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광주항쟁 당시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폭행하는 장면(사진 출처 : 5,18 기념재단 제공)

39년 전 광주는 전두환 신군부세력에 의해서 철저히 고립되었다. 광주시민을 대상으로 자행된 참혹한 학살 만행이 대학가 지하유인물이나 외신을 통해서 간헐적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신문과 방송은 통제되었고 제도언론은 광주의 진실을 외면했다. '폭동', '무정부상태', '무질서', '광주사태' 등은 당시 조선일보 등 주요언론이 광주를 외면하면서 주로 썼던 용어들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교과서에서 '광주사태'라는 왜곡된 용어를 폐기했다. 그리고 90년대 문민정부 이후 '광주민주화 운동'이란 용어로 재정립되었다. 그리고 국가기념일로,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광주 항쟁 당시 희생자 비율에서 구두닦이, 다방 아가씨, 공장 노동자 등 다수를 점하는 주변부 사회 계층의 참여를 생각하면 '광주민중항쟁'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옳다. 특히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을 먹인 양동시장 상인들이 보여준 공동체성과 일그러진 시신의 핏물을 일일이 닦아내며 온전한 모습을 복원하려 애쓴 여고생과 창녀들의 눈물겨운 헌신성이 그렇다.

부처님 오신 날! 온 누리에 자비심이 충만해야 할 그 날에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로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금남로 발포 현장에서 54명이 즉사하고 500명이 넘는 총상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역사가들이 80년 5/21을 '피의 수요일'로 부르는 이유이다. 그날 광주 시내 병원 복도마다 즐비하게 수술을 기다리는 총상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리고 피가 모자란다는 다급한 소식을 듣고 광주 시민 너나 할 것 없이 길게 늘어선 헌혈 행렬에 줄을 서는 풍경이 목격되었다. '광주민중항쟁'이 파리코뮌보다 아름다운 도덕공동체를 구현한 것이다. 나아가 항쟁 주체가 누구이고 항쟁의 성격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검인정 교과서의 '광주민주화운동'은 좀 더 객관적 사실에 맞게 '광주민중항쟁'으로 기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39년을 맞는 오늘날 예전 국정제 교과서 역주행만큼이나 광주는 혼란스러움의 연속이다. 한 때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인 <님을 위한 행진곡>이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제창되지 못한 것이 그러했다. <아리랑>이 민족의 정서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듯이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이다. '5・18'이 공식적인 국가기념일이자 국립묘지에서 거행되는 국가행사인데도 이명박근혜 정권 보훈처는 궤변으로 기념곡 지정을 회피해 왔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이명박근혜 역시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흐릿하게 떠넘겼다. 당시 기념식에 참석한 국무총리도 <님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되는 동안 주변 인사들의 제창과 달리 입을 굳게 다문 채 따라 부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광주민중항쟁'을 폄훼하는 패륜적 행위들은 39년을 앞둔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촛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9개월이 지나가는 지난 8일에 황당하고 맹랑한 작태가 연출된 것이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주최한 '5・18 진상 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또다시 '광주민중항쟁'을 왜곡, 비하한 것이다. 광주민중항쟁을 '광주폭동'으로, 5・18 유공자회를 국민 혈세를 축내는'괴물집단'으로 비하하며 막말을 쏟아냈다. 그것도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벌어진 일이다.

▲ 2019년 2월 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국회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 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북한군 특수부대 소행>을 주장한 지만원 박사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으며 이종명 의원은 <광주폭동>이라는 망언을 하였다. 약사회 출신 김순례 의원은 5,19 유공자회를 <혈세 축내는 괴물집단>이라며 색출해야 한다는 막말을 쏟아냈다.(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더구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궤변까지 늘어놓으며 그들을 옹호하는 듯한 망언까지 했다. 특히 행사를 공동주최한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은 과거 세월호 부모님들을 향해 '시체장사', '거지근성'이라는 막말을 내뱉은 자라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5・18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에 피로써 저항한 민주화운동이다. 이는 역사학자들 99%가 인정하는 명명백백한 팩트이자 법원의 최종 판결이다. 세계가 인정하고 절대 다수 국민들이 인정한 민주화운동을 국회의원 100석이 넘는 제1 야당은 여전히 흔들어 대고 왜곡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광주민중항쟁 39주년이 되는 올해에 벌어진 천인공노할 언동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39년 전 학살로 희생된 광주영령들을 두 번 죽이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광주는 39년 전이나 39년을 앞둔 오늘날이나 여전히 고립돼 있고 그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 계엄군의 헬기 사격 등 5월 광주항쟁 기간 학살된 시민들(사진자료 : 한겨레 신문)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세계사 교과서에 '파리코뮌'이 등장한다. 1871년 3/28 - 5/28 석 달에 걸쳐 존재했던 혁명적 자치정부! '파리코뮌' 당시 파리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보다 오월 항쟁 10일 동안 보여준 광주 시민들의 높은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교과서에 상세히 기술하고 길이길이 칭송해야 마땅하다.

항쟁 기간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공동체성과 높은 연대의식! 그리고 빛나는 희생정신과 드높은 헌신성! 그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자랑스럽고도 소중한 문화자산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정신사적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뛰어나다. 특히 총기 5천정이 풀린 상태에서 치안에 전념한 시민군의 열정적인 태도와 광주 시민들의 높은 도덕성은 인류 역사상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회였음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항쟁 10일 동안 매점매석 등 투기행위가 일절 없었고 은행이 털리는 경우도 없었다. 총기 5천정이 시민들 손에 쥐어졌는데도 단 한 건의 전당포 강도행위나 치정에 얽힌 살상행위가 없었다는 사실은 광주가 아름다운 도덕공동체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상사회를 머릿속에서나 상상하며 관념 속에 존재하던 유토피아를 항쟁 기간 광주 시민들은 나눔과 협력의 공동체 정신을 통해 현실 속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정신 유산인가!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인류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기억해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39년을 앞둔 오늘날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돼 있고 민주 시민의식이 고양돼 있다는 서울에서조차 5월 광주 정신을 기리는 교육행사는 학교현장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광주항쟁 기념 마라톤 대회, 축구대회, 글쓰기 한마당, 합창대회, 주먹밥 행사 등 다양한 교육행사를 진행할 만도 한데 서울의 초·중·고교에선 광주와 관련 없는 듯이 그냥 조용히 지나가 버릴 가능성이 크다. 2017년 운정동 국립묘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5월 항쟁 기념식은 품격 있고 감동적이었다.

▲ 5월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에 학살된 아버지를 추모했던 딸을 마지막으로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 채 살아온 딸은 대통령의 위로가 아버지의 품처럼 따뜻했다며 감동을 준 장면이다.(사진 출처 : 한겨레 자료 사진)

그러나 서울의 학교에선 그렇질 못했다. 학교 바깥에서 오월 사진전이 잠깐 열렸을 뿐이다. 박근혜 정권에선 오월 사진전도 5월 20일 이전에 철거했다. 광주의 초중고교에서는 5・18 광주항쟁 기간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항쟁 관련 각종 교육적인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고 뜻을 새기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와 다르게 서울 지역 학교에선 기념행사가 극히 일부 학교의 주먹밥 행사를 제외하곤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광주, 전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도 거의 서울과 마찬가지인 게 현실이다. 39년을 앞둔 광주가 여전히 고립된 현실인 까닭이다.

오월 광주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교육적인 형태로 그리고 가장 교육적인 내용으로 진행해야 할 현대사의 소중한 역사적 경험이자 인류 정신문화의 위대한 자산이다. 따라서 교육적 가치를 지닌 항쟁 관련 교육행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39년을 앞둔 오늘날도 여전히 광주가 고립돼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단지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인지 합창인지 계속 논란을 빚었던 이명박근혜 정권만이 저지른 문제가 아니다. 39년을 앞둔 오늘날 '광주폭동'으로 심지어 '북한 군 특수부대 소행'으로 국회 행사장에서 떠들며 전두환을 '영웅'으로 칭송하는 작태가 버젓이 벌어진 현실은 ‘광주의 고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역사의 일보 전진을 위해서 이 시대 교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적어도 '광주 민중 항쟁'을 학교교육과정 속에 녹여내고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오늘의 역사’로 가르치는 일이라 단언한다. 개학을 하면 학교 차원에서 아니 진보교육감이 다수인 교육청 차원에서 광주민중항쟁을 교육적으로 널리 알리고 아이들 가슴에 오롯이 새기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주주통신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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