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은 판타지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실존 역사까지 들먹이며 워낙 그럴듯하게 묘사해 사실인지 판타지인지 혼동을 일으키지요. 이런 판타지는 중국인의 현실 도피적인 생각과 잘 어울립니다. 그들은 전쟁과 수탈에서 벗어나 무릉도원을 꿈꾸다 보니 절대적인 힘, 불로장생, 그리고 부에 대한 욕망이 강합니다.

이런 중국인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책이 산해경(山海經)입니다. 산해경은 중국의 신화집으로 진나라 통일 이전에 구전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으로 추측이 됩니다. 곤륜산에 얼음 궁전이 있고, 그곳에 서왕모가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 열리는 복숭아를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이야기. 동박삭이 서왕모의 복숭아를 따먹고 삼천갑자, 18,000년을 살았다는 등의 허황된 내용이 가득합니다.

정확한 사실은 진시황 이전(소전체 이전)의 한자는 모양이나 의미의 통일이 안 되었고, 2,200~2,600년 전 사이에 사용된 대전체까지는 문자로서 신뢰가 가지만 그 이전의 금석문이나 갑골문은 상상과 추정만이 가능합니다. 한자문화권에서 BC1,000년 이전의 것을 역사로 주장하는 모든 내용은 뻥이지요.

공자와 노자가 활동하던 BC500~600년 전의 글도 대부분 작자 미상이거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내려왔다고 보입니다. 도덕경이나 묵자, 장자의 글도 한 사람이 쓴 게 아니라 후대에 필요에 의해 첨삭이 되면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노자나 공자의 사상은 뒤를 이은 맹자나 장자에 의해 전승되었습니다.

역사상 무협소설의 판타지와 가장 유사한 집단이 묵가들이었습니다. 묵자가 활동할 당시에는 실제로 공자사상은 사라지고 묵자의 겸애(兼愛)가 중국사회를 뒤덮고 있었지요. 묵자의 사상은 사회주의와 유사합니다. 네 것 내 것 나누지 말고 함께 살자며 경제적 평등을 강조합니다. 또한 너의 부모가 나의 부모이니 서로 사랑하며 함께 모시자고 하였지요. 당시 묵자는 무림 맹주와 같은 위치였고, 따르는 무리의 생사여탈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나라가 약소국인 송나라와 정나라를 치자 달려가 함께 방어하기도 했습니다.

공자 사상을 추종한 맹자는 묵자를 공격하지 않고는 공자의 사상을 전파할 수가 없어, 묵자의 겸애는 어미 아비를 부정하는 이론이라며 맹공을 하지요. 덕분에 후대가 끊긴 묵자의 책은 지금도 태반이 해석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이설이 분분합니다.

산해경류의 판타지가 현대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무협소설로 부활했습니다.

이소룡의 ‘정무문’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동양의 신비한 무술이 덩치 크고 잘사는 서양인을 압도하는 환상을 갖지요. 소림사 쿵푸는 달마대사의 스토리와 더불어 중국인들의 자랑거리입니다.

▲ 이소룡 주연의 영화 정무문 포스터            사진 : 위키피디아

제 2의 홍금보, 성룡, 이연걸을 꿈꾸며 숭산 소림사 부근의 여러 무술학교에서는 수많은 빡빡머리 꼬마들이 무술연마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중국무림을 묵사발로 만들며 중국인의 자존심을 짓밟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동족인 중국인이.

이종격투기를 은퇴하고 지도자로 활동하는 쉬샤오똥(徐曉冬)이라는 사람이 “중국무술은 사기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무림에서 난리가 나고 자존심이 크게 상했지요. 뇌공태극(雷公太極)의 장문인 웨이레이(魏雷)가 공개적으로 반박을 하면서 SNS에서 논쟁이 붙었고, 주변에서 웬 떡이냐 들고 일어나 한번 붙어보라고 합니다.

드디어 2017년 4월 사천성 청두(成都)에서 만나 공개적으로 붙었습니다. 39세의 쉬샤오똥과 41세의 웨이레이(魏雷) 장문인이 맞붙었는데 20초 만에 웨이레이가 KO로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중국인들의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그 다음에 영춘권의 실력자라는 띵하오(丁浩)가 나섭니다.

▲ 실존인물인 엽문과 이소룡(상), 영화 엽문을 연기한 배우 견자단(하)      사진 : 위키피디아

혹시 엽문(葉問)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심천 위에 불산(佛山)이란 곳이 일본 지배하에 떨어지고, 칼을 든 일본 검도 고수들이 중국 무림 고수들을 격파해갈 때 맨손으로 검도 고수와 대결하여 무찌르고 기차를 타고 홍콩으로 가던 배우 견자단의 모습. 그 엽문이 바로 홍콩에 영춘권을 전파한 장본인입니다. 영춘권은 모든 형식을 버리고 최단거리로 최강의 힘을 내서 상대를 쓰러뜨리는 중국무술입니다. 이소룡이 바로 엽문의 제자가 되어 영춘권을 배우고 미국으로 건너가 부르스 리라는 배우가 되었지요.

2018년 3월 영춘권의 띵하오가 도전을 하자 이제는 중국무술의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며 영화가 현실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응원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일방적인 응원과 그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상대도 되지 않게 무너지고 맙니다.

알리바바 마윈 회장까지 공개적으로 중국무술을 지지하였고, 그의 경호원이 도전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는 설이 돕니다. 이종격투기 쉬샤오똥을 꺾으면 주겠다는 엄청난 상금까지 현재 걸려있습니다.

드디어 또 한명의 무림 고수가 나타났습니다. 1갑자(60년) 가까운 내공까지 수련한 56세의 태극종사 티엔예(田野)입니다.

2019년 1월 최근입니다. 결과는 그냥 상대도 안 되었다 입니다. 몇 대 맞고 유혈이 낭자하더니, 공격도 안하고 맞아주어도 초등생과 성인의 격투기와 같았지요. 관중을 생각해서 시간을 끌다가 무릎치기 한 방으로 눕히고 끝냅니다.

무엇을 보고 배웠느냐보다 누가 어떻게 단련을 했느냐가 더 중요해보입니다. 태권도 역시 중국무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태극권 수련을 접었고, 30분 이상 매일 조금 빨리 걷고 근력운동을 함께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것만이 최고인 줄 알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도, 발전할 수도 없는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가 되지요.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