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똬리를 틀다

짝사랑의 열병이 찾아들면 나는 그리도 감격하여 목이 잠기고 콧물을 흘리나보다. 아마 누가 보면 나를 짝사랑하던 상대가 나에게 다가온 것에 감동한 나머지 눈물에 콧물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겉보기와는 다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안일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루에 30분 이상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충고를 귓등으로 듣고, 미세먼지를 핑계 삼아 거실이나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는 여유를 즐기며 인생을 달관하기라도 한 냥 자족해하는 모습을 보며 녀석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며,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며 일상의 감사함을 만끽하고 있을 때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곧 다가올 비운의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나를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 실상과 허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해질녘에 개웅산 산자락에 자리 잡은 천왕동 언덕길을 내려올 때였다. 산자락을 내려오다 보면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친다. 며칠을 그렇게 찬바람을 맞았나보다. 그때다. 바로 그 때가 나에게 침투하는 절호의 찬스였을 것이다. 녀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찬 공기를 타고 잠입을 시도했다.

나는 '앗 뜨거워라' 하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상대가 나보다 한 호흡만큼 더 빨랐다. 세찬 바람은 공기의 유속이 평상시보다 두 배 이상 빠르다. 날숨과 들숨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거침없이 폐부 깊숙이 침입했다. 그렇다해도 한번으로는 어림없다. 몇 번에 걸친 시도로 허파의 방어망이 뚫린 것이다.

상대는 나의 폐를 삽시간에 장악했다. 감기 바이러스가 나의 면역체계를 뚫고 들어온 이상 최소 열흘 이상 몸은 무겁고 마음도 시달리는 상태를 감수해야 한다. 폐가 장악되었으니 목과 코는 당연한 수순이다. 보통은 코를 거쳐 목으로 가는 수순인데 나의 경우는 목에서 자리 잡은 다음에 코로 간다. 상대는 특히 나의 목을 탐닉했다. 그리 매력적이지 않고 매끄럽지도 않은 나의 목이 자신의 안식처라도 되는 냥 나의 편도와 인두에 기어이 똬리를 틀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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