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67] 一字之師(일자지사)(상)

김동호 객원편집위원l승인2018.12.27l수정2019.03.0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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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지사는 ‘단 한 글자만 가르침을 받아도 나의 스승’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중국의 당 왕조는 당시 세계사에서 가장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체도 이때 완성이 됩니다. 구양순과 안진경이 모두 당나라 사람이지요. 문명과 더불어 문화도 가장 융성한 시기였습니다. 주옥과 같은 시들이 쏟아져 나오지요.

가난한 마을에 제기(齊己)라는 아이가 소를 키우면서 어렵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의 총명함을 아낀 절에서 데려다 중으로 키웠습니다. 이 제기스님이 조매(早梅, 이른 매화)라고 하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전설이 ‘일자지사’입니다.

어느 이른 아침 하얀 눈 속에 핀 매화를 보고 시심이 동한 제기스님이 시를 한 수 지었습니다. 마침 시인인 정곡(鄭谷)이라는 친구가 찾아와 절에 묵고 있었는데, 한달음에 달려가 지은 시를 보여주었지요.

정곡이 소리 내어 조매(早梅)를 읽다가 2연 “前村深雪裏 昨夜數枝開. (전촌심설리 작야수지개)”에서 머리를 갸웃거립니다. ‘앞 마을 쌓인 눈 속에 (매화가) 지난 밤 여러 송이 피었구나!’ 라는 뜻입니다.

▲ 사진 : 成語古事 樂視網

정곡이 제기에게 “제목인 ‘이른 매화’와 ‘여러 송이’는 매끄럽지 않으니 前村深雪裏 昨夜一枝開로 바꾸라고 합니다. 제기가 듣고 크게 기뻐하며 정곡을 스승으로 모십니다. ‘數’를 ‘一’로 한 글자만 바꾸었는데 느낌은 참으로 다릅니다.

-앞마을 쌓인 눈 속에 지난 밤 홀로 피었구나!

비록 친구이지만 글자 하나로도 스승이 되는데, 우리 주변에는 은인과 같은 친구, 스승과도 같은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대만 사범대 어학원에서 그런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H라는 친구였지요. 같은 나이지만 이른 생일로 학번도 빠르고, 독자라서 군대도 안 갔습니다. 대기업 무역부에서 3년 근무를 하다가 그 돈으로 중국어를 배우겠다며 회사를 사직하고 대만에 들어온 친구입니다.

H의 아버지는 약사였습니다. 사실 옛날 약사는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대학만 다녀도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시절. 하지만 친구 아버지는 서울대 콤플렉스에, 약사를 구멍가게 장사꾼으로 비하하는 마음이 강해서, 외아들인 이 친구에게 많은 강요를 했습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묻자, ‘아버지가 안 될래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하더군요.

아쉽게도 서울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명문 S대 경제학과에 다니며 행정고시 1차에 붙기도 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대만 행을 결심합니다.

이 친구는 나보다 머리도 좋고 사회 경험도 있고, 미리 대만에 들어와서 중국어도 월등히 잘했습니다. 사범대에서 안면이 있는 후배가 형과 같은 기인이 한 명 있다고 소개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아둔한 인간이지 결코 기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 당시 분위기가 대학까지 졸업하고 중국어 배우겠다고 ‘ABC...’하고 있었으니 이상한 인간으로 보였나봅니다.

우리는 생긴 체형이나 성격이 정 반대였습니다. 치밀하고 계획적이 친구에 비해 고민 없이 저지르고 보는 나, 음주가무를 즐기는 친구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저는 신기하게도 십년지기처럼 가깝게 지냈습니다.

당시 저는 동해대 대학원에, 그 친구는 대만대 경영대학원에 입학이 허가된 상태였습니다. 그 친구 자취집에 처음 방문한 날, 우리는 길거리에서 장사를 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맥주 한 캔 마시는 시간으로 족했습니다. 아무리 술이 약해도 맥주 한 캔으로 취하는 청춘은 아니었지만, ‘쇠뿔도 단김에’라며 죽이 맞아 신발을 끌고 큰길로 나왔습니다.

조명으로 어둑한 밤길에 학생들이 몰려나오는 거리로 가다보니 문간방 처마와 같은 곳이 비어있고, 그 옆에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중국어가 저보다 나은 친구가 가게 아주머니와 흥정을 해서 월세를 정하고 다음날 돈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날 어학원 수업이 끝나고 친구와 시장조사를 나섰습니다. ‘시장조사?’ 그런 단어도 경제학과 출신인 이 친구에게서 나왔지요. 사업 아이템을 구한다고 괜히 말도 잘 못하는 둘이서 동네만 어슬렁거리고 다니다보니, 기름에 동글납작한 어묵을 튀겨서 파는 게 보이고 어린애가 사서 먹더군요.

그래서 이름도 거창한 사업 아이템은 어묵튀김으로 벼락에 콩 볶아먹듯 결정했습니다. 한국의 특색도 추가하자며 야채튀김과 고구마튀김도 같이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튀김용 솥과 프로판 가스 화구를 3개씩 구매하였습니다. 중고시장을 수소문해서 몇 푼 더 싸게 사겠다고 몇 바퀴 돌았더니 허기지고 지치고.... 택시를 타고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고생한 보람을 찾자고 또 낑낑거리며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별로 끓여본 적도 없지만 똑같은 회사의 라면을 끓여도 맛이 항상 달랐습니다. 그리고 시종여일 변치 않는 것은 맛도 없다는 사실. 이 친구도 요리는커녕 칼도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지라, 무지렁이 둘이서 무식을 용기 삼아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계획적으로 역할분담을 하지도 않고, 닥치면 즉흥적으로 대처하면서, 언어가 나보다 나은 친구가 튀겨서 손님 받고, 나는 칼을 잡고 만들면서 친구 보조를 하였습니다.

처음 문을 열고(처마 밑에 열고 닫을 문도 없지만) 화구 하나에 기름을 붓고 먼저 대만사람들이 튀겨서 파는 어묵을 튀겼습니다. 좁은 공간에 둘이서 익숙하지 않은 몸놀림으로 부산스러운데 난데없이,

”수수, 전머마이“

순간 공중에서 우리 두 사람 눈이 먼저 마주쳤습니다. 당황도 잠시, 화구 너머로 꼬마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생각 없이, 예고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현실에 우선 어디 숨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더군요.

가만있자.... 이게 뭔 소리지? 학교에서 배운 건, 시엔성! 두어사오치엔?(先生! 多少錢? 선생님! 얼마에요?) 이래야 맞는 건데....괜히 못 알아듣는 중국어를 탓하며 머쓱해 있는데, 친구가 ”이거 우콰이(1個 5塊, 한 개 5원)“ 하더니 튀긴 어묵 하나를 봉지에 넣어서 건네고 돈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오는 사람 열에 아홉은 ”수수, 전머마이“ (아저씨, 어떻게 팔아?)라고 하더군요.

내 인생에서 첫 노동으로 시작한 경제활동이었습니다. 친구 덕분에 부끄럼 없이, 두려움 없이 현실에 맞설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지요.(상)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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