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태어나게 했냐고 !!

영화 '가버나움'을 보고 유원진 객원편집위원l승인2019.03.08l수정2019.03.0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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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뭐야?”

상영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한 것에 안도하며, 기다리고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내 생각에 그나 나나 영화를 무척 좋아하긴 마찬가지지만, 영화는 꼭 개봉관에서 봐야 제맛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대부분의 영화를 케이블TV 무료영화관에서 보는 나를 영화광으로까지는 승격을 시켜주지 않은 상태다. 혼자서 잘 보러 다니다가도 가끔 같이 보자는 연락이 오면 절대로 거절하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 감별에 대한 그의 촉은 탁월하다. 친구가 움직이는 계단에 오르면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잘 못 들었다.

“거버넌스? 또 문제적 영화구나? 야! 우리도 이제 오락 영화 좀 보자.”

“거버넌스가 아니고 가버나움 !”

제목도 잘 모르고 보기 시작한 영화는 중동의 난민 가정 방 한가운데서 시작되었다. 12살 먹은 남자 아이는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탁월한 연기를 하고 있었고, 배경은 더 이상 자연스러울 수가 없을 정도로 실제의 삶, 그 자체였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주인공 꼬마, 자인의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열 한 살짜리 여동생이 잡화점 남자에게 팔려가는 걸 막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앞에서 나는 분노와 무기력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 한 살 어린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지만 . . .

작년 가을쯤에 CNN 방송에서 ‘그들은 왜 우리를 증오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이슬람 특집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IS를 비롯한 많은 이슬람권의 국가들이 왜 그리도 미국을 증오하는가 에 대한 내용이었다. 영어가 과문한 탓에 100%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CNN 관계자들을 비롯한 많은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봤다면 이슬람 전사들이 어떻게 탄생 되는가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당시 특집은 온전히 미국인의 시선으로만 이슬람을 본 기록이었다고 기억한다.

▲ 부모를 고소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주인공 자인.

영화는 전혀 반미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았기에 혹여 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한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수십만이 굶어 죽은 북한의 비극이 자주 영화 화면에 겹쳐져 떠 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국경 근처 중국의 시장 바닥에서, 진창과 범벅이 된 국수 가락을 주워 먹던 북한의 어린 꽃제비들이 눈 앞을 어른거렸다. 그걸 TV로 보여 줄 줄은 알아도, 대책을 세울 줄은 몰랐던 남한사람들 . . . 그들의 가난이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가 돼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그들의 구원에 동참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가난에 빠져있는 중동 난민들에 대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 학대 등, 중동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루었지만 결국에는 인간에 대한 영화, 따뜻함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12살 꼬마가 엄마를 잃은 한 살 짜리 아기를 안고 다니며 돌보는 과정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왜 삶이란 이토록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가. 더 이상 처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기의 손을 놓지 않는 자인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눈물을 훔치기는 했지만 관람 후 찾아본 영화 후기에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 운운은 격이 맞지 않는 평이다.

그러나 정작 놀라움은 영화가 끝난 후 자막이 올라갈 때 일어났다. 자인이라는 주인공 소년이 실제 시리아 난민이고 출연진의 대부분이 난민 캠프에서 캐스팅 된 사람들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삶 그 자체를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었다고 자막은 설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영화 출연 후 새로운 삶을 찾았다고 한다.


밖에 나오니 대낮의 태양은 미세먼지 속에서도 빛나고 있는데, 오래 잊고 있었던 낮술 생각이 간절해졌다. 내가 두리번거리니까 두 손을 주머니 속에 깊게 찌르고 서 있던 친구가 턱을 까딱이며 말했다.

“저 호프집 문 연 거 같은데?”

“야 다음엔 정말 오락 영화 하나 보자. 이제 너나 나나 더 아파야 할 가슴도 없잖아?”

“가슴 아팠냐? 뭐 그 정도를 가지고 . . .”

“그나저나 하노이에서 트럼프가 판 깼다며? 내 참 더러워서 . . . 술이나 마시자 젠장 . . .”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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