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육정의를 바로 세워야

- 모순덩어리 교단일기 하성환 주주통신원l승인2019.04.19l수정2019.04.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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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아직도 일제 식민지 잔재인 '유치원(幼稚園)'이라는 명칭이 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제 침략기 개항장 부산은 제국주의 침략의 흔적들이 가장 먼저 상륙한 도시입니다. 상업자본가 일본인 자신들의 어린 아이를 보육하기 위해 만든 것이 유치원의 시초입니다. 독일식 유치원 표기인 'kindergarten(어린이들의 정원)'을 일본학자들이 일본식으로 이름을 붙인 데서 비롯된 것이지요. 한 마디로 유치한 아이들이 다닌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아이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어른의 인격에 종속된 존재, 바로 어른의 지도를 받아야 할 객체로 대상화한 전근대적인 명칭이지요. 분명 프뢰벨의 유치원은 근대교육의 산물일진대 전근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기이한 풍경이 유치원이라는 용어 속에 녹아 있는 셈입니다. 일본제국주의 관변학자들이 ‘신교육’을 떠벌리지만 아직 그들의 의식 속엔 19c 페스탈로치나 페스탈로치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 18c 루소의 교육사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유치원도 빨리 명칭을 고쳐야 하겠지만 ‘교감(校監)'이란 제도는 일본에도 없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 놓고 간 제도를 그들은 종전 후 폐지시킨 제도인데 우리는 무슨 대단한 제도인 양 아직껏 존치시키고 있습니다. '교감(校監)'이란 명칭이 글자 그대로 학교 교사들을 감독, 감시하는 직책인데 이미 명칭에서 국가주의 교육행정이 짙게 묻어있는 표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당장 부교장으로 바꿔야겠습니다.

▲ 일제강점기 말기 궁성요배 장면.

제국주의 일본은 황국신민서사를 외우도록 강제했다. 국민학교는 본래 소학교였으나 1941년 국민학교령에 의해 천황의 충량한 신민을 양성하는 학교라는 의미를 담아 명칭이 변경되었다.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국민학교에서 일본 천황이 살고 있는 동쪽 궁성을 향해서 허리를 굽혀 절을 하는 황거요배 장면(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과거 ‘국민학교’라는 명칭도 그렇습니다.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소학교에서 '충량한 황을 양성'하는 '국민학교'로 명칭이 바뀐 것이 1941년의 일입니다. 태평양 전쟁과 함께 전시동원체제로 학교가 병영화 되는 시기였으니까요. '국민학교'라는 명칭조차 해방 후 수십 년이 지난 1996년에 가서야 '초등학교'로 변경되었으니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한국교육은 근본에서 볼 때 해방 직후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역사 청산이 부재한 국가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자행된 반교육적인 양태들이 얼마나 많았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으니까요.

친일세력이 애국자로 둔갑해 교과서에 수십 년 동안 버젓이 기술돼 시험에 나왔던 게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완용의 비서 이인직의 『혈의 루』를 근대 신소설의 효시로 열심히 외우고 했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친일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마치 조선의 봉건적 질서를 비판하고 자유결혼과 근대문명을 찬양한 소설 정도로 교육받았으니까요. 『혈의 루』는 제국주의 침략이 노골화 되던 시절!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일본을 미화하고 근대 문명국가의 모델로 제시한 악질적인 친일작품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인직 역시 평생을 친일정치인으로 살아갔던 매국노이지요. 매국노 송병준의 절친이자 이완용이 가장 신임했던 망국협상의 1등 공신이었습니다. 그런 이인직의 『혈의 루』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아니더라도 역사의식이 박제된 박목월의 일제강점기 말기 작품 『나그네』를 그렇게 애송하고 전원생활의 목가 풍, 향토성 짙은 서정성 운운하며 시험에 자주 출제되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다시 학교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북서유럽 국가들 가운데 초등학교에 교장이 없는 학교가 30%에 이릅니다. 교장이 있어도 조선일보 보도처럼 교실 한 칸을 차지하고 학교장의 위엄을 떠는 학교는 없습니다. 프랑스 초등학교 교장은 아침마다 각반을 돌면서 직접 결석생을 조사하여 시교육청에 보고하는 것으로 분주한 일상이 시작됩니다. 한국사회와는 천양지차입니다.

▲ 어린이 문학가이자 우리말 연구가인 이오덕 선생님.

<우리말 바로쓰기>등 중국식 말투, 일본어 어법 등의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여 우리말을 바르게 쓸 것을 강조한 국어운동가이다. <글쓰기교육연구회>를 조직해 <글짓기>가 아니라 <글쓰기>여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사진 출처 : 네이버 백과)

'이오덕 교장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난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한국의 교사들을 슬프게 하지요. 전교조로부터 2000년 '참교사상'을 받은 이오덕 선생님은 얼뜨기 국어학자들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한글 발전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현대 국어학사를 다시 쓰는 분이 계셔서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 연구와 <우리말 바로쓰기>를 알게 된다면 경천동지할 거라 확신합니다. 4,27 남북정상회담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얼마나 우리말을 잘못 쓰고 있는지를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으니까요.

오늘날 우리말이 천대 받고 외국어를 섞어 써야 뽀대가 나는 것처럼 인식되는 언어사대주의가 사람들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현상이 한글학회의 쇠락한 모습과 무관하진 않을 것입니다. 지난 2018년 2월과 3월은 뜻있는 분의 1인 시위 등 한글학회 개혁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 시간들이었지만 주시경-최현배-이극로-이만규의 한글학회 초기정신은 온데간데없고 껍데기들만 남은 모습에 절망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땅꺼짐이라고 쓰면 될 말을 아직도 방송국 아나운서들은 싱크홀로 표현합니다. 레시피, 세프, 디테일, 와이프, 리허설, 아이템, 컨셉, 게스트, 삼성SDS, LH공사, KB은행, NH농협 등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많습니다. 몇 년 전 영어조기교육이나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문제로 시끄러웠던 일들이 오늘날 쇠락한 한글학회의 모습과 과연 무관한 일일까요? 민족학회로서 한글학회는 부재하고 일개 국어학자, 언어학자들의 학술단체로 전락한 그들만의 학회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도 프랑스처럼 국어강제사용법을 제정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머잖아 외국어가 우리말을 잠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 한인사회당(고려공산당 상해파) 핵심 요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고루 이극로(1921년으로 추정)

이극로, 이동휘, 박진만, 김립의 얼굴이 보인다(사진 1열 왼쪽부터 순서대로)(출처 : 독립기념관)

조선어학회(1942) 사건 당시 한징, 이윤재 선생은 재판도 열리기 전에 극악한 고문 끝에 옥사합니다. 조선어학회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이극로 선생은 6년이라는 가장 센 징역형을 선고 받고 해방 이틀 후 들것에 실려 나오지요. 오늘날 남북이 같은 언어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 등 그분들의 노고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극로는 국어교사들조차 생소한 인물입니다. 마치 이만규가 이 땅의 교육자들에게 생소한 인물이듯이 말이지요. 모두 분단이 낳은 기형적인 일이요 슬픈 현실입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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