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에 시작한 일을 아직까지 하고 있다. 2007년에서 2010년 4년 동안 다른 일을 하다가 복귀했으니 햇수로 15년째다. 욕심이 없는 건지, 도전정신이 없는 건지, 친절이 습관화 된 건지... 전화로 고객 상담 15년, 지긋지긋할 만도 하건만 질리지 않고 하고 있으니 내가 좀 별종인가?

질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고객들 덕이다. 35년 된 우리 모 회사는 수출전문 제조업체다. 만드는 제품 95%를 수출하기 때문에 국내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는다. 광고·홍보 없이도 우리 고객들은 최장 30년, 대다수 10년 이상 우리 제품을 믿고 사용한다. 정기적으로 부품도 교체하는 ‘마니아고객’이다. 오랫동안 전화상담을 해서 그런지 전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알아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불만은커녕 정기적 안내를 해주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한다. 가끔 집안 일, 아이들 대학 간 것, 시집 장가보낸 일 등 소소한 이야기들도 고객들과 나눈다.

얼마 전에는 고객이 “그 때 식탁 위에 놓은 유리수조 밀어서 박살낸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니까요.” 라고 해서 “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하며 같이 웃기도 했다.

대부분 즐겁게 대화를 나누지만 워낙 오래된 고객들이 많은지라 마음 아픈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요새는 두 부부가 살다가 한 분을 요양원에 보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남편이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딸이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치매환자 10명 중 7명은 여성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대부분 여성이다.

더 마음 아픈 소식은 고객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다. 대부분 노환으로 돌아가시는데 얼마 전에는 고객이 교통사고를 당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드님과 통화 중 뭐라 할 말을 잊어 서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 병간호를 하다 먼저 돌아가신 고객도 있다. 방문을 원해서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고객이다. 남편 분이 당뇨합병증으로 거동이 불편해 24시간 붙어있어야 한다면서,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시던 분인데 아드님이 사망 소식을 알려주었다. 늘 차와 맛있는 간식을 해놓고 기다려주신 그 고객이 얼마나 따뜻한 분인지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알고 있었기에 나도 그만 목이 멨었다.

위 경우를 제외하고 ‘먼저 갔어’라고 말해주는 대부분은 아내분이다. 등록된 고객 성함이 남편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성함을 바꿔드릴까요?” 그러면 바꿔달라고 하는 경우고 있고 그대로 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한 고객은 잉꼬부부였는지 “이 때나 이름 들어보지 언제 들어보겠어.”라며 계속 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셨다. 반면에 콩나물 값도 타서 썼는데 남편 사망 후 맘대로 돈을 쓸 수 있게 되었다며 살짝 신이 난 듯 말씀하신 분도 있었다. 남편에 대한 애틋함이 하나도 없구나 하고 느껴졌다. 오죽했으면 그럴까 생각도 하고...  

▲ [탁기형의 생각 있는 풍경] 그가 떠난 자리(사진 출처: 2018년 7월 7일 한겨레신문)

내가 죽으면 내 주위 사람들은 내 이름을 지우고 싶을까? 아니면 애잔한 그리움으로 남겨두고 싶을까? ‘죽은 다음에 내 이름을 지우던, 남기던 그건 내 알 바 아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환갑 바라보는 나이라 언제 떠날진 모른다. 아직은 살아갈 시간이 좀 더 남아 있는 것 같으니, 내 떠난 자리가 부끄럽지 않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성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집착은 아니겠지?

편집 : 김혜성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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