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계획안이 발표되었다. 우리에게는 서양의 광장과는 달리 전통시대의 광장은 그저 넓은 통행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공간은 통행하는 사람이 중심이었고 가끔씩 행차가 있어서 특별한 교통의 기능이 있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광장은 마찬가지라 하겠다. 다만 과거의 특별한 교통 기능은 자동차가 차지하여 일상적이고 연속적인 교통기능으로 바뀌어서, 사람과 차라는 교통기능이 혼재할 수 없게 공간으로 바뀐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 붉은 선 안이 광화문 광장 계획안인데, 그림의 맨 아랫쪽 중앙부 바로 위 부분에 바닥분수가 있고, 바로 그 위로 향나무 총림을 위치시키고 있다(사진은 한겨레 2019. 1. 22에서 전재).

광화문 광장이라는 현대적 공간은 이 혼재할 수 없는 양자를 분리하면서도 하나의 공간에 넣으려는 시도로 인하여 언제, 누가, 어떻게 하여도 합의된 의견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 계속해서 이리 저리 뜯어 고치고 바꾸고 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또 새로운 계획안이 탄생하였다. 역시 두 개의 혼재할 수 없는 기능을 한 공간에 처리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광장에 도입한 향나무 숲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향나무는 이름만으로는 향기 나는 나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막대한 예산을 들인 부산의 시민공원에도 향나무를 중심으로 심어 놓은 공간을 두고는 향기정원이라 하고 있다. 향나무를 심어 놓고는 향을 맡을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 것이다. 살아있는 향나무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면 세상의 모든 나무를 모두 향나무라 할 수 있다.

향나무는 살아있는 나무에서 향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향나무 목재를 태움으로서 향을 얻을 수 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향이 필요한 공간 부근에 향나무를 심어 왔다. 그 공간은 사당을 중심으로 하는 제향공간이다. 광장근처 어디에 제향공간이 있어 향나무 목재를 공급해야할 필요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계획안에 들어 있는 향나무 숲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향나무가 광장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는 광장 공간에서의 향나무가 가지는 우리나라 나무로서의 위상이다. 광화문광장은 국가광장이라는 개념을 갖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숲이 향나무로 구성된 숲이라면 향나무는 마땅히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향나무가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하면 고개를 끄떡일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향나무가 현대적 의미의 정원공간에 적극적으로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이다. 일본이 육종한 품종인 가이즈카 향나무가 당시 이 땅에 살던 일본인들의 공간에 심는 것을 보고 따라 심은 것이 정원과 조경공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향나무들은 대체로 해안가에서 살았다. 지금도 울릉도를 비롯한 동해안 바위틈에서 자라는 향나무를 볼 수 있다.

그런 향나무를 도시공간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인 곳에 심는다고 한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이라는 공간은 도로를 따라 형성되는 바람의 통로가 되는 공간이기도 하여 그 통로를 따라 함께 들어오는 먼지들이 향나무 숲에 갇히게 될 것이다. 향나무는 잎과 가지가 치밀하여 먼지를 걸러 낼 수 있겠지만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있는 향나무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광장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향나무 숲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을까. 그것도 총림이라 하는 빽빽한 숲을 말이다. 프랑스 정원공간에서 보는 총림을 생각하고, 그래도 광장 어느 한 곳에 작은 숲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빈자리 채우기를 한 것일까.

세 번째는 향나무 숲이 만드는 공간의 어두움이다. 그것도 사시사철 어두컴컴한 공간이 연출되므로 경관으로도 광화문광장에 적합한 수종이나 숲이 아니다. 광화문광장의 향나무 숲은 이런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나무로 구성된 숲이다.

▲ 100년이 넘는 소나무 35그루를 비롯해 느티나무·이팝나무·배롱나무 등 14종 3200여그루를 심어 도심 속의 아름다운 녹지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사진 출처 : 2015.10.28자 한겨레신문)

광장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서구적인 것이다. 우리식의 광장은 동네 공간에 서 있는 느티나무와 같은 녹음수가 있는 공간이다. 우리의 광장공간은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녹음수와 함께 해 온 것이다. 기후 풍토가 그런 공간을 광장공간으로 사용하게 끔 한 것이다. 우리의 기후 풍토를 무시하고 억지로 서양을 흉내 내어서는 곤란하다. 능력 있는 디자이너라면 마땅히 우리의 전통적 맥락을 고려한 공간계획과 수목도입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박봉우 주주통신원  pakbw@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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