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지지의 가벼움

문재인 대통령과 나란히 사진을 찍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한 번 대선에서 떨어지기까지 하였으니 사진 찍는 것이 중요한 선거운동의 하나인 대선 후보가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나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었을 것인가. 또한 그와 같이 식사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혹은 커피 한 잔을 같이 한 사람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 편안한 셔츠 차림으로 청와대 직원들과 격의 없이 경내를 산책하며 커피를 즐기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신선하고도 정겨운 모습이었다. 조선시대의 왕궁쯤으로 알고 있던 국민들에게 청와대는, 단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표일꾼이 머물고 일하는 곳으로 겸손하게 내려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지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며,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커피를 같이 마시며 한 시간여 담소를 나눈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문재인 후보 자신이 주방에 들어가 바리스타의 도움을 받아가며 직접 내린 커피에 이른다면 두 손으로 꼽기에 족하지 않을까 싶다. 한 발 더 나아가 쟁반에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와서 함박웃음과 함께 공손하게 서비스까지 해 주었다면, 글쎄 . . . 가족을 제외한다면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한다.

문대통령이 낙선했던 18대 대선 후보시절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듣겠다며 초청이 들어왔을 때, 나는 정치인들이 늘 그랬듯이 그저 보여주기식 행사의 일환으로 사진이나 몇 장 찍는 것으로 알고 거절했었다. 그러나 주선한 이로부터 정말 유의미한 대화를 나눌 뿐 아니라, 그 내용을 후보 공약으로 넣겠다는 말을 듣고 사회적 기업이라는 그 커피숍으로 갔었다. 수많은 언론사와 기자들이 나와 있었고 몇 명의 대화 참가자들이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막 앉으려는데 문재인 후보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주인장과 몇 마디 나누더니 우리와 악수를 하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시간상의 제약과 여러 가지 이유로 만류하는 보좌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18대 대선 후보시절 소상공인과의 대화 행사에서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내린 커피를 써빙하는 모습. 받는 이가 필자.

"나는 대통령 후보로 내 할 일이니 그렇다 치고, 오늘 어렵게 모신 분들에게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로 드릴 건 없고 제가 직접 커피를 타서 드시게 하면 혹시 누가 압니까? 별거는 아니지만 나중에 당선되면 대통령이 타 준 커피를 마셔본 것이라도 기념이 될지 . . "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 주방으로 따라가 보았다. 그는 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대선후보 선거방송 때의 모습보다 더 진지한 얼굴로 정성 들여 커피를 내렸다. 중간에 '맛이 없으면 어쩌지요?' 하면서 걱정어린 얼굴이 될 때는,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멍해졌다.

여러 구석에서 노력한 흔적은 있으나 예상했던 대로 그냥 대선 후보 행사 중의 하나였을 뿐, 참가한 서너 명의 자영업자들이나 방청객 혹은 국민들을 감동시킬만한 그 무엇은 없었다. 지금도 나는 무슨 얘기를 어떻게 나누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가맹점 사업에 있어서 갑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한 '전국 을들의 연합회 결성 구상안' 을 설명하고, 대선 후보 공약으로 넣는다면 백만 표 이상을 얻으리라고 강조했던 것과, 내가 건넨 설명서를 그가 양복의 안주머니에 잘 집어넣는 것을 보았던 것만이 또렷하게 기억이 날 뿐이다. 성과도 없이 돌아오는 길은 허전했지만,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들어 준 커피 향은 입이 아니라 가슴에 깊게 남았고, 늘 커피믹스만 마시던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계기가 되었다.

80%를 넘나들던 지지율은 50%대까지 떨어졌고 벌써 여기저기서 '속았다' '적폐청산은 물 건너갔다' 심지어는 '박근혜 정권보다 나은 것이 뭐냐' 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등장했다. 시민운동가들의 단톡방에서 그 문장을 본 순간 참여정부의 비극이 오버랩 되었다. 도대체 지지한다는 행위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지지의 유효항목은 또 어떤 것들일까. 이래서 지지하고 저래서 지지를 철회하고, 이제까지 한 일이 무엇이냐고 닦달을 하는가 하면 아무래도 이 정권은 밑천이 다 드러난 것 같다고 비아냥거린다. 참을 수 없는 지지의 가벼움이다. 무릇 누구를 지지한다는 것이 그토록 경망스럽고 가벼울진대 그런 지지 따위는 없느니만 못하다.

"나는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어떤 억지를 써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내편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던 이들의 비난은 차마 견디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아무리 증거를 대고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이라크 파병도, 한미 FTA도 무조건 반대했다.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반대만 하더니 급기야 나와 정권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비난했다. 이를 악물어도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다. . . ." (노무현, 진보의 미래 중에서)

▲ 끝내 본인이 탈고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대화집. 운명하는 순간까지 눈에 밟혔을 책.

아픈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 . 대통령의 한계와 이 비극적인 한반도의 상황을 놓고 그 위에서 그림을 그려야 되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전략적 모호성' 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대통령으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했겠는가. . . 그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겠는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전략적 모호성' 이라니 . . . 그 말을 하면서 문재인은 필경 노무현을 떠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다짐했을 것이다. 내가 당신의 몫까지 하겠노라고.

나는 그에게 커피 한 잔을 얻어먹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전부터 지지는 하고 있었지만 정치인이 아니라 자연인 문재인에게 마음을 뺏긴 계기가 되었다. 2500원 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에 . . . 그리고 그 때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하고 싶다. 당신이 만들어 준 커피는 정말 맛이 있었다고 . . . 그것은 커피에 섞여 들어간 당신의 진정성 때문인 것 같다고.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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