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이후의 길

              김형효
 

어머니와 아버지가 땅에 섰다. 
그 땅을 기어다니던 나는 
어느날 두 발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섰던 땅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어느날 두 발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걷다가 
어머니, 아버지께서 김을 매듯이 논밭을 살피듯이 
이리저리 세상을 조금은 살펴볼 그때야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땅을 찾아섰네.
그때야 겨우 알았네.
김을 매며 논밭을 살피는 일이 
농작물을 살피는 일만이 아니었음을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김을 매는 일도 논밭을 살피는 일도
자식을 키우는 일이었음을
세상사 시름이 쌓여 어쩌끄나 아슴찬허다야의 탄식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겨우 알 것 같다는
길 이후의 길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또 섰네.
그 길도 땅도 내가 마주해야할 것
나는 이제 나의 어린 날처럼 내가 선 땅에서 
기력을 다한 어느날 어머니, 아버지께서 나처럼 내 어린 날처럼
온몸을 다해 움직이며 서는 그 모습을 봐야할 것을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 <사람의 사막에서>로 문단에 나왔다  <사막에서 사랑을> 외 3권의 시집을 냈다. 산문집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 한·러 번역시집<어느 겨울밤 이야기>, 2011년 네팔어, 한국어, 영어로 네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무나 마단의 하늘(네팔 옥스포드 국제출판사)>외 2권의 동화도 출간했다. 네팔어 시집 <하늘에 있는 바다의 노래(뿌디뿌란 출판사>도 출간했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 민족작가연합 회원이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형효 시민통신원  Kimhj00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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