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 겨울 끝자락에 찾아든 짝사랑의 열병 3.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19.04.21l수정2019.04.2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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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야망의 똥

그날 밤 꿈자리가 사나웠다. 악령이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달콤한 키스를 하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음 순간 얼떨떨한 상태에서 발을 헛디뎌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잠이 깼다. 누군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낄낄거리며 '너는 이미 내꺼야'라고 으스대고 있었다. 패배의식에 젖어 처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침 햇살은 여전히 찬란했고,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달콤한 키스의 여운이 감질날 정도로 뇌리에 남아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키스의 여운을 즐길 여유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목감기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허파와 목에 자리를 잡더니 기하급수적으로 새끼를 치고 있나보다. 아마 10,100,1000의 숫자로 증가하면서 그 증가된 바이러스를 잡아먹기 위해 '이게 웬 떡이냐'고 세균들도 덩달아 달라붙을 것이다.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잔칫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녀석들은 나의 목을 발판삼아 다른 부위로 영역을 넓히고 몸 전체를 장악하여, 감기에서 하루빨리 회복하려는 나의 의지를 꺾고 영원한 식민지로 삼겠다는 헛된 제국주의적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수많은 떼거리로 집단을 이룬 녀석들은 예의 차릴 것도 없이 냅다 똥을 싸대는데 나는 그 똥을 치우느라 밤잠을 설치기가 일수였다. 뱉어도 뱉어도 끝없이 끓어대는 가래와 염증이 바로 바이러스가 싸대는 똥이다. 가래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자신이 신체를 지배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시키는 인장이고, 기침은 바이러스가 인간을 장악했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는 일종의 영역표시다.

 

▲ 감기 바이러스

감기 바이러스가 인간을 짝사랑한 역사는 삼국시대를 거쳐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감기 바이러스의 조상은 고구려 명재상인 을파소를 어린 시절에 괴롭히기도 했으며, 기원전 16세기에 기록된 고대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 그 증상과 치료법이 기술되어 있을 정도로 일찌감치 인간의 역사에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감기가 고뿔로 불리게 된 데는 코에서 열이 나서 코불이 고뿔로 되었다는 설이 있고 단군조선, 14세 고불단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고불단군설은 다분히 음성학적인 추론에 의한 것이지만, 고불단군이 기원전 17세기 전후의 인물이므로 묘하게도 에베르스 파피루스의 저술 시기와 일치한다. 산술과 과학적 기록에 뛰어난 고대 이집트는 의학서를 만들어 후손에게 전했지만, 한국인의 조상은 단군시대를 신화로 여길 만큼 역사에 등한시하게 될 후손들을 염려하여 고불단군을 고뿔의 기원으로 삼아 오늘날까지 민간전승으로 이어지게 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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