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라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니까 다시 느긋하고, 행복한 날이 시작됐습니다. 푹 자고 일어난 다향이랑 아침밥을 먹고 뒹굴뒹굴 놀았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다향이는 원하는 책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실컷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레고나 퍼즐을 맞추고, 같이 장난감 놀이도 했지요.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서 놀다가 쿠키나 빵을 굽기도 하고, 부침개를 만들어 먹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다향이도 가사노동에 일정 부분 참여를 시켰습니다. 함께 반찬을 만들고, 밥 짓는 법이랑 라면 삶는 법 등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빠엄마가 다해줄 테니까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인지 요즘 젊은 층을 보면 요리에 젬병입니다.

그즈음에 비비탄이 발사되는 권총과 그것이 점수판에 딱 달라붙는 신기한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툭 하면 사격시합을 하자는 다향이한테 말했지요.
“다향아, 그냥 시합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할까?”
“내기? 어떤 내기?”
“지는 사람이 설거지하기 어때?”
“좋아. 얼른 해, 아빠. 아참, 아빠부터 쏴.”

한동안 밥을 먹을 때마다 ‘설거지 배 사격대회’를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승리욕이 강한 다향이입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만큼 집중력 또한 뛰어났지요. 그래 처음에는 설거지를 하는 횟수가 반반이었습니다. 게임에 이기면 환호하고, 지면 시무룩해지는 다향이. 뭐 다향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겠지요. “다향아. 게임이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지 어떻게 날마다 이길 수 있어? 그리고 날마다 이기기만 해도 재미없잖아?”하고 타일러도 “아니야, 매일 이기는 게 좋아” 하면서 툴툴거렸습니다. “이기면 좋아하고, 졌다고 해서 화를 내고 상대방을 약 올릴 거면 게임을 하지 마. 그런 사람은 게임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했습니다.

다시 다향이랑 산책하러 다닐 시간이 넉넉해졌습니다. 날이 좋으면 중문동에서 컨벤션센터로 해서 중문해수욕장까지 걸어갔습니다. 과천에 살 때는 서울대공원을 산책하면서 행복감을 느꼈었는데 그 길을 걸으면서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인파가 넘쳐나고, 코끼리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길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다향이랑 손잡고 그 길을 걸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와서 뭐하냐고 묻는 친구들.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산책 중”이라거나 “중문해수욕장인데 파도소리 들려줄게” 하면서 파도에 전화기를 대주면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요.

파도에 떠밀려온 나무 조각을 줍기도 하고, 긴 막대기를 주워서 모래밭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기도 하고요. 나뭇가지로 모래에 선을 그으면서 달려가면서 외쳤습니다.
“다향아, 이 선은 기찻길이야. 넌 기차고. 그러니까 잘 따라와야 해.”
“알았어, 아빠”

다향이가 달려왔습니다. 선로를 지나는 기차처럼 칙칙폭폭 칙칙폭폭 뽀오옥! 하면서 따라왔습니다. 기찻길은 편평한 길을 곧장 가다가 산봉우리를 만나면 돌아갑니다. 기차도 굽은 길을 따라옵니다. 또 한 바퀴 원을 그리면서 가기도 합니다. 엿장수 마음대로가 아니라 기관사 마음대로입니다. 역할을 바꿔서 다향이가 기관사가 되고, 나는 기차가 돼서 칙칙폭폭 뽀오옥! 하면서 달립니다. 기찻길이 툭 끊어지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집니다. 으아악!

그러다가 지치면 앉거나 누워서 쉬고, 준비해간 간식이나 도시락을 먹습니다. 예쁜 조개데기도 줍고,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목걸이를 만듭니다. 갯바위 틈을 살피면서 보말이나 오븐자기를 줍고, 운이 좋을 때는 제법 알이 굵은 소라나 해삼을 주워오기도 했지요.

뜨거운 날은 당연히 물놀이가 최고입니다. 수영을 잘하는 다향이가 좋아하는 중문해수욕장입니다. 파도가 센 곳으로 들어가서 파도를 탑니다. 그리고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어느 쪽 파도가 센지를 가늠한 다음에 재빨리 그쪽으로 헤엄쳐갑니다. 다향이가 파도타기를 즐기는 동안 나는 집에서 가져간 파라솔 아래서 구경을 합니다. 책을 읽다가 깜빡 졸기도 합니다.

“아빠, 같이 들어가.”
물에 젖은 모습으로 달려온 다향이가 손을 잡아끌면 마지못해서 따라 들어갑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내게 중문해수욕장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두어 발자국만 들어가도 꼬르륵 물에 잠기고, 파도 또한 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물에 터지지 않는 구명용 튜브를 허리에 끼고 들어갑니다. 그래도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두렵습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안가에서 점점 밀려나갈 때면 몇 가닥 남지도 않은 머리칼이 곤두섭니다. 가고 싶은 곳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아빠한테 물을 뿌리고, 깔깔대면서 달아나는 다향이랑은 정반대입니다.

바닷가에서 정말 멋진 노을과 마주칠 때면 해녀 할머니가 파는 회를 한 접시 주문합니다. 다향이가 좋아하는 소라랑 아빠가 좋아하는 멍게를 먹습니다. 부녀와 친한 할머니는 다향이한테 삶은 보말을 내주기도 하고, 겨울이면 귤을 몇 개씩 주기도  합니다.

제주의 전통가옥양식을 본뜬 씨에스호텔의 너른 잔디밭에서 캐치볼도 하고, 원반던지기도 합니다. 줄이 긴, 속칭 춘향이 그네를 타기도 하고 그곳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고 잠깐씩 낮잠도 잡니다. 천제연폭포를 트래킹하기도 하고, 때때로 다향이가 그리워하는 교래분교 친구들을 만나서 놀도록 하고, 함께 말을 타기도 했지요. 서귀포 자연휴양림이나 절물자연휴양림을 산책하며 즐기기도 하고요.

“아빠, 심심해. 학교에 가고 싶어.”
이렇듯 열심히 놀면서도 한번은 다향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지내는 게 싫어?” 하고 물었더니 “아니. 친구들이 보고 싶어”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아야 하나 보다’ 하고 말입니다. 다향이의 뜻을 존중해서 다시 학교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개학한지 40일이 지나서의 일입니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마음에 들떠서 다향이가 등교를 했습니다. 하루이틀사흘을 가고 주말을 맞았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등교를 시키려는데 다향이의 얼굴이 시무룩합니다. “왜 다향아. 무슨 일 있어?” 하니까 “학교에 가기 싫은데……” 합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친구들 보고 싶어서 다시 학교에 간다고 했잖아?”했더니 “친구들은 가끔 보고 싶은 거지. 내가 집에 있으면 아빠가 일하지 못한다면서” 합니다. 아이고, 맙소사! 그 말을 듣고, 슬픈 웃음이 나왔습니다.

제주시에서 일하던 아내가 서귀포로 옮기면서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일을 위해서 가정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무지막지한 상사들에게 엄청 시달렸지요. 피곤에 찌들고, 딱히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는 아내는 내게 짜증을 퍼부었습니다. 그래 다툼이 잦았고, ‘지금은 다향이 때문에 꼼짝도 못하니까 당신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라’고 했는데 다향이가 그 말을 들은 모양입니다.

한참동안 다향이를 안아주었습니다. “다향아, 미안해. 그 말은 네가 싫어서 한 말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다향이랑 지냈을까?” “아니. 으앙!” 품 안에 안긴 다향이 통곡을 했습니다. 싫어하는 학교지만 아빠가 일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억지로 다녀보려고 했던 다향이. 그렇듯 속이 깊고, 착한 아이를 이기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교사노릇을 합니다.

“아빠, 심심해.”
다향이가 이 말을 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늦잠을 자고 빈둥거려도 제가 무엇을 해보려고 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린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다향이가 돌을 넘겼을 무렵, 우리가족은 강원도 오대산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유명한 방아다리약수를 한 통 떠왔지요. 몸에 좋은 약수라는 생각으로, 철분약수로 분유를 타먹였다가 다향이가 일주일 동안이나 설사병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때 가슴을 치면서 반성하고,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원하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주지 말자. 이가 나야 밥을 먹을 자격이 생기듯이 아이가 스스로 원할 때까지 기다리자. 방아다리약수사건 뒤로는 다향이한테 욕심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그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한글도 가르치지 않았으며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알파벳도 알려주지 않았지요. 열다섯 살이 되면서 학교과목에도 없는 영어동아리에 가입해서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니까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커다란 백지를 한 장씩 갖고 나오는 게 아닐까? 그것을 스스로 채워가는 게 삶의 과정일 텐데 부모가 많이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아이가 역량을 발휘할 기회는 사장되는 게 아닐까? 아이가 원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자.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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