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티나 협곡, 디오클레티아누스궁전, 트로기르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에서 다시 아드리아해안의 크로아티아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 차창 밖으로 보이는 보스니아의 아침풍경.

138Km를 가면 스플리트 달마티아주에 속하는 작은 마을 Omis에 도착합니다. 세티나 협곡에서 흐르는 옥색 강물이 아드리아해로 흘러 들어가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과거 해적들의 근거지였다고 합니다.

▲ 아드리아해의 바다와 세티나협곡의 강물이 만나는 오미스.
▲ 협곡으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타는 곳.
▲ 대만 가이드까지 29명 일행이 두 팀으로 나누어 배를 탔다. 며칠 안 되어 친해지자 손가락 하트를 가르쳐줌.
▲ 위압적이거나 천하기경은 아니어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 조용하고 평화롭다.

25Km 북쪽으로 올라가면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항구도시 SPLIT입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305년 지은 궁전이 자리하고 있는 크로아티아의 2대 도시입니다.

▲ 32년 인연의 친구부부와 남편의 초등학교 동창인 유치원 원장. 내가 안 가면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 엄청 잘해줌.
▲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원래 모습.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바다 쪽이 남문. 절반은 황제가 기거하고 뒤쪽은 군이 주둔.
▲ 가로수와 도로는 원래 바다였던 남문 쪽.

처음에 이 궁전은 바닷가에 지어진 요새로 황제의 거처와 군의 주둔지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1979년 크로아티아의 첫 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됩니다.

▲ 남문 출입구. 뒤로 보이는 계단까지 아래층은 쓰레기로 매립되어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고.
▲ 최초 건축 당시의 모자이크. 1700년 전에 이 모자이크는 권력과 부를 나타냈다고 함. 고구려 미천왕 무렵. 한사군을 몰아내고 고구려가 강국의 면모를 갖추어가던 시기.
▲ 달마티안의 전통 노래를 아카펠라로 부르고 CD를 파는데 사주는 사람을 못 봄. 로마시대의 건축물과 후대 새로 지은 건물이 공존함.
▲ 이집트의 스핑크스와는 조금 다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수께끼를 내고 맞히지 못하면 죽였다는 사자 몸에 여자얼굴의 스핑크스.

7세기에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의 무덤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박해로 순교한 성 도미니우스를 기려 성당을 만들었습니다.

▲ 성 도미니우스 성당. 황제의 무덤 자리에 세웠다. 사진을 찍는 곳은 황궁의 식당 자리였다고. 멀리 떨어져 찍어야 겨우 탑을 담을 수 있다.

궁전의 북문을 나서면 크로아티아의 종교지도자 그레고리 닌스키 주교의 거대한 4.5m 동상이 나옵니다. 로마 교황청을 설득하여 크로아티아어로 예배를 볼 수 있게 한 대주교를 흠모하는 마음으로 1929년 동상을 세웠습니다.

▲ 그레고리 닌스키 주교상. 동상의 우측 엄지발가락이 반질반질하다. 소원을 빌며 쓰다듬으면 이루어진다고.
▲ 어둠이 내리는 스플리트 항구. 먼 훗날에도 그리움으로 기억될 듯.

크로아티아는 남한의 약 절반인 국토에, 인구가 415만(2017년)으로 2011년보다 줄었네요. 크로아티아계가 90%가 넘는 관계로 가톨릭 신도가 91%가 넘습니다.

1991년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1995년까지 내전을 벌이자 세르비아계가 많이 떠났습니다. 현재는 4.5% 전후의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가 남아있습니다.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유로와 자국 화폐인 쿠나를 사용하며 일인당 국민소득은 2019년도 예상이 2만 7천 달러 정도로 우리보다 조금 낮다고 합니다.(Wikipedia 참조)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세계 1위 독일을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지만 16강에서 탈락을 했고, 인구 4백만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가 결승에 올라가 프랑스에 져서 준우승한 나라로 기억할 것입니다.

크로아티아가 발칸반도에서는 목에 힘을 주고 살지만 서유럽에는 한 수 접어줘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거주지 내지는 식민지였고, 베네치아공화국, 나폴레옹, 오스만제국 등이 차례로 거쳐 갔으며,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후 내전을 거쳐 1995년 이후에야 안정을 찾은 나라이지요.

삶이 팍팍하면 전투적으로 변합니다. 위에 열거한 전쟁사 말고도 1095년에서 1492년까지 400여 년간 지중해 지역에서 벌어진 십자군 전쟁도 막대한 인력과 전쟁 물자가 들어갔습니다. 여기에 용병으로 참여한 크로아티아인들은 언제 서로를 죽이게 될지 몰랐지요. 그래서 크로아티아인임을 서로 알아볼 수 있게 목에 타이를 맸습니다. 나폴레옹은 그게 멋있어 보였나 봅니다. 자기 군인들에게 패션으로 모두 타이를 매도록 했고, 이것이 오늘날 넥타이의 유래가 되었답니다. 크로아티아 여기저기 넥타이 선전과 발상지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30Km를 더 올라가면 기원전 유적지 Trogir가 나옵니다.

▲ 좌측은 성 로브로 성당. 중앙 시계탑은 세바스찬 교회의 종탑을 시계탑으로 개조. 전면의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건물은 법정. 우측 주변은 당시 귀족들의 주거지.

13,000명 정도가 사는 작은 섬으로 BC 3세기경 그리스인들의 식민도시로 건설되었으며 섬 전체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주로 13~15세기에 많은 성당과 궁전 요새들이 건설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아름다운 유적지입니다.

▲ 성 로브로 성당. 1194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공사를 시작하여 1500년대에 완성된다. 따라서 후에 고딕, 르네상스 양식 등 다양한 건축기법이 적용된 아름다운 성당. 정문 양쪽 사자상 위에 최초의 누드 아담과 이브의 나신상이 유명.
▲ 법정 좌측 중앙에는 칼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라기 보다 형평을 강조하는 로마시대 ‘유스티티아’로 보이는 부조가 보인다.
▲ 멀리에서도 건물 위로 로브로 성당의 탑이 보인다.
▲ 트로기르 초등학교. 현재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는 학교도 예술이다.
▲ 모두 밀어내고 새로 짓는 첨단보다 가꾸고 보존하는 유물이 더 가치 있을 수도 있겠다.

현지 가이드에게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이 있냐고 했더니 아마도 땅속에 있을지 모르지만 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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