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짜르트의 여섯 가지 부탁

모짜르트의 망령이라는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감 상으로만 본다면 모짜르트보다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가 더 그윽하고 친밀감이 든다. 모짜르트는 신동으로 천재적인 작가이며 화려하고 도발적인 느낌이 들어 멀게 느껴진다. 음악에 입문하지 못한 나는 모짜르트를 쇼팽과 같은 계열로 생각하고, 베토벤이나 슈베르트를 비슷한 계열로 생각해왔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왜 그런가 봤더니 'ㅂ'이 들어가는 이름끼리 묶고, 'ㅂ'이 안 들어간 이름끼리 묶은 것이다. 초보 중에도 상 초보요, 무식도 이만저만한 무식이 아니다. 나중에 보니 쇼팽은 모차르트를 굉장히 존경하고 추종했으며,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존경한 나머지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하기도 했고 베토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비엔나 시립중앙묘지의 베토벤 옆자리에 묘가 있다. 그러니 우연찮게도 나의 분류법이 전혀 엉터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음악가는 다른 분야의 유명한 인물이 그를 좋아할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은 모짜르트 음악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며 상대성 이론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에 가서도 바흐의 음악을 즐겨 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베토벤은 신분해방을 주창했던 프랑스혁명을 동경하다가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자 그 배신감으로 나폴레옹을 기리기 위해 작곡한 '영웅교향곡'의 표지를 찢어버린 일화로 유명하다. 제일 덕 본 사람은 모짜르트가  아닐까.

▲ 모짜르트를 찬양하는 아인슈타인

모짜르트라는 이름은 생활 곳곳에 토막소식으로 자주 등장한다. 어떤 다른 음악가보다 더 빈번하게 보인다. '모짜르트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은 아인슈타인이 모짜르트 음악을 들으며 상대성 이론의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수요일에는 모짜르트를 듣는다'는 문구도 있다. 한 주의 중간에 삶이 무료해지고 지쳐갈 즈음 모짜르트가 작곡한 천상의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으라는 말이다.

그런 훌륭한 모짜르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2년 여간 괴롭히던 건 다름 아닌 모짜르트의 망령이었고, 그 망령은 바로 모짜르트가 언급한 12자리 숫자였다. 그 숫자는 모짜르트가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언급되어 있다.

"오페라가 끝난 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토록 그리운 마음으로 기다리던 당신의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오, 내 사랑이여, 편지 봉투를 뜯기 전에 나는 당신의 편지에 셀 수 없을 만큼 키스를 퍼부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방에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내 사랑, 오 내 귀여운 아내여."

아내에 대한 진한 애정 표현에 이어 모짜르트는 아내에게 여섯 가지 부탁을 한다.

"당신에게 몇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첫째 슬퍼하지 말고, 둘째 건강 잘 챙기고, 셋째 절대 혼자 걸어서 외출하지 말고 넷째 나의 사랑을 절대로 믿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의 초상화를 앞에 두지 않고는 한 통의 편지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들의 명예를 생각하고 외관에 신경을 써주고, 끝으로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더 자세히 길게 써주길 바랍니다. 안녕 내 사랑, 당신의 초상화와 반시간을 이야기하며 당신을 109506043082번 껴안습니다. 당신의 가장 충실한 남편으로부터 "

▲ 드레스덴 모짜르트 분수

애정 표현이 과하기는 했지만 모짜르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썼다면 무시되고도 남을 평범한 편지였다. 그렇다해도 글 말미의 12개 숫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전쟁 중이었다면 간첩들끼리 주고받는 난수표라고 의심받아 긴급 체포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이 편지는 모짜르트가 1787년 첫 번째 프라하 연주 여행을 하던 중 아내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내의 초상화를 보며 109506043082번이나 초상화 속의 아내를 포옹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과장이 심하지만 모짜르트가 썼기 때문에 이 편지는 귀한 자료로 전해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편지를 대수롭지 않게 보고 지나칠 것이다. 위대한 음악가가 쓴 편지니까 음악이 중요하지 편지 속의 숫자가 무슨 그리 대수겠는가, 하고 무시할 것이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하지만 갈수록 그 숫자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마도 숫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숫자에 대한 호기심을 처음으로 심어준 사람은 피타고라스였지만 지금은 피타고라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사색

사실 그 편지에 들어있는 숫자는 황당할 정도다. 숫자 그대로 믿어준다면 아내의 초상화를 일천억 번에 걸쳐 껴안았다는 말이다. 천억은 거의 무한대를 표현하는 단위이다. 사실 모짜르트가 아내에게 쓴 편지 중에는 숫자를 과장하거나 장난으로 숫자를 사용한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잡았다! 수많은 키스가 날아다니고 있어요. 두 개 잡았다! 키스들이 거대하게 모여 있는 것이 보여요. 하하 방금 세 개를 잡았어요. 정말 맛있군요. 친애하는 가장 사랑하는 아내여, 건강을 돌보세요. 안녕, 당신에게 백만 번의 키스를 보냅니다. "

하지만 '백만 번의 키스'에서처럼 천억 번이라고 하면 될 것을 12개의 구체적인 수로 나열해가면서 쓴 것은 누가 봐도 이상야릇하다. 12개의 숫자는 암호일까? 아내에게 전하는 비밀 메시지는 아닐까? 모짜르트와 아내는 사채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공연은 성황이었으나 앞에서 남고 뒤에서 손해 보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프리메이슨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무엇보다도 첫 번째 부탁이 마음에 걸린다. '슬퍼하지 말라'는 말은 꽤나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제일 먼저 슬퍼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은 무언가 둘만이 알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진실은 무엇일까? 아내의 초상화를 천억 번이나 껴안은 12자리 숫자는 모짜르트가 장난삼아 나열한 숫자일 수도 있다. 그 장난 속에 모짜르트가 무의식중에 자신도 모르는 미래를 암시한 건 아니었을까?

<계속>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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