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도시개발정책

[뉴욕의 도시개발 정책(7)]: 뉴욕 vs 서울, 미드타운 모더니즘vs 테헤란로                                                                                                                                             조재성

뉴욕은 방문할 때마다 항상 새롭고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왜일까? 아마도 아마존 제2본사가 뉴욕 맨해튼 인근 롱 아일랜드 시티에 입지하기로 결정한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존은 이 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각 분야에서 최첨단의 생각을 하는 다양한 인재 채용이 용이하다는 점을 꼽았다.

▲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 모더니즘 시대를 알린 레버 하우스>

미드타운(Midtown)을 답사하는 중에 미드타운 모더니즘 최초의 건물인 레버하우스(Lever House)의 건축주가 현대전원도시계획 사상가인 영국의 에버니저 하워드(Ebenezer Howard)를 후원한 ‘레버 브라더즈’(Lever Brothers) 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국 현대도시계획 태동기에 큰 기여를 한 기업이 뉴욕 미드타운 모더니즘의 문을 연 빌딩의 건축주였다는 연관성은 도시연구가인 나에게 “역사적 진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울림을 주었다.

맨해튼 초고층 건물은 20세기 초에는 월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세워졌고,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미드 타운에 집중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미드 타운에 세워진 초고층 건물들은 미드타운 모더니즘으로 불릴 만큼 20세기 모더니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들로, 맨해튼 초고층 건물 진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미드타운은 실내 채양과 환기, 구조에 획기적 혁명을 가져온 유리상자 스타일의 초고층 건물을 세우며 모더니즘 열풍을 맨해튼에 불러 일으켰다.

미드타운과 같은 도심을 서울에서 찾아본다면 번화한 강남 테헤란로일 듯 하다. 테헤란로에는 1990년대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들이 세워졌다. 그런데, 왜 뉴욕 미드타운 같은 효율적인 도시기능과 활력있는 도시 문화, 창조성의 거점, 미학적인 스카이 라인을 형성하는데 실패했을까?

▲ <서울 강남 테헤란로. 1990년대 이후부터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미드타운 모더니즘과 테헤란로

미드타운은 맨해튼의 중앙부에 있으며, 이 곳에 있는 파크 애비뉴는 미드타운의 월 스트리트라 불린다. 월 스트리트가 20세기 초 맨해튼 초고층 건물의 스카이 라인을 대표했다면, 파크 애비뉴는 20세기 중반 맨해튼 초고층 시장을 대표한다. 금융가인 파크 애비뉴에는 모더니즘 스타일을 대표하는 제이피 모건 본사 빌딩과 시그램 빌딩, 레버하우스가 있다. 특히, 레버하우스와 시그램 빌딩은 맨해튼 모더니즘의 초고층 건물을 대표한다.

▲ <미드타운에 있는 제이피모건 체이스 타워. 대표적인 모더니즘 빌딩이다.

파크 애비뉴에 가면 현대 도시계획의 전환점을 이루는 건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시그램 빌딩이다. 시그램 빌딩은 미국 도시계획사에서 기념비적인 1916조닝 법을 바꾸는 계기가 된 건축물이다. 시그램 빌딩이 공공을 위해 많은 공개공지를 내놓자, 뉴욕시도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며 건물에 인센티브를 주었다. 이를 계기로 뉴욕의 특징이었던 웨딩 케이크 모양의 맨해튼 초고층 건물 모양이 꺾이지 않고 똑바로 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16조닝이 에퀴터블 빌딩을 규제한 역사성이 있다면, 시그램 빌딩은 1961 인센티브 조닝으로 진화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 이후 파크 애비뉴는 초고층 빌딩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인터내셔널 스타일이라 불리는 초고층 높이에 유리를 재료로한 건물을 건설하는 붐을 일으켰다.

▲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시그램 빌딩. 1916 조닝이 1961 인센티브 조닝으로 진화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된 빌딩이다.>

미드타운의 스카이라인은 오늘도 변하고 있다. 내가 뉴욕을 찾았던 2018년 8월, 맨해튼을 상징하던 엠 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성기가 한 세기 만에 저물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21세기 스카이 라인을 상징하게 될 1,401피트의 ‘원 반더빌트’(One Vanderbilt) 빌딩이 세워지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서울 강남 테헤란로. 뉴욕 못지 않는 마천루가 즐비한 스카이 라인이다>

맨해튼의 미드타운과 비교할 수 있는 강남 테헤란로는 1990년대 이후 수많은 벤처기업을 배출한 IT산업의 요람이며, 서울을 대표하는 상업지구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 들어 테헤란로는 뉴욕 못지 않은 마천루가 즐비한 지금의 스카이 라인으로 완성됐다. 2001년 완공된 45층 높이의 스타 타워를 필두로 세련되고 현대적인 초고층 빌딩이 테헤란로 양 옆으로 들어서면서 맨해튼 같은 협곡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맨해튼에서 볼 수 있는 촘촘한 지하철역, 차량보다는 보행인 우선 배려하는 건물의 공공성, 거리와 건물 사이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보행인의 활력, 초고층 건물 뒤, 이면 블록에 조성되는 쾌적한 도심 플라자 등을 테헤란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포스트 모던 도시와 허드슨 야드

미국 역사에서 최대의 도시 개발이 맨해튼 허드슨 야드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 서울역 앞 고가도로 보행화 사업에 벤치마킹한 ‘하이라인’(High Line)에 오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펜 스테이션을 향해 서쪽으로 나갔다. 허드슨 야드의 웅장한 건설공사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곳은 1930년대 미드 맨해튼에서 있었던 록펠러 센터 개발 이후 최대의 도시개발로 세계 최초의 ‘스마트시티 어바니즘’(Smart City Urbanism)을 시험하는 현장이다.

다시 7번 애비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니 첼시 지구의 아침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첼시 지구에는 공공 아파트 등 서민을 위한 고층 아파트가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상가 아케이드에도 제과점, 커피숍, 부동산, 꽃집 등 소매점포가 즐비한 것이 전형적인 도심 주거지 분위기를 풍겼다. 가로에는 보행인도 많아 ‘거리의 감시자를 통해 모두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던 제인 제이콥스의 관찰을 새삼 실감케 한다.

육중한 초고층의 콘크리트 빌딩으로 둘러싸인 맨해튼 가운데에서도 첼시 지구 공공 아파트 지역은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지고, 아파트 앞 자그마한 공원의 야채 트럭에서는 신선한 채소를 팔고 있었다. 엄격한 용도 분리의 모더니즘 도시와는 달리 일과 생활, 여가, 쇼핑이 한데 뒤섞여 도심 속의 유기적인 주거지역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맨해튼에서도 업 타운에 있는 할렘과 대조되는 가장 건강한 근린 주거지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하이 라인에서 바라본 허드슨 야드에 세워지는 초고층 건물들>

15번 가에서 다시 서쪽으로 걷다가 창고를 개조한 인터내셔널 음식 마켓인 첼시 마켓에 들러 커피 한잔을 마시고 하이라인에 올랐다. 하이라인은 폐고가 철도 부지를 남북으로 길게 뻗은 보행도로로 만든 도심 내 산책로이다. 하이라인 옆 폐기된 창고 건물은 유명 디자이너가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첼시 지구의 방치되고, 버려진 땅이었던 지구에 유명 갤러리가 들어서자 고급 레스토랑, 와인 바 등이 입점하면서 지역 분위기가 세련되게 바뀌고 있었다.

▲ <허드슨 야드 개발 현장>

하이 라인에 올라서서 북쪽 방향 허드슨 지구를 바라보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새로 세워지는 초고층 건물은 모두 비스듬하거나 비뚤어지거나 서로 기댄채 치솟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사각형이나 직선 모양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기존 건물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이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깨지는 충격을 받았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스카이 라인이 미드타운 웨스트 사이드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세계의 수도 뉴욕은 대도시가 갖고 있는 많은 도시 문제의 난관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풀어가며 21세기형 도시로 진화하고 있었다. 미개발된 허드슨 지구에서 새로운 성장을 일으켜 21세기 포스트 모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뉴욕시의 계획은 매일 매일 새로운 감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 <미드타운에 있는 제이피모건 체이스 타워. 대표적인 모더니즘 빌딩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초고층 빌딩이 모더니즘 도시 뉴욕의 지평을 뚫고 위로 솟구친 역동적인 광경을 강남 테헤란로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21세기 글로벌 도시연구센타 대표/ 원광대 명예교수-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조재성 주주통신원  globalcityrnd@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