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시이야기]

두 도시 이야기 : 뉴욕 vs 서울 (4)

 

뉴욕 맨해탄을 처음 방문하면 누구나 두 번은 놀란다. 하늘 높이 치솟은 초고층 건물의 숫자가 많은데 한번 놀라고, 모더니즘에서 네오 클래식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을 같은 도시에서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놀란다. 미드 맨해탄에서는 ‘씨그램 빌딩’, ‘시티 코아’같은 모더니즘 스타일의 현대 건축물이 많이 있는데, 로우어 맨해탄 쪽에 가 보면 브로드웨이를 따라 오래되어 변색된 황색의 육중한 조적조 건물이면서 ‘박스’ 형태의 네오 클래식 스타일의 초고층 건축물인 ‘에퀴터블 빌딩’, 조적조 외벽에 하늘로 치솟은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들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사조의 건축 스타일을 보면서 거리를 걷다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 맨해탄 마천루의 형상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코드는 없을까 궁금해진다. 바로 뉴욕 '1916조닝(=용도지역제)'이 맨해탄의 초고층 건물의 형상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뉴욕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웨딩 케이크’ 형상의 건축물이 세워지게 된 배경과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뉴욕 맨해탄 마천루가 연출하는 스카이라인을 즐기는 방법이 될 뿐만 아니라, 21세기 서울의 여의도 금융중심지구 개발에 필요한 어떤 영감을 주리라 기대된다.
 

~ ‘1916 조닝’ 이전

역사적인 뉴욕 ‘1916년 조닝’이 결정되기 이전 자유방임주의 시대에는 임차인에 대한 규제를 제외하고 건물의 건폐 면적이나 고도에 대한 제약이 없었다. 오피스 빌딩에 엘리베이터가 채택되고, 철골구조물 건설이 확산되면서 타워는 10층, 20층, 그 이상으로 하늘을 향해 울라 가기 시작했다. 맨해탄의 높은 밀도는 시민의 안전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초고층 건물의 그림자는 저층부에 렌트비를 싸게 줘도 임차인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초고층 건물은 거리의 교통체증을 가중시켰고, 건물 실내에서는 채광과 환기가 더 나빠졌으며, 거리의 혼잡을 통제하기도 어려워졌다. 신문이나 잡지의 ‘카툰’ 에서는 교통체증과 혼란, 타워형 건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밀한 도시 뉴욕을 조롱하는게 다반사였으며, 뉴욕시민들의 눈에는 맨해탄의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1916년 이전부터 뉴욕시 공무원과 도시개혁가들은 미친 듯이 성장하는 도시를 제어할 법안을 제안해 왔다. 1870년대 중반경부터 이미 상업용 건물이 교회의 첨탑보다 높아지기 시작하자, 고도를 제한해야 한다는 요청이 빗발쳤다. 맨해탄에 입주한 기업들의 성장과 팽창, 그리고 상업 도시의 개성을 새로운 ‘어바니즘’ 개념을 개발해 대처하기보다는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이 적용한 파리 패러다임을 모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많은 미국도시들이 초고층 건축을 배제하고 파리 모델에서 영감을 얻어와 ‘불바드’와 공원을 조망하는 가로 이미지를 조성하는 계획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건축물의 높이 규제의 시급성은 뉴욕 뿐만 아니라 미국 여러 도시가 안고있는 공통된 고민 덩어리였으며, 뉴욕시로 하여금 서둘러 ‘조닝’을 준비하게끔 재촉했다. 시카고는 1893년에 고도를 130피트, 보스톤은 125피트, L.A.는 150피트, 밀워키에서는 225피트로 제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13년에 시청 광장 바로 옆에 세워진 프랑스 고딕양식인 ‘울 월스’ 빌딩은 55층, 792피트 까지 올라가는 역사적 기념 건축물이었다.
 

~'울 월스' 빌딩

2018년 8월 시청 광장 옆에서 바라 본 ’울 월스’ 빌딩의 하늘을 향해 치솟는 형상은 어린 소녀가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순결함의 아름다움을 연상케 했다. 화려한 외장양식과 우아한 뾰족 모자를 쓴 첨탑은 공예조각이 하늘에 떠 있는 듯했고, 밤에는 돌의 양각과 음각사이로 퍼져 나오는 조명이 하늘로 뻗어 나가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 <울 월쓰 빌딩>

초고층의 힘은 실용성 뿐만 아니라 상징성에도 발휘되었다. 고층건물이 전해주는 상징성의 광고 효과는 기업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다.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55층이라는 높이에 도전한 ‘울 월스’ 건축주의 야심은 적중했다. 이후 맨해탄 사업가들은 하나같이 ‘울 월스’ 빌딩보다 높은 마천루를 원했으며, ‘울 월스’ 빌딩은 맨해탄 하늘을 향해 마천루가 치솟는 경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마천루는 뉴욕의 번영과 긍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맨해탄은 뉴욕시의 정체성을 마천루 도시로 굳혀나갔다.


~ ‘1916 조닝’과 에퀴터블 빌딩

‘브로드웨이’에서 세계 금융의 1번지 ‘월 스트리트’로 들어가는 선상에 서있는 1915년 완공된 ‘에퀴터블 빌딩’은 맨해탄 초고층 건물의 모양을 ‘박스’형태에서 ‘웨딩 케이크’ 모양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장본인이며, 규제 받지 않는 개발이 초래하는 최악의 예였다. 체적 120만 제곱 피트인 그 당시 세계 최대 오피스 빌딩으로서 ‘브로드웨이’, ‘나쏘’ ,’파인’ ,’씨다’ 스트리트로 둘러 싸여 전체 블록을 커버하는 초대형 필지였으며 그 당시에는 초대형에 해당하는 13,000명의 근로자가 상주할 수 있었다.

 

▲ <에퀴터블 빌딩>

맨해탄의 미친 듯한 성장을 대표하는 ‘에퀴터블 빌딩’은 인접 건물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뿐만, 부동산 가치에도 손상을 입혔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이 절실했다. 그 결과 ‘1916년 조닝' 조례가 채택되었다. ‘조닝’ 법을 쉽게 설명하자면, 내 땅에 짓는 마천루가 남의 땅에 그림자를 너무 많이 만들지 않도록 건물의 외관 형태를 위로 갈 수록 좁게 하자는 법으로,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일조권 사선 제한’이었다.

1916년 조닝은 매우 급진적이고 혁신적이었다. 그 이전에는 ‘1916 조닝’ 처럼 강하게 사유 재산인 부동산 권리를 제약하는 법률이 없었다. ‘1916 조닝’은 주거용도를 보호하려는 열망보다는 상업용 부동산을 규제하려는 운동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보듯, 가진 자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그런 의미에서 ‘1916 조닝’은 이념적인 면에서도 급진적이었으며, 또한 도시계획 기술차원에서도 혁신적이었다. 즉, 하나의 조례 틀 안에서 최대 용적을 제약하면서 '용도에 의한 지구화'를 통해 개별건물을 허용하는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높이와 체적을 동시에 제한하는 공식을 창출했다는 면에서 혁신적 기법이었다.
 

~ 월 스트리트와 여의도

수변과 맞닿아 있는 세계금융의 1번지 뉴욕의 월가와 비슷한 지구를 서울에서 꼽으라면 여의도 증권가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여의도를 강남, 광화문과 함께 3대 도심으로 지정해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 개발할 계획이라 한다. 이를 위해 2023년까지 50층 이상의 초고층 타워형 건물을 늘리기로 했다는데, 이렇게 고층 고밀도로 개발할 경우 초고층 건물의 업무시설 면적은 서울국제금융센터(SIF)와 파크 원의 준공으로 2023년에는 2.7배까지 확대되리라 전망된다. 여의도 금융중심지 개발은 로우어 맨해탄의 월가와 유사한 지구의 등장을 예견해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내년 말까지 지하철 여의도역에서 문화방송 앞까지 430m의 중앙가로를 통합문화공간이 있는 '국제금융디자인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갖고있다. 이 거리가 제이피 모건 본사 빌딩, 왈도프-아스토리아 호텔, 시그램빌딩, 레버 하우스 등의 쟁쟁한 모더니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는 맨해탄의 파크 애비뉴처럼 국제 금융거리로 탈바꿈하기를 꿈꾸어 본다.

▲ <업무와 주택지가 어우러진 여의도 전경>

‘1916 뉴욕조닝’은 초고층 건물을 지으면서도 이윤을 남기고, 시민에게 공공성을 제공하는 높은 완성도를 이루었다. ‘1916 조닝’은 계속 진화하여 21세기 글로벌 도시 런던, 두바이, 싱가폴과 함께 서울의 여의도 금융중심지 초고층 건물 디자인을 이끄는 힘찬 견인차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필자: 21세기 글로벌 도시연구센타 대표/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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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조재성 주주통신원  globalcityr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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