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2월 30일 75m 굴뚝 고공농성의 현장이다. 지금 딱 1년이 흘렀는데, 변한 것이 없다.

 

 파인텍 투쟁 

 

흰뺨검둥오리 두 마리가 물밭 주변 높은 나무 위에서 떨고 있다
돌아가야 할 물밭 집을 그리며
백로가 아닌 그들이기에 나무에 둥지를 틀었다는 게 영 믿기지 않아
이웃 동네 물새들도 한두 번 들러 측은한 눈길을 주며
응원을 하고 힘주는 말을 하고 가긴 하지만
나그네는 역시 나그네일 뿐


인간의 셈법으로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은 그 긴 시간의 줄담음을 뒤로 하니
그 찬란하던 뺨선의 흰빛도 탁해지고 있었다
저녁놀 불그스레 물들 때 집으로 돌아오는 그들
물위를 미끄러져 내려앉을 때의 현란한 몸짓과 색조의 황홀경에
신도 두 손 들었는데   
그런 찬사도 다 엣말이 되어버렸다
하루 밤 자고 나면 한 웅큼씩 빠지는 암환자의 머리칼 같은 공포가 밀려온다
축 쳐진 날개깃을 더욱 오무리며 밀려드는 추위에 버텨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꽁지깃에 전해지는 힘줄의 탄력이 무뎌져옴에 전율한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물밭 위를 힘차게 활공하던 시절의 추억조차 아련하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약속과 믿음이 미세먼지가 되어
허공을 맴돌며 자존심의 밑바닥을 여지없이 후비고 있음이다
오늘 이 아침에도 섧은 잠을 께 보니
또 몇 조각의 깃털들이 뺘져 나와 지긋이 응시하고 있지 않은가
숭숭 뚫려버린 모근들은 오늘도 찬바람에 발악하며
존재의 이유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처음 그 하늘을 오를 때 죽어내려갈 수도 있다던 비장한 다짐도
시간의 벽 앞에선 어쩌지 못하고 나날이 나락으로 빨려들어감에 몸서리 친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낼 수 있을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면 아득히 멀리서 밀려오는 두려움에 몸서리 친다
컨베이어 벨트에 짓이겨 외롭게 죽어가야만
눈길이라도 한 번 받을 수 있는 이 야만의 시절이
나무 위와 아래에서 서성이는 그들을 더욱 서럽게 한다

 

▲ 금속노조 차광호 지회장은 굴뚝 농성 동지들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김세권 사장을 압박하면서 19일차 단식농성 중이다.
▲ 파인텍 노조원들이 김세권을 향해 당초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하면서, 차광호 위원장 등은 목동 cbs 앞 노상에서 18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세상이여, 대답하라
나무에 매달려 바튼 숨 몰아쉬는 그들을 내려오게 할 수는 정녕 없는 것인가
줄과 부들이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각시붕어들 숨어 지낼 수 있는 물밭
그 땅 몇 뙤기 내줄 여유조차 없단 말인가
낮에는 먹이를 쫓다 힘든 몸 추스르고 어둘녘이면 몰려들어
날개깃에 머리 처박고 맘 놓고 외다리 잠이라도 잘 수 있는 그런 물밭 말이다

 

그날이 온다면
밤에 수리부엉이 음습한 울음 울고
낮에 말똥가리는 하늘 높이 떠서 공포의 눈알 부라려도
다 참고 이겨낼 수 있다
다만 허공에 흩날리고 있는 약조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아
본래의 문서 퍼즐을 맞춰 되돌려 놓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뭇 생명들이 어우러져 자연의 순리가 넘실대는 그런 곳으로 가꾸어 
위선과 위계와 차별이 없는 평화의 공동체를 일구어 낼 수 있으련만
얼마나 더 많은 땀과 눈물과 피가 있어야 한단 말이더냐

 

▲ 2017년 12월 30일 500여 명의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 일반 시민 등이 스타플렉스 앞에 몰려가 단체협약 이행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작년 12월 30일 75m 굴뚝 고공 농성장 앞의 풍경이다. 파인텍 노조원들을 응원하기 위하여 모여든 집회 참가자들이 남겨 놓은 머풀러, 현수막 등이 사방에 즐비하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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