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한 일이다. 누군가의 망령에 사로잡히는 일은 평생에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설령 망령에 사로잡힌다해도 누군가를 몹시 흠모했다든가 아니면 증오했다든가 그도 아니면 무언가에 씌워 정신을 못 차린다든가 하는 정도라면 혹시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그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짜르트가 웬 말인가? 음악에는 문외한이기도 한데다 모짜르트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2년 전 어느 날 모짜르트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어이없게도 숫자로 나에게 접근했다. 어느 책에서 모짜르트의 편지가 인용된 글을 읽을 때였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그런가보다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모짜르트가 아무 생각 없이 언급한 숫자가 마음에 걸렸다. 모짜르트가 그의 아내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12자리의 숫자가 나타난다. 그 숫자는 모짜르트가 아무 의미 없이 나열한 숫자였을 텐데 나는 그 숫자에 모짜르트 자신도 몰랐던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숫자가 언급된 편지는 다음과 같다.

"당신의 초상화와 반시간을 이야기하며 당신을 109506043082번 껴안습니다. "

어쩌면 모짜르트는  장난처럼 숫자를 나열했지만 그 속에 상대방에게 전달하려는 어떤 암호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어느 게 진실인지 모짜르트 본인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모짜르트의 숫자를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런데 TV음악채널 <Arte>에서 모짜르트의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그 숫자가 나를 괴롭혔다. 그 숫자는 의미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의미가 있다해도 내가 그 의미를 해독할 수 있을까.

나의 삶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내가 왜 신경을 써야 할까. 이런 저런 망설임으로 인해 온갖 상념에 시달리는 모습이 꼭 모짜르트의 망령이 나를 달달 볶아대고 있는 듯 한 형국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숫자에 대한 의문이 일어날 때마다 눈꺼풀에서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짜르트의 망령 때문이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모짜르트의 망령이 나에게 붙었다는 것을. 붙어도 단단히 붙었다.

이러다가는 신경쇠약증세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그 숫자의 의미를 풀어보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 숫자에 과연 의미가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 한번 들여다보기는 해보자. 하지만 암만 들여다봐도 오리무중이었다. 내가 암호해독가는 아니지 않은가?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포기할까 망설였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모짜르트의 망령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음악 채널뿐만이 아니고 기사나 인터넷 글에서 잠깐씩 모짜르트라는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그 숫자를 어떻게든 내 마음속에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운명적인 예감이 들었다.

정말 생뚱맞은 일도 있었다. 트럼프가 틸러슨 국무장관 후임으로 CIA국장이었던 폼페이오를 지명했을 때 그의 이름이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듯 묘한 느낌이 들었다. 폼페이오와 이름이 비슷한 고대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떠올랐고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에 등장하는 폼페이도 떠올랐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조회했다. 폼페이오의 혈통은 이탈리아이고, 폼페이우스의 후손이라는 구체적 언급은 없었으며, 폼페이는 고대 로마에서 폼페이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모짜르트였다.

▲ 폼페이 유적

폼페이라는 검색어에서 '폼페이의 폐허를 구경하는 소년 모짜르트와 그의 부친'에 대한 글이 등장할 때 아연실색했다. 모짜르트는 14살 되던 해에 부친 레오폴트와 나폴리, 폼페이를 구경했다. 1770년 6월 10일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원은 모차르트 부자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연주하고 선배 작곡가들을 만났으며, 폼페이의 폐허를 구경했다. 

모짜르트의 망령이 나의 생각 속에 숨어 나를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눈꺼풀에는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건 모짜르트의 망령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잠시 마음이 어지러웠다.

모짜르트의 숫자가 나의 뇌리 언저리에서 얼쩡거린 지도 어언 2년이 지났다. 이제 모짜르트의 망령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숫자의 의미를 기어이 풀지 못한다 해도 내가 왜 그 숫자의 망령에 사로잡히게 된 건지, 그 숫자가 어떤 연유로 나를 2년간 따라다닌 건지 등을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 명대로 살지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계속>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