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하면 생각나는 것은 천제단, 설경, 주목이다. 요새는 야생화도 생각난다. 국내 최대 야생화 군락지가 태백산에 있기 때문이다. 태백산 야생화 군락지로 이름난 곳은 함백산 만항재 인근과 금대봉~대덕산 일대다. 이곳에 야생화가 많은 이유는 기류 때문이다. 늦가을 발달한 북녘 고기압 기류가 씨앗을 품고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다. 태백산에 이르러 따뜻한 남쪽 공기와 만나 충돌이 일어나면 양방향에서 실려 온 씨앗이 땅에 떨어져 야생화 정원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특히 4월말과 5월 초순의 금대봉~대덕산 구간은 야생화 천국이라 한다. 금대봉 일대는 금대화해(金臺花海)라 불릴 정도로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야생화들이 ‘꽃바다’를 펼친다. 만항재에서는 야생화 축제도 열린다. 함백산 아래 해발 1,330m 만항재에서 열리는 축제는 매년 7월 말~ 8월 초순에 연다. 노루오줌, 모시대, 진범, 원추리 등 여름꽃 100여종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작년 4월 이호균 통신원이 쓴 <숲속의 요조숙녀 얼레지>를 보았다. 그 기사를 보고 얼레지가 무척 보고 싶었다. 금대봉에 가면 얼레지 군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금대봉으로 발길을 향했다. 참고로 금대봉과 대덕산 구간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탐방예약을 해야 갈 수 있다.

▲ 왼쪽:만항재에서 함백산 지나 두문동재 거처 금대봉과 대덕산까지, 오른쪽:두문동재에서 대덕산까지 탐방예약구간  

위에 지도처럼 두문동재(싸리재)에서 시작해서 금대봉에 가려했는데 금대봉 일대는 산불예방기간으로 5월 15일 지나야 열린다. 금대봉 꽃바다는 다음으로 기약하고 분주령으로 향했다. 분주령 지나 대덕산까지 갔다 같은 길로 돌아왔다. 5시간 코스라 하는데 우리는 7시간 걸렸다. 길이 험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아서도 아니다. 두문동재 초입부터 시작된 야생화들이 우리 정신을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얼레지, 꿩의바람꽃, 홀아비바람꽃, 선괭이눈, 현호색, 산괴불주머니, 왜미나리아재비, 노랑제비꽃은 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외에 중의무릇. 큰괭이밥, 피나물, 한계령풀, 개별꽃도 만났고, 다음을 기약하는 노루귀, 박새, 노루오줌, 큰까치수염도 만났다 

▲ 얼레지 군락

그 중에서 가장 큰 탄성을 자아낸 야생화는 얼레지다. 입구에서부터 분주령까지 얼레지는 군데군데 군락을 형성하며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얼레지

귀해서 사람들 손에 남아나지 않는다는 흰얼레지도 보았다. 그래 그런가~ 단 한 송이만이 외롭게 피어 있었다. 부디 너만은 사람 손에 뜯겨나가지 않기를...    

▲ 흰얼레지

바람꽃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긴 속눈썹흰술을 가진 꿩의바람꽃도 만났다. 금방이라도 속눈썹을 깜박거릴 것만 같다. 얼레지와 함께 있으니 새색시와 새신랑 같다.

▲ 꿩의바람꽃
▲ 꿩의바람꽃

외롭게 홀로 핀다는 홀아비바람꽃도 많이 피어 있다. 사진 상태가 좋지 않지만 실제 보면 꿩의바람꽃만큼 예쁘다.

▲ 홀아비바람꽃

'일편단심'이란 꽃말처럼 중의무릇은 차가움이 들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별같이 예쁘다. 영어로는 ‘베들레헴의 노란 별(yellow star of Bethlehem)’이라고 한다니... 보는 사람들 마음은 다 비슷한가 보다.  

▲ 중의무릇

선괭이눈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고양이 눈을 닮지 않았다. 나중에 열매가 익을 때면 고양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모습과 비슷해서 선괭이눈이라 이름 붙었다 한다. 선괭이눈은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꽃 주변 잎까지 꽃처럼 노랗게 물들인다. 수정이 끝나면 잎은 다시 녹색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자연의 영리한 생존본능이 놀라울 뿐이다.

▲ 선괭이눈

이 꽃 이름을 알지 못해 한참 헤맸다. 어떤 이는 금계화라고 하고, 어떤 이는 물양지꽃이라 하고, 어떤 이는 매미꽃, 개구리자리라고도 하는데 이호균 통신원이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었다. 왜미나리아재비다. 미나리 아저씨란 뜻인데 '왜'자는 작은 꽃에 붙는 이름이라고 한다. 노란 꽃잎이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하게 빛나 손으로 꽃잎을 한 번 톡 치면 물방울이 또르르르 떨어질 것만 같다.

▲ 왜미나리아재비(참고 자료 : http://blog.daum.net/ihogyun/2767739)

현호색은 북한산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깊은 산 속이라 건강하게 자라는 것 같다. 아래 파란 현호색은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펼친 것만 같다. 꼬리에 파란 줄을 가진 흰 현호색은 백조보다 더 우아하다.

▲ 현호색

오밀조밀 모여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 산괴불주머니도 색이 너무 고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 산괴불주머니

노랑제비꽃과 태백제비꽃도 선명한 원색으로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꽃잎과 잎도 생생하고 도톰해서 건강해 보인다. 북한산 꽃이 예쁘다고 감탄 했는데 태백산 꽃과는 색감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다. .

▲ 노랑제비꽃, 태백제비꽃

줄기를 자르면 붉은 액체가 나온다 하는 피나물(매미꽃)은 산속 작은 작약 같다. 한계령풀도 노란 꽃을 방울방울 달았다.

▲ 피나물, 한계령풀

괭이밥과에 속하는 큰괭이밥도 꽃 속에 별을 갖고 있다. 동네 아무 곳에나 끈질기게 피는 괭이밥과 꽃 모양이나 잎 모양이 많이 다르다. 꽃도 더 예쁜데 다른 이름을 붙여주었으면... 별괭이밥이라고 하면 어떨까?

▲ 큰괭이밥

이미 꽃을 피운 노루귀, 꽃을 피우려 기다리는 노루오줌, 박새, 큰까치수염도 만났다. 

▲ 위에서 부터 노루귀, 노루오줌, 박새 오른쪽 큰까치수염

아무리 꽃이 좋아도 더 이상은 산에 있을 수 없었다. 오전부터 3시까지는 햇빛이 짱짱했지만 이후 구름이 끼면서 4시 30분경부터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만 온 것이 아니라 우박도 쏟아졌다. 순식간에 젖은 바지가 어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굉장히 쌀쌀해져서 꽃이 얼어버리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얼레지와 꿩의바람꽃은 꽃잎을 닫았고 작은 꽃들은 모습을 싹 감췄다.

▲ 비 온 후 얼레지
▲ 비온 후 꿩의바람꽃, 노랑제비꽃, 개별꽃

비에 젖어 추위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고 있는 꽃 이름을 하나 하나씩 불렀다.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해준 꽃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야생화를 만난 날은 처음이다. 6월에도 꽃들을 만나러 금대봉에 다시 가볼 참이다.    

참고 : 5월 18일 (사)숲과문화연구회에서는 만항재를 거처 함백산에서 두문동재(싸리재)로 내려오는 숲 탐방(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18)을 한다. 봄 야생화의 향기를 듬뿍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함께 해도 좋을 듯...

참고기사 1 : 숲속의 요조숙녀 얼레지 붉은 꽃(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57)
참고기사 2 : 나의 식물 학습장, 천마산에 가보니(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07)
참고자료 : 왜미나리아재비(http://blog.daum.net/ihogyun/2767739)
국립공원 탐방예약제 신청: https://reservation.knps.or.kr/information/trailInfo.action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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