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죽나무와의 조우
쭝나무, 우린 어릴 때 그렇게 불렀다. 이게 참죽나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에야 깨달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서울 근교에서는 참죽나무를 만나 보지 못했다. 지난여름 중학교 친구들과 광주 남종면 분원리에 간 적이 있다. 싱싱한 토마토도 살 겸 가까운 분원초등학교 뒷산 산행도 하려고 몇 해 전부터 이맘때 가곤 한다. 쉬엄쉬엄 올라갔다가 다 내려와 분원리 삼거리 즈음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것도 꽃이 활짝 핀 귀한 참죽나무를 만났다. 흰 밥알만 한 작은 꽃은 벌써 일부가 떨어져 길바닥이 하얗다. 그러나 가지 끝마다 원추화서로 길게 핀 꽃이 절정이다. 하도 풍성하여 고개를 꼿꼿이 들지 못하고 아래로 드리워질 정도로 축축 늘어져 있다. 꽃은 너무 작아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 볼품이 없다. 하지만 화서 전체를 보면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꽃이 이렇게 제대로 핀 참죽나무를 대면할 기회가 없었는데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나다니 큰 행운을 잡았다. 가져온 카메라가 콤팩트라서 그냥 스마트폰으로 대충 사진을 찍었다. 꽃을 중심으로 잎과 수피, 나무 전체가 들어가게 여러 장 찍었다. 얼굴격인 꽃 사진이 가장 중요한데 높이 달려 있어 접사를 할 수 없다. 이럴 땐 줌렌즈를 장착한 DSLR 카메라를 가져 왔어야 하는데 무겁다고 안 가져온 것이 후회막급이다.

▲ 광주 남종면 분원리에서 만난 참죽나무

참죽나무와 때까치
쭝나무하면 나에겐 여러 가지 고향 추억이 떠오른다. 내 고향 마을에서는 이웃집과 경계를 이루는 울타리나 담장에 으레 참죽나무 몇 그루씩 심어 길렀다. 이 나무는 곧게 높이 자라는 큰키나무라서 자랄 때 가지치기만 제때 해 주면 무려 20m 이상 곧게 높이 자란다. 그래서일까 여름철이면 때까치란 녀석들이 이 높은 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친다.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면 '따따따--'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계한다. 우리는 짓궂게도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동무들 중 나무를 잘 타는 녀석이 기어이 끝까지 올라가서 이소 직전의 때까치 새끼를 둥지채 가지고 나려왔다. 때로는 어른들한테 혼쭐이 나기도 하지만. 집에 가져다 새장까지 만들어 길러볼 속셈이지만 새끼는 십중팔구 죽게 마련이다. 잠자리, 메뚜기, 방아깨비 등 열심히 잡아다가 손짓을 하며 어르면 새끼들은 입을 쩍쩍 벌리고 받아먹기도 곧잘 한다. 하지만 제 어미가 물어다 주는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결국 이소할 정도로 다 키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못할 짓을 참 많이 했다 싶다.

▲ 새끼에게 먹일 벌레를 물고 있는 때까치

참죽나무와 얼레
참죽나무 하면 나는 또 얼레가 생각난다. 어릴 적 겨울이 되면 연 날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날처럼 마땅한 놀이가 없는 그 땐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즐겨 연날리기를 하면서 놀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연을 날릴 때 실을 감았다 풀었다 쉽게 할 수 있는 연자세, 곧 얼레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몰래 바느질 상자에 들어 있는 실패를 가져다가 연을 날렸다. 방패연을 날릴 때는 실을 풀기도 하고 감기도 하면서 연으로 재주도 부리고 연싸움도 하면서 날려야 재미가 있는데 연자세가 없으니 그걸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연자세로 연 날리는 동무가 그리 부러울 수가 없다. 그 당시엔 시중에 얼레를 파는 가게가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졸라서 얼레를 가져 보는 게 소원이라고 애걸했지만 내 소망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원이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 분 목수를 집으로 모셔다가 얼레를 직접 만들어 주셨다. 아버지는 마루 밑에 간직해 두었던 오래된 참죽나무 통나무를 꺼내 놓았다. 나는 아저씨가 얼레를 만드는 공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지켜보았다, 목수 아저씨는 먼저 톱으로 얼레 만들 만한 적당한 길이로 잘라 낸다. 다시 그걸 자귀로 몇 개의 적당한 크기의 조각으로 쪼개는데 신통하게도 바르게 짝짝 쪼개진다. 반듯하게 쪼개진 조각들의 붉은색 나뭇결이 지금 생각해 봐도 유난히 고왔다. 그걸 다시 자귀로 다듬고, 부분부분 대패로 매끈하게 밀고 정으로 홈을 파서 구멍을 뚫는다. 다듬기를 다 마친 부품을 가져다가 아퀴를 맞추니 신통하게 얼레가 되었다. 통나무를 잘라다가 설계도도 없이 못 하나 쓰지 않고 얼레를 만든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봐도 목수 아저씨의 솜씨는 미다스의 손처럼 참으로 신기했다.

▲ 연 날릴 때 실을 감고 푸는 연자세, 얼레(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진을 가져옴)

참죽나무와 참죽나물
참죽나무는 또한 여러 가지 쓸모가 많다. 새잎이 돋아날 때쯤이면 긴 장대 끝에 낫을 달아 전지를 해서 딴 새순을 데쳐 참죽나물을 해 먹었다. 새순을 데쳐 말려 두었다가 대보름 때 아주까리 잎나물과 함께 참죽나무 잎나물도 해 먹었다. 참죽나무 잎을 된장,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장아찌로도 먹고, 물에 푼 찹쌀가루를 발라 말렸다가 튀겨서 부각도 만들어 먹었다. 참죽나무 잎으로 만든 참죽나물은 형언하기 어려운 독특한 향이 있다.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특이한 향을 즐겼다. 실제로 참죽나무 잎에 들어 있는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인체의 독성분을 배출시키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플라보노이드’라고 하는 항산화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고향집 밖으로 둘러 친 토담 가엔 실하게 자란 참죽나무 여남 그루가 심어져 있다. 내년 봄엔 참죽나무 새순을 따러 가야겠다. 그 독특한 참죽나물 향을 맛보고 싶다.

▲ 참죽나물 해 먹는 참죽나무 새순

참죽나무로 만든 용기
또한 참죽나무 목재는 예로부터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목질이 붉고, 단단하여 여러 가지 기물을 만드는 재료로 이용하였다. 오늘날처럼 플라스틱이 일반화하여 용기로 사용되기 전에는 이 참죽나무를 이용하여 농기구, 가구, 그릇, 도마 등 다양한 용기를 만들어 썼다. 우리 집 부엌에서는 참죽나무로 만든 설거지통을 사용했다. 옹기로 만든 설거지통은 사기그릇이나 뚝배기 같은 그릇을 담아서 설거지를 한다면 자칫 서로 부딪혀 깨질 수도 있다. 참죽나무로 만든 설거지통은 전혀 그럴 염려가 없어 좋다. 또한 옛날 고향에서는 참죽나무를 적당한 길이와 너비로 켜서 조각조각 이어 붙이고 대나무로 테를 매어 통을 만들어 썼다. 설거지통뿐만 아니라 분뇨통 똥장군도 참죽나무로 만들어 썼다. 옹기로 만든 것보다 가볍고 깨질 염려가 전혀 없고 잘 썩지도 않는다. 오래오래 두고 쓸 수 있으니 참죽나무로 만든 똥장군은 여러 가지 장점이 많다. 재래식 화장실의 분뇨를 퍼 담아 내는 데 참죽나무로 만든 똥장군은 농가에서는 집집마다 필수품이었다.

▲ 참죽나무로 만든 탁자(성담목공예갤러리 제품-구굴 이미지에서 가져옴)
▲ 옹기로 만든 분뇨통 똥장군(좌), 참죽나무로 만든 분뇨통 똥장군(우)- 구굴이미지 사진

참죽나무 유래한 한자어
멀구슬나무과에 속하는 참죽나무는 우리나라 고유 수종이 아니다. 중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중국명은 '香椿(향춘)' 또는 '椿(춘)'이라고 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上古有大椿者(상고유대춘자) 以八千歲爲春(이팔천세위춘) 八千歲爲秋(팔천세위추)―상고시대에 대춘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8000년을 봄으로 삼고, 8000년을 가을로 삼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곧 대춘의 3만2천 년은 사람의 1년에 해당한다. 인간의 수명을 100년으로 치면 대춘은 3백 20만년을 사는 어마어마하게 장수하는 큰 나무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춘(椿)을 장수의 비유로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椿(춘)'을 참죽나무라 한다. 그래서 대춘지수(大椿之壽)를 줄인 말인 椿壽(춘수)는 '참죽나무처럼 많은 나이'라는 뜻으로 오래도록 사는 일, 즉 장수(長壽)를 달리 일컫는 말이 되었다. 또한 영춘(靈椿), 곧 신령스러운 참죽나무라고도 하는 대춘(大椿)은 아버지를 비겨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춘수(椿壽)는 그래서 아버지가 오래 살기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도 된다. 또한 남의 아버지를 높여 춘당(椿堂), 춘부장(椿府丈) 등으로 쓰기도 하는데 모두 장자의 대춘지수(大椿之壽)에서 온 말이다. (참죽나무 이야기는 2부로 이어질 예정임)

▲ 광주 남종면 분원리에서 만난 참죽나무의 꽃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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