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3.1 혁명의 길 찾아서

권용동 주주통신원l승인2019.04.09l수정2019.04.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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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10시 천안역 서문 만남의 장소, 전국에서 모인 동학실천 행동 회원들이 세성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산에 오르기 전 준비 운동을 하고 오늘 일정을 들은 후 단체 사진촬영을 했다.

곳곳에 동학농민혁명 격전지가 있다.  산에는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산새소리 들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길을 따라간다. 양승조 충청남도 도지사는 세성산을 동학농민혁명 공원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 세성산 오르기 전 단체 촬영

천안 역사 문화연구회 자료 중에서

[세성산에서 아우내까지]

천안 근대사를 보면 큰 물줄기를 이루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 혁명, 그 25년간의 이어짐을 가까이 느껴볼 수 있는 역사 현장이 바로 세성산 전적지와 아우내혁명 유적이다. 천안시민들은 매달 한번씩 정기적으로 10km 구간의 '동학3.1혁명'의 길을 걷고 있다. 세상을 다시 열고 세상의 참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리던 그날의 뜨거운 가슴을 다시금 생생하게 체험해 보면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 장군바위에서 단체사진 촬영

(천안 동학농민혁명 유적)  * 세성산 전적지: 여우고개-장군바위 -위령비, 1894년9월18일 총기 포령이 내려진 후 목천, 천안, 전의 등지에서 모여든 1,500여명의 동학농민군은 여우고개 아래 주둔하며 한양진군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10월 21일 친일진압군 이두황 부대의 공격에 맞서 김복용 장군, 이희인 대접주가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세성산을 방어하며 처절하게 싸움을 전개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때 목숨을 잃은 수많은 동학농민군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가 조성되었다.

* (동경대전 간행소 터) - 동면 죽계리 구계마을은 1833년 동경대전 (목천판) 간행소 터가 있는 곳이다. 이 동경대전은 현재 남아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 (동학농민군 학살지)  - 도원리 면실. 광텃골- 세성산 전투에서 흩어져 피신한 동학농민군들은 진압병력에 의해 샅샅히 수색당하고 피체되어 수도 없이 학살피해를 입었다. 면실과 광텃골이 대표적인 학살지이다.

▲ 세성산을 동학농민혁명공원으로

* (작성산- 총기포령 후 최초 집결지) 총기포령 직후 천안지역 동학온민군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퇴시켰던 작성산으로 집결하여 한양진군을 준비했다. 하지만 작전상황이 바뀌어 세성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 (복구정- 천안 동학도인들의 주요 회합장소)  천안지역 동학 포덕은 이른바 '동학 3로' 라 일컬어지던 김성지, 김용희, 김화성 접주들의 지도력으로 이루어졌다. 복구정은 동학도인들의 구심점을 이룬 곳이다.

▲ 동학 3.1혁명 유적 답사

* (대접주 이희인집터)  총기포령 이후 세성산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의 지휘는 감복용 장군과 이희인 대접주를 중심으로이뤄졌다. 목천관아를 바로 앞에 둔 위치에 이희인 대접주의 집터가 있다.

* (아우내 3.1 혁명 유적) 김구응,최정철 열사 묘역  아우내혁명의 실제 주모자는 김구응 열사와 최정철 열사 이다. 이분들의 준비로 아우내장터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찼다.

▲ 세성산을 오르고 있다.

만세의 함성은 4월 1일 오후 1시를 기해 일제히 터져 나왔다. 헌병의 총탄에 시위대 맨앞에 있던 감구응 열사가 쓰러졌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 최정철 열사 역시 항의하다 총칼에 목숨을 잃었다. 두 분의 묘소가 아우내 천변길 가까이에 있다.

*(아우내혁명 순국자추모각) 아우내 만세시위 중에 헌병의 무력진압으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이 무려 19분들이 된다. 매봉산 아래 유관순 사당과 나란히 그분들을 위한 사당이 건립되었다. 옥고를 치른 분들과 무명의 희생자들까지 모두 합해 4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세성산 정상에서

* (매봉산 유관순 열사 사적)  순국자추모각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면 유관순 열사 사당이 있다. 이곳 매봉산 일대는 유관순 열사 사적으로 지정돼 기념관과 생가지가 조성돼 있다.

* (구미산 아우내 혁명 기념비)  병천읍내 구미산에 해방 직후 아우내만세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민족사학자 정인보 선생의 글이 새겨져 있다.

▲ 세성산(동학농민혁명 격전지)에서 아우내(3.1혁명 발상지)까지 걷고 있다.

* (성공회지명학교 터)  김구응 열사가 교편을 잡고 있던 성공회 진명학교는 당시 아우내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운영되던 학교였다. 만세집회 조직과  연락본부의 역활을 했으며 천장이 넘는 태극기를 그려냈던 아우내혁명의 성지였다.

* (아우내혁명 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  아우내장터 입구에는 만세발상지를 기념하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아우내혁명 당시 시장길에 이어져 헌병주재소가 있었다는 곳이다. 수많은 인명이 학살피해를 입은 곳이기도 하다. 그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조형물들이 마련되어 있다.

▲ 위령비 앞에서 동학농민군들의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동녕 선생 생가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초대 의장을 역임하고 이후 중요 요직을 담당했으며 수차례 주석의 책무를 맡아 임시정부를 이끈 이동녕 선생의 생가지가 독립기념관이 건너다보이는 목천읍동리 마을에 있다. 최근에 기념관이 조성돼 상설개방 운영되고 있다. 한편. 이동녕 생가지 우측으로는 민족사관 국학연구의 대가 정인보 선생이 3년 정도 기거했던 집터가 있다.

▲ 위령비 앞에서 단체 촬영

* 대한민국 임시헌장 (시행 1919. 4.11.) ( 임시정부 법령 제1호 1919. 4. 11..제정)

신인일치로 중오협응하야 한성에 기의 한지 삼십유일에 평화적 독립을 삼백여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다시 조직한 임시정부는 항구완전한 자주독립의 복리로 아자손려민에 세전키 위하여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

* 선서문

존경하고 경애하는 아이천만 동포 국민이여. 민국 원년 삼월일일 아 대한민족 이 독립선언함으로 부터 남과 여와 노와 소와 모든 계급과 모든 종파를 물론하고 일치코 단결하야 동양의 독일인 일본의 비인도적 폭행하에 극히 공명하게 극히 인욕하게 아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와 정의와 인도를 애호하는 국민성을 표현 한지라 금에 세계의 동정이 흡연히 아 집중하였도다. 차시를 당하야 본정부일전국민의 위임을 수하야 조직되었나니 본정부일전국민으로 더불어 전심코 육력하야 임시헌법과 국제도덕의 명하는바를 준수하야 국토 광복과 방기확고의 대사명을 과하기를 자에 선언하노라. 국민 동포이여 분기할지어다. 우리의 유하는 일적의 혈이 자손만대의 자유와 복락의 가이요. 신의 국의건설의 귀한 기초이니라. 우리의 인도일침내 일본의 야만을 교할지요. 우리의 정의일마침내 일본의 폭력을 승할지니 동포여 기하야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지어다.

* 정 강

1) 민족평등 국가평등 급 인류평등의 대의를 선전함. 2) 외국인의 생며재산을 보호함. 3) 일체 정치범이늘 특사함. 4) 외국에 대한 권리의무는 민국정부와 체결하는 조약에 일의함. 5) 절대독립을 서도함. 6.임시정부의 법령을 위월하는 자는 적으로 인함.

  대한민국 원년 사월  일 대한미국 임시정부

 

 

 

 

* 동학농민혁명의 격전지를 걸어보니 새로운 기분이 든다.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총탄에 맞아 피흘리며 죽어간 동학농민혁명군이 자랑스럽다. 우리의 영웅이였다. 오늘 그 길를 따라 걸어본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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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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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도성 2019-04-14 15:57:35

    초등학교 다닐대 동학에 대한 많은이야기 참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세성산이란 산명도 시성산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싸움으로 죽으 시체가 성처럼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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