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강자인가 약자인가

감기는 한평생 보통 200번은 걸린다고 한다. 여태껏 몇 번이나 걸렸는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육신이 감기 바이러스에 취약해지기 시작했다. 감기는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질병으로, 키스보다 짧은 악수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감기에 얽힌 설화는 발상이 기발하고 외설스럽지만 해학적이다. 옛날에 왕자가 있었는데 성기가 두 개였다. 왕자가 장가갈 나이가 되자 왕은 신하들에게 성기가 둘인 처녀를 찾으라고 했다. 아무리 찾아도 그런 처녀는 없었고 왕자는 죽고 말았다. 죽어서 귀신이 된 왕자는 생전에 채우지 못했던 욕망을 사람의 콧구멍에 대신 풀곤 하였다. 콧물이 흐르는 것은 감기 귀신이 콧구멍에 사정을 했기 때문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목에서 싸는 똥이 가래라면, 콧물 또한 바이러스의 어떤 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콧물은 바이러스들이 증식하기 위해 집단 교미를 하다가 배설한 분비물인 셈이다. 바이러스가 코의 점막을 자극하여 콧물이 흐르는 것이니 일리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한겨울의 끝자락에 가래와 기침으로 고생한 것은 인간을 향한 바이러스의 집요한 짝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녀석들의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 때문이기도 하다.
 

▲ 코로나 바이러스

이번의 목감기는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 특히 가래로 인한 괴로움이 컸다. 바이러스의 짝사랑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걸까. 나도 모르게 나의 몸이 녀석들과 비밀리에 공생 계약을 맺기라도 한 걸까.

감기 바이러스는 반드시 생물의 세포 속에 들어가야 번식을 할 수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손인지라 다른 생물 세포 속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새끼치기를 하며 살아가는 가여운 존재인 것이다.

나는 녀석이 추위의 강자요, 겨울철의 지배자라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정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녀석은 추위의 약자요, 겨울철을 피해 목숨을 구걸해야하는 방랑자였다. 오죽하면 찬바람을 피해 인간의 허파와 목구멍에 기생하며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 나가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쓸데없는 동정심마저 일었다.

어찌 보면 한겨울에 녀석들이 쉴 곳을 사람이 제공해준 셈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그것이 녀석들에게 베푸는 자발적인 자비심은 물론 아니겠지만, 감기 덕분에 인간도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할 수 있기에 인간을 향한 감기 바이러스의 짝사랑이 수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끝>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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