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 vs 명동

[미국 도시이야기] : 뉴욕 vs 서울 (6) 

 

소호vs명동

뉴욕의 역사를 보면 영국은 네덜란드로부터 맨해탄을 빼앗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운 것을 알 수 있다. 맨해탄은 미국의 다른 지역 항로와 육로가 모이는 입지적으로 뛰어난 천혜의 무역 교차지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맨해탄 이라는 지명은 ‘언덕이 많은 지역’이라고 인디언들이 부르던 “매나하타”에서 유래했다. 남북 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나자, 맨해탄은 미국 산업혁명의 거점 도시가 됐다. 늘어나는 부는 새로운 건물과 콘텐츠를 요구했다. 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초고층 건축물들이 등장하고, 1916년에는 현대적인 도시계획 기법이 소개되었다.

맨해탄 초고층 건물의 등장은 2000년대 이후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맨해탄은 개성있는 ‘웨딩 케이크’형태의 건물과 협곡같은 독특한 가로 분위기를 연출해냈으나, 서울 강남은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이 테헤란로를 따라 획일적으로 늘어선 밋밋한 가로 이미지에 그쳐 개성있는 서울만의 도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는 실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웨딩케이크 스타일” 빌딩 : 뉴욕 맨해탄>

 

~ 로우어 맨해탄

맨해탄은 1890년대 중반이후 빠른 인구 증가와 비즈니스의 성장으로 건물을 수직으로 올라가게 했다. 1880년대 120만 인구에서 1900년에 이르면 340만을 넘어선다. 이러한 성장은 뉴욕시 전역에서 건물에 투자하는 경쟁이 일었다. 특히, 로우어 맨해탄에서는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맨해탄의 지가 상승은 역동적이어서, 토지가치의 상승은 세계 어떤 도시도 비교되지 않았다.

20세기 전환기에 로우어 맨해탄은 스카이 라인의 절묘한 형상이 그 형태를 갖추면서 고층화하기 시작했다. 건물의 고층화는 철골구조 공법과 카이슨 기초공법, 그리고 더욱 효율적인 엘리베이터 건축기술의 진전에 힘입었다.

로우어 맨해탄 스카이라인 변화의 시발은 2개의 둥근 지붕을 갖춘 “파크 로우 빌딩”이 391피트까지 뻗으며 시티 홀 주변 초고층 건물 군의 앵커로 자리잡으면서 이다. 1908년에서 1913년 기간에 건설 붐이 일면서, 세계 최고층 건물의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몇개의 건물이 경쟁했는데, 1908년 ‘싱어빌딩’이 612피트로 정상을 차지했으며, 1909년 메디슨 스퀘어의 ‘메트로폴리턴 라이프 인슈어런스 타워’는 701 피트까지 뻗어올랐다. 1913년 최정상의 타이틀은 792피트까지 치솟은 로우어 맨해탄에 있는 ‘울월쓰 빌딩’에게 돌아갔다. “울월쓰 빌딩”은 “크라이슬러”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929년과 1931년 세워질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오피스 빌딩으로 등재됐다.

 

~ 1916조닝과 맨해탄의 다양화

자유방임주의 환경과 최상의 입지를 찾는 수요는 브로드웨이의 가치를 드높이며, 고층화를 촉진했다. 시티 홀 파크 주변의 월가와 브로드웨이로 밀려드는 빌딩들의 덩어리가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서 1916년 까지 공통된 특징은 건물 높이와 형태에 대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초고층 건물은 이론상 부지를 완전히 덮고 무제한의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1916년 조닝 규제를 통해 맨해탄의 동쪽지역은 업무지구나 무제약지구로 지정되었다. 5번가와 파크 애비뉴, 센트럴 파크 근처 가로들은 주거지역이 되었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주거지역, “로우어 이스트 사이드”는 임차인 지구로 지정된 것이다. 34번가에서 42번가에 이르는 7번 애비뉴는 무제약지구 였으며, 그 외 나머지 부지는 업무지구로 지정되는 등, 맨해탄의 토지용도가 다양한 특색을 갖는 지구로 나뉘어졌다.

‘1916 조닝’은 필지에서 허용가능한 건물의 최대 용적을 정의하는 “조닝 엔빌롭(zoning envelope)” 개념을 제시했다.  “조닝 엔빌롭”은 파리, 런던, 보스톤 ,시카고와 같은 유럽과 미국 도시에서 부과한 고도한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1916 조닝’은 고도에 대한 절대 한계를 설정하는 대신에, 평지붕과 처마장식을 장려하고, 개별 건물과 스카이라인을 이용해 3차원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계단형 피라미드’ 또는 ‘웨딩케이크’ 빌딩은 1916년부터 조닝 법이 수정되는 1961년까지 도시 고층화의 전형이 되었다. 새로운 도시계획규제라는 제약임에도 불구하고 다이나믹한 상업용 개발을 허용하고, 균형있는 '타워 도시 뉴욕'이라는 특유의 정체성(=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 것이다.

 

~ 소호 vs 명동

 

<’소호(SOHO)’ 쇼핑지구>

 

브로드웨이를 따라 서울의 명동이나 청담동과 같은 디자이너 주문제작 의상 아트 갤러리가 밀집한 ‘소호’(SOHO)로 나아가보자. ‘소호’는 19세기 “프랑스 제2제국시대” 디자인에 주철 외장 건물의 최대 집결지이다. 이 ‘소호’거리를 걸으면 여기가 맨해탄의 과거를 회상케하면서 또한 새로운 유행이 시작되고 스타일이 정의되는 최첨단 패션의 본거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녁에는 지하철 입구에서 사람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해가 떨어지고 쇼윈도의 불들이 하나 둘씩 켜지자 거리에는 인파로 들끓어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야 했다.  북쪽을 보니 “아르데코” 양식의 “크라이슬러 빌딩” 첨탑에 불이 들어왔다.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고딕”양식의 “울 월쓰 빌딩” 첨탑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도시운동가 ‘제인 제이콥스’ 여사의 활동으로 재개발 철거 위협에서 보존된 ‘소호’는 화려한 외양의 건물들과 인파로 들뜬 거리분위기로 인해 맨해탄의 낭만성을 최고로 조화시키는 연극 무대 같았다.

괴테가 활동한 19세기 독일의 감상주의나, 오스만에 의해 조성된 20세기 파리 샹제리제 거리의 낭만성과는 또다른 최첨단 패션과 과거의 기억, 젊은 문화가 어우러져 붐비는 21세기 ‘초현대의 낭만성’이 '소호'에는 있었다.

 

 

<서울 명동 거리>

 

<서울 강남 테헤란로>

 

 

<서울 인사동 거리>

 

서울의 명동과 인사동에도 우리나라만의 역사와 정취가 있으며, 강남대로와 테헤란 로에도 도시의 젊음과 초고층 건물이 존재한다. 그러나 서울 도시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뉴욕 ‘소호’(SOHO)에서 발견되는 ‘초현대의 낭만성’이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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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조재성 주주통신원  globalcityr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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