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빛 니트에 자주색 코드로이 재킷을 걸치고 청바지에 단화를 신은 저 사람은 청년(?)인가 했더니 모자에 살짝 가린 은빛 머리카락이 보인다. 혹시나 '시루뫼작은갤러리'를 못 찾을까 주민센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최호진 한겨레주주통신원회 위원장이다.

▲ 최호진 위원장

그는 한 중견회사의 경영총괄전무이사를 지낸 후에 은퇴하고 종로구 인사동에 <산타페> 카페를 열었다. 카페는 영화촬영장소가 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힘에 부쳤다. 카페 정리 후에는 사회활동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MBC> 시민기자로 활동했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는 은평구 활동사항을 기록하는 마을기록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은평구청 방송단에서 지역방송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최근 현장에서 취재한 인터뷰가 두번씩이나 방송에 나기기도 했다. 2015년부터는 ‘한겨레주주통신원’으로 은평구 소식을 전하는 지역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지난해 11월부터는 한겨레주주통신원회 전국운영위원장도 맡아 <한겨레 : 온>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는 2015년 문화센터에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나이에 무슨 예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동생이 미대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예술 DNA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스케치부터 시작한 그림그리기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는 이어 수채화 그리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북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마음,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 인상적이었던 여행의 회상, 그리고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뭔지 모를 감성을 그림 속에 담아냈다.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전시회를 권유했고 그 또한 용기를 냈다. 그는 팔순잔치를 ‘네 번째 스무 살을 위하여’ 라는 제목의 수채화 전시회로 대신했다. 제1회 전시회는 지난 2월부터 3월 말까지 두 달동안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열렸는데, 총 27 작품이 전시되었다. 지난 4월 1일부터 4월말까지는 증산동주민센터(동장 한규동) '시루뫼작은갤러리'에서 제 2회 전시회를 열고 있다. 작품은 26점이다.

▲ 주민센터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최호진 수채화 개인전 알림막
▲ 증산동 주민센터 입구에 있는 안내판

 

▲ 1층 시루뫼 책방과 전시실

 

▲ 1층 전시실
▲ 2층으로 이어집니다.

 

▲ 2충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

 

▲ 2층 주민센터 직원이 일하는 바로 옆에 작품이 걸려있다. 주민센터 직원들도 행복할 듯~
▲ 2층 시루뫼작은갤러리

 

▲ 갤러리 공간에 주민이 앉아 담소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곱다. 색이 곱고 선이 곱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곱다. 팔십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텐데... 그는 부리부리한 눈매, 우렁우렁한 목소리, 답답함을 싫어하는 화통한 성정의 상남자형인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여리고 고운 감성이 나오는 걸까?

▲ 귀여운 전시공간과 어울리는 소품

그와 차를 나누던 중 전화가 왔다. “응.. 손녀”하면서 응대를 한다. 친손녀가 아니다. 은평구에서 봉사하면서 알게 된 아이들을 그는 손녀, 손자라고 부른다. 손녀는 그의 전시회가 CJ은평방송에서 뉴스로 나오고 있다고 알려준다. 웃으면서 손녀와 전화대화를 주고받는 그는 행복해 보인다.

▲ 손녀가 보내준 방송뉴스
▲ 손녀가 보내준 방송뉴스

그는 요새 많이 걸어 다녔더니 살이 빠졌다며 커져버린 옷을 아내가 고쳐준 이야기를 한다. 살이 빠지면서 연분홍빛 니트 소매가 길어지자 그의 아내는 소매 끝 코를 풀어 줄인 후 다시 코를 감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재주와 정성이다. 그의 아내는 그를 위해 늘 10가지 반찬을 준비해놓는다. 그가 늦게 일할 때면 야식을 마련해 준다. 그를 위해 맛있는 식사를 해주고 집을 정갈하게 지켜준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했다. 53년 간 변함없이 아내 사랑을 받는 그가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20년 전에 그는 시신기증을 했다. 죽으면 한낱 허물인 육신을 모교인 한양대학교에 기증하여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시신은 의학도들이 실습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장남으로서 맡았던 제사도 다 없앴다. 그간 제사음식에 고생한 아내를 위해서, 그리고 제사라는 것에 얽매일 며느님을 위해서라고 했다. 오래 전부터 수집하던 그릇도 ‘문화공간 온’에 기증하고 있다. 모든 욕심과 집착을 벗어놓고 언제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그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 행복하랴.

▲ 2층 전시실에서

그가 베푸는 사랑 때문에 그는 행복하다. 그가 받는 사랑 때문에 그는 행복하다. 그가 미련 없이 벗어던진 세상 것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그는 행복하다. 그 모든 행복의 결정체가 바로 그의 그림이다. 그의 그림은 따뜻하고 정갈하고 수수하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아름답다 느껴진다. 행복은 전염되는 것이리라... 그의 그림을 보는 이들도 그를 따라 행복하다. 

▲ 정갈한 그의 그림.

[주]~ 2017년 개관한 시루뫼작은갤러리는 증산동 주민센터 1층과 2층에 있다. 주민센터 작은 공간을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유 전시공간과 휴식공간으로 꾸며 개관했다. 2017년 개관 시에는 초대작가로 마을 화가인 정민자 화백이 ‘따뜻한 동행’ 전시회를 열었다. 2018년에는 8.15를 기념하여 광복 73주년 기념 재불화가 ‘박효식 프랑스 풍경화’전도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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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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