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독립운동 탐방여행 2. : 사랑스러운 이스턴 드림호

유원진 객원편집위원l승인2019.05.30l수정2019.06.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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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은 아니지만 . . . ]

영화 타이타닉에서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은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의 목숨을 구해준 답례로 일등석에 승선한 상류층들의 만찬에 초대받는다. 정장을 얻어 입고 참석한 만찬에서 3등칸 승객 잭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다. 화려한 만찬과 클래식 음악, 그러나 상류사회의 엄숙과 위선을 경멸하는 로즈는 재미가 없다. 잭은 재미난 곳을 소개해 주겠다며 로즈를 데리고 3등칸 승객들의 가난한 파티장으로 간다. 악기라고는 바이올린 뿐인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마시고 떠들고 춤추는, 신명 나는 놀이판이었다. 그곳에서 로즈는 점차 어울려 흥겹게 술도 마시고 춤추고 논다. 음악과 춤, 그리고 땀이 범벅이 된 그곳에는 상츄층 파티의 위선과 가식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뜨거움이 있었다. 로즈는 잭과 친구들 그리고 3등칸 사람들과 한 몸이 되어 마시고 놀다가 드디어는 잭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 그리스 신화의 거인족 '타이탄'에서 따온 이름이 말해주듯, ' 그 어떤 조건에서도 침몰할 수 없다' 고 호언장담 했으나 처녀항해에서 침몰한 비운의 타이타닉호

“그러니까 크루즈를 타고 간다고? 비행기가 아니고? 그것도 왕복 2박이나?”

“그렇다니까. 편도 22시간 걸린대. 정말 지루할 거 같아.”

“좋겠다.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니까 배에 엘리베이터도 있고 끝내 주던데. . .”

▲ 거창한 이름도 없고 호화스럽지도 않았으나, 우리를 싣고 무사히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이스턴 드림호 - 원애리 회원 제공

아내는 내가 블라디보스톡에 간다는 사실보다 크루즈를 탄다는 것에 더 질투를 하고 있었다. 타이타닉같은 화려한 크루즈를 상상했을 것이다. 잭과 로즈의 격정적인 사랑에 대한 그림이 무의식적으로 겹쳐지기도 했으리라.

 

▲ 승선 직전 무사 여행을 기원하며

동해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이스턴 드림호는 타이타닉과는 한참 거리가 먼 배였다. 배 안에 엘리베이터는커녕, 갑판 밑부분은 화물용으로 쓰고 갑판 윗부분만을 관광용으로 개조한 듯한 분위기의 배였다. 흔들거리는 선교를 올라가 만난 입구의 필리핀 승무원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지만, 나비 넥타이를 매고 멋진 모자를 쓴 선장은 없었다. 그러나 그따위 사소한 것들이 배에 오르는 우리의 흥분을 누르진 못했다. 더군다나 일차 탐방 여행인 백두산을 갔다 온 회원들이 ‘이 만 하면 그 배보다 훨씬 낫다’ 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타이타닉이 멀리 사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 바다만큼 고요한 뒷모습. 멀리 한 남자도 서서 바다를 보고 있다 - 원애리 회원 제공
▲ 승선 중 - 이강윤 회원 제공

길게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배는 동해항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 중간에 내릴 수도 없는 배에 전원 무사히 탔으니 인솔자 책임에서 조금 자유스러워진 나는 가방을 이층침대에 던져 놓고 저녁을 즐길 꺼리(?)를 찾아 배 탐색에 나섰다. 없는 거 빼고 있을 건 다 있다 라는 우스개 말처럼 정말 배 안에는 하룻밤을 재미나게 보낼 수 있는 오락거리는 다 있었다. 심지어 이층 갑판 한 구석에는 꼬치구이 포장마차도 있었다. 나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갈 때 일찍부터 술자리를 시작하는 바람에 못 보았는데, 돌아올 때 발견하고 반색을 했으나 이미 영업이 끝나 포장을 걷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쉬운 대목이다. 망망대해 갑판 위 포장마차에서, 보드카와 함께 먹는 닭꼬치는 어떤 맛일까?

▲ 갑판 위에서

[놀 때는 놀아야지 ]

“8시까지 나이트 클럽으로 다 모이라고 전달하세요.”

저녁 식사 후 대장으로부터 명령(?)을 하달받고 선내를 뒤지는데 다들 어디를 갔는지, 이층 침대 사이에서 벌써 진지하게 토론에 빠진 팀들과 선실 구석구석에서 술자리를 벌인 팀들을 빼고 합류가 만만한 회원들이 보이질 않았다.

▲ 다들 어디 갔을까 . . . 허익배 회원 제공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계신 어르신 몇 분에게 말씀드리니 웃으며 고개를 저으신다. 선내를 20여분이나 뒤져서 공지를 돌리고 나이트 클럽에 가니 열 명이 채 안 되는 회원들만 음악을 들으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낮에는 승무원, 밤에는 쇼단원으로 변신하는 필리핀 친구들이 흉내만 내는 쇼나, 가끔 호흡이 틀리는 밴드는 내가 보기에도 어설펐으나 이미 그곳은 상류층들의 파티장이 아니라 타이타닉의 삼등칸 파티장이었고, 너무 일찍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충분히 흥겨웠다.

▲ 낮에 그리도 열심히 좌충우돌 하시고도 여전히 열정적인 우리 대장님.

공연에서 춤추며 노래하던, 승선할 때 보았던 필리핀 승무원이 엄지를 들어 보이며 다시 만나자는데 아마 돌아갈 때도 이 배로 가는 것 같았다. 나도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했으나 돌아가는 배에서는 시간을 놓쳐 아쉬움의 하이파이브만 하고 말았다. 현지 시간 10시반에 영업을 종료하니 나이트라는 말이 무색했다. 계단을 내려 오다가 술 한잔 하자고 잡아 끄는 대로 또 다른 술자리에 합류를 했다. 내가 술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며, 술자리는 절대로 거절 안 한다는 게 벌써 소문이 다 난 모양이다. 술이 떨어져 매점에 가니 맥주 한 병에 3천원이다. 카드도 받고 한국 돈도 받는다. 세 번째 갔을 때는 이미 맥주는 다 팔리고 냉장고가 텅 비어 있었다. 돌아서다 만난 필리핀 승무원에게 몇 병만 구해 오라니까 자기가 근무한 지 일 년인데 매점에 술이 떨어진 것은 처음 보았다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 이른 저녁을 먹고 아직 해도 안 떨어졌는데 토론에 몰입하신 회원님들. 너무 진지해서 말 걸기도 조심스러웠다.

아마 인솔자 노릇 하느라고 고생한다고 위로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 나를 보는 사람마다 자리를 내어주고 앉으라고 했는데, 갑판 구석구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우리 식구들이었던 것 같았다. 러시아 청년들을 앉혀놓고 통하지도 않는 대화를 끈질기게 시도하는 사람도 우리 식구였고,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막걸리를 긴 의자를 테이블 삼아 세 통이나 비운 것도 우리 식구와 함께였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우아한 크루즈였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해주로 가는 밤바다에 너무도 어울렸던 노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술을 좀 깨어보려고 갑판 위로 올라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휘영청 보름달이 떠 있는데 구명정이 있는 한쪽 갑판 위에서 술잔들을 앞에 놓고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역시 우리 식구들이었다. 반주도 없는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그 노래를 들으니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당사자는 그곳이 아니라 배 안에서 불렀다는데 나는 왜 보름달이 비늘같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며 들었다고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의 왜곡이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하늘의 달도 바다도, 그 위에 부표같이 떠 있는 우리도, 모두 술과 이야기와 노래에 취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 휘영청 보름달 아래서 하모니카에 맞춰 열린 작은 음악회

우리의 치욕적인 역사를 조롱하는 말 . . .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 는 말을 슬픈 가락과 자조적인 가사로 만든 노래였다. 반주도 없고 훌륭한 목소리까지도 아니었지만 그 곡조는 갑판을 넘어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 . . 그랬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다카키 마사오로 불리던 박정희 일문이 그랬고 오사카가 고향인 쥐박이가 그랬으며 지금도 토착왜구로 살면서 한사코 저항의 역사를 지우려 애쓰는, 그리하여 전 국민 앞에서 ‘반민특위가 국민들을 분열시켰다’ 고 경악할만한 말을 서슴지 않는 나경원이가 그랬다.

선조들이 친일을 한 집안만 삼대가 잘 먹고 잘 살아온 부끄러운 역사였다. 아들마저 가난하게 만든 독립군 아비가 소원하는 노래 끝부분에 가서는 여기저기서 눈가를 만지는 사람들이 보였다. 반주도 없이 나지막히 읖조리는 노래가 왜 이렇게 가슴을 저미는가를 그때는 몰랐었다. . . 연해주에 도착하여, 동해로 흘러가는 수이푼 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상설 선생 유허비 앞에 엎드려서야 왜 그렇듯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는지 알았다.

▲ 강인희 회원 (왼쪽) 과 김정훈 회원이 담소를 나누다가 크게 웃고 있다.

새벽 두 시가 넘어도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 판에서 슬며시 일어나, 술 구하러 간다고 둘러대고는 겨우 이층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인솔자라는 책임감이 뒤통수를 땡기지만 않았어도 절대로 먼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우리 크루즈, 이스턴 드림호에서의 행복한 첫날 밤이었다. (계속)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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