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책] 기타와의 10년 연애 일기, ‘오후의 기타’

이동구 에디터l승인2019.04.04l수정2019.04.04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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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파시토(Despacito)’. 정부(情婦)와의 밀애를 적은 그의 일기장을 넘기며 가장 먼저 떠오른 노래다. 데스파시토는 스페인어로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라는 뜻이다. 푸에르토리코 가수 루이스 폰시와 래퍼 대디 양키가 2017년 1월 발표한 곡으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6주 연속 정상을 차지했고 현재 유튜브 조회수가 61억뷰를 넘는 대기록을 세웠다. 가사 내용이 좀 외설스럽기도 하지만 뜨거운 연애의 감정을 잘 드러낸 라틴팝으로 우리나라에선 ‘제이플라’라는 유튜브 커버 가수가 불러 매력을 더한 곡이다.

“잠깐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여섯 개의 날줄이 가운데가 뻥뚫린 구멍을 지나 아래로 늘어섰고 그 옆에는 <오후의 기타>라고 쓴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잘 볼게요. 감사합니다.” 인사는 했지만 받는 순간 좀 부담이기도 했다. 사실 저자에게 책을 받는 일이 종종 있지만 실제로 그걸 다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 김종구 지음/필라북스·1만5000원

저자가 이런 나의 마음을 꿰뚫었을까. 첫 장의 제목이 내 머리를 쳤다. ‘나의 정부, 나의 기타’. 여기서 그는 이수익의 시 <그리운 악마>를 인용하며 ‘마음을 설레게 하고 심장의 피를 뛰게 하는 매혹적인 존재’인 기타를 지천명이 지나서 만났고 벌써 10년 연애했다고 먼저 털어놓았다. 2016년 말 “‘문화공간 온’에 기증하겠다”며 내게 기타를 넘겨줄 때만 해도 그가 기타에 그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기타를 기증한 이후에 그는 여러 번 그곳을 찾아 술 몇 잔 걸치면 기타를 연주하곤 했다. 한번은 무대 위에 세워둔 기타줄이 끊어진 것을 보고 무척 속상해했는데 이제야 그 마음을 헤아린다.

그의 일기장(?)은 첫 장부터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10년간의 기타 연애담은 잠자고 있던 지난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일곱 살 때쯤일까. 다락방에서 치는 아버지의 풍금소리에 이불 속에서 몰래 울곤 했던 기억부터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교습소 선생님이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하고 매번 문 앞을 서성였던 기억,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16번 K.545 1악장>,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멋지게 치는 여학생이 한없이 부러워 실력도 안 되면서 선생님 몰래 한 소절씩 따라 쳐봤던 기억. 아직도 귀에 생생히 들려오는 ‘메트로놈’의 재깍재깍 소리.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과를 대표해서 피아노 연주를 했던 기억.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충무로 대한극장 앞 레스토랑에서 즉석 피아노를 친 기억까지.

한 야외공연장에서 최고의 팬 플룻 연주자로 알려진 루마니아 출신의 게오르게 잠피르가 그의 대표 연주곡 <외로운 양치기>를 연주하자 관객들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것을 보며 ‘아마 이 음악과 얽힌 사연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글을 읽어가면서 마치 익숙한 음악을 듣는 듯 자연스레 추억의 필름이 돌아가는 게 아닌가. 그의 글은 눈으로 소리를 듣게 만드는 예술가의 경지에 닿아있었다. 하기야 그는 ‘한겨레’에서 기자로 평생을, 그것도 기자들의 꿈인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지금은 콘텐츠의 총책임자인 편집인이니 가히 글의 ‘마에스트로’라 하겠다.

10년의 수련에도 저자는 “내가 노력한다고 프로가 될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단언했다. 프로처럼 완벽을 추구하되 아마추어 본래의 여유와 즐기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한겨레 안에서도 주당으로 유명한 그가 술 한잔 걸치면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데가 두 곳이라 했다. 한 곳은 기타를 시작하게 해준 곳인 서울 광화문의 ‘풍금’이고 다른 한 곳은 그의 기타가 머문 곳인 서울 종로2가의 ‘문화공간 온’이다. 술 한잔 걸치고 기타를 연주하는 낭만이 없다면 기타를 배울 이유가 없다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공간이다.

책에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무대공포증이 큰 그가 절친의 밴드공연 찬조출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에는 ‘문화공간 온’에서 열린 몇 번의 한겨레 주주 행사에서의 깜짝 연주 경험도 한몫했으리라.

연애가 깊어지면 결혼을 꿈꾸듯 기타와의 오랜 인연에 그는 최근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아랫집 사는 바이올리니스트와 그가 평소에 합주해보고팠던 파가니니의 <소나타 6번>을 제대로 끝까지 협연하는 것, 그리고 그와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작은 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콘서트도 꿈꾼다. 그의 기타 10년을 이끌어준 정상급 기타리스트들인 오승국, 염해석, 윤병철, 이수진 선생과 아랫집 바이올리니스트까지 함께하는 ‘5+1 콘서트’다. “북한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지만 벌써 네팔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비밀인데 나도 며칠 전 애인이 생겼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가 10년을 이어간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채워질까. <오후의 기타>를 덮으며 나의 일기장을 편다.

['오후의 기타' 뮤직비디오] http://youtu.be/IgXvoUj8PPk 
[문화공간 온 즉흥 공연] http://youtu.be/QmuMeo2me_Q 
[제이플라의 '데스파시토'] http://youtu.be/4bmUFRxNEIg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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