 궁전에 기거하면 안락한 생활을 즐겼다 한다. 정무로 바쁠 때도 저술활동을 하거나 플루트 연주를 하고, 서신 왕래를 하는 등의 활동을 즐겼다고 한다.

영국, 프랑스 등과 이렇게 당시 시대를 이끌어가는 문인, 예술가 등의 배척을 받게 되자 애견들을 많이 키웠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2세는 유럽의 많은 문인, 예술가 등과 교류를 했지만 침략전쟁에 몰두하면서 이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외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개를 많이 키웠다고 한다. 자신이 죽어갈 때는 그 개들을 자신의 옆에 묻어달라고 하여 프리드리히 2세가 사랑했던 개들이 옆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2세' 하면 프로이센 왕국에서 유일하게 '대왕'이라고 불릴 만큼 프로이센의 르네상스를 이끌면서도 강력한 국가로 성장시켜 오늘날도 많은 독일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는다. 

▲ 상수시 별궁에서 본궁까지는 2~3km 떨어져 있었다. 본궁을 가기 위해서는 걸어가기는 무리가 있어 본궁 주변 마을을 지나면서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본궁을 둘러보기 위하여 이 마차를 빌려 타고 투어 길에 나섰다.
▲ 상수시 궁전이 본궁이 있는 곳은 별궁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여행객들에게 돈을 받고 운영하는 마차를 빌려 타고 주변 마을을 지나 상수시 본궁 쪽으로 향했다.

상수시 궁전과 프리드리히 2세와 함께 잠들어 있는 애견들의 무덤, 초라한 왕릉 등을 보면서 당시 독일인들의 문화와 역사 인식을 다시금 더듬어 보면서 우리와 같은 동양 문화와는 근본에서 많은 차이를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종교관, 국가관, 세계관, 신념 등 철학에서 많은 차이가 이런 문화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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