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독립운동 탐방여행 1

[ 한겨레의 이름으로 ]

“큰 절이나 한 번 하고 갑시다.”

이상설 유허비를 참배하여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묵념 후 단체 사진까지 찍었는데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공연히 비석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마침 옆을 지나가는 이기묘 회원의 팔을 잡았다.

“그럽시다,”

우리 둘은 나란히 큰 절을 올렸다.

“한 번 더 합시다.”

재배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이번에는 이기묘 회원이 내 팔을 잡았다. 우리는 다시 엎드렸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이마가 닿는 것을 느끼면서도, 내가 바다를 건너와 여기 이렇게 엎드려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분에게 조국은 무엇이었을까 . . . 육신마저 태워져 한 줌 재의 모습으로라도 동해로 가고 싶었다던 그가 바라던 조국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약속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둘 다 쉬이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공연한 죄스러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 이상설 선생 유허비 - 원애리 회원 제공
▲ 유허비 바로 앞에서 동해로 흘러 간다는 수이푼 강. 선생이 유허비에 등을 기대고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 강인희 회원 제공

처음 시청에서 버스에 오를 때만 해도, 처음 해보는 단체 여행에 대한 호기심과 인솔자라는 부담감 때문에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에 대한 기대는 별로 크지 않았었다. 그보다는 블라디보스톡 이라는 이름이 주는 생경함에 끌렸고 그곳에 가는 여정에서 만날 사람들이 기대되었지 탐방 자체는 그저 박물관을 구경하듯, 국립묘지를 참배하듯 그렇게, 수학여행 하듯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무지는 최재형선생 기념관에서, 최초 임시정부앞에서 한 만세삼창에서, 심지어 북조선 식당인 금강산의 여성 동무들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모두 손을 잡고 통일 노래를 부를 때 급기야 눈물을 찍어내고야 말았다. 우리가 한민족, 한겨레라는 깨우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여기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이리 오게 만든 것이었다. 가슴 속 한구석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 블라디보스톡의 북조선 식당 '금강산' 에서

앞에서 말했듯이 단체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여행길에서 나는 늘 혼자였고 그렇게 하는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한 생각은 이번 여행에서 나의 편견이자 선입견일 뿐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4박5일간의 여행에서 그렇게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지금도 놀라고 있는 중이다. 유럽 캠핑장을 한 달동안 돌아다니고 태국에서 일년을 살고 동남아를 수십번 돌아다녔어도, 이렇듯 많은 추억과 재미 그리고 맛난 음식들을 접하지 못하였다.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눈뜨는 순간부터 잠에 떨어지는 시간까지 매 순간들이 사건과 소통을 가지고 추억을 만들어 내고, 그 많은 사진들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추억들을 기록해 나가고 있었다. 한 달의 유럽 여행 동안 백 장이 채 못 되는 사진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 이상설 선생 유허비 앞에서

그것들을 나 역시 기록으로 남기려 하는 것은 나의 편견에 대한 속죄, 새로움에 대한 경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해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독립투사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며 더불어, 한 때 스탈린이 강제이주를 시키는 등의  박해를 하기는 했으나 우리 겨레를 품어주었고, 지금도 곁을 나누어 주고 있는 러시아와 힘들게 살아 온 고려인들에 대한 감사와 위로의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무겁지 않은, 지나가는  바람같은 이야기들도  쓰여졌으면 좋겠다.

▲ 블라디보스톡 중앙광장- 이요상 단장 제공

지금 이 순간 졸필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얄팍한 글솜씨보다 더 큰 무엇이 있기 때문이고, 보시는 모든 독자가 그것을 모를 리 없으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아직도 가슴은 뛰고 있으며 아리랑과 통일 노래의 여운이 귀에도 남아있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따라가면 될 뿐, 나머지는 내 몫이 아니다. 여행기를 시작하며 4박5일의 여정동안 수많은 추억과 사진을 만들어 나누어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유원진 객원편집위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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