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산 사모바위 밑에 핀 털개회나무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북한산 털개회나무가 보고 싶어
벌써부터 한여름을 무색하게 하는 무더위가 엄습한다. 코끝을 스치던 라일락 향내도 가뭇없이 사라진 오월의 끝자락, 미스김라일락의 원조가 되었다는 북한산 털개회나무가 보고 싶다. 축령산, 명지산, 가야산, 설악산 등에서 만나 본 적이 있지만 정작 북한산 자생지에서는 지금까지 못 보았다. 하여 북한산 근처에 거주하며 자주 오르시는 한겨레주주통신원 김미경 님께 자문했다. 예상한 대로 자생지와 개화기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 주저할 것 없이 우린 동행하기로 5월 마지막 일요일 날을 잡고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약속했다.

구기동 이북오도청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여
약속 장소인 구기동 이북오도청 버스 정류장에서 김미경 님 부부를 만나 동행했다. 최근 북한산 둘레길은 몇 번 답사했지만 산행한 지는 오랜만이다. 집에서 멀기도 하려니와 산세가 험한데다가 암산이라 산행이 녹록하지 않다. 자주 오르지 않지만 털개회나무를 만나 보려고 오랜만에 오른다. 북한산을 찾는 등산객이 참 많다. 주말에 북한산국립공원이 품에 안는 등산객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수도 서울 한가운데에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풍광이 수려한 북한산을 품고 있다. 실제 서울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이 부러워할 정도라니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분자생물학 전공하는 부군은 우리 자생식물에도 관심 많아
주말이면 골프보다는 으레 부부가 함께 북한산에 오르신단다. 분자생물학을 전공하신 부군께서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에도 관심이 참 많다. 산에 오를 때마다 만난 식물들을 휴대폰에 담아 둔다고 하며 그동안 저장해 둔 식물 사진을 보여 주신다. 식물의 외부 형질을 위주로 한 기존의 분류체계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모든 생물의 유전자 분석을 통한 계통분류가 각광을 받는다. 김미경 님께서는 한겨례온 ‘자연의 향기’란에 식물탐사 관련 칼럼을 연재하신다. 여기 올린 사진들이 다 부군께서 찍어 제공해 준 것이라고 한다. 부부가 관심 대상을 함께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참 부럽다.

땅비싸리가 곱게 핀 등산로 따라 비봉까지 오르다 
국립공원 북한산은 지금까지의 기록에 의하면 대략 600여 분류군의 관속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고유종인 미선나무, 금마타리, 병꽃나무, 산개나리 등 희귀식물도 분포하지만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식물상이 다양하지 않은 편이다. 등산로 주변에는 팥배나무, 노린재나무, 병꽃나무, 아까시나무 등은 꽃이 벌써 시들고 땅비싸리와 왕머루 꽃이 막 피기 시작한다. 꽃은 없을지라도 등산로 양쪽의 식물들을 살피며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주며 오르다보니 그리 힘든 줄 모르게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진 비봉까지 올랐다. 1816년 추사 김정희에 의해 확인된 이 비석은 보존을 위해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1970년부터 현재 국보 제3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미경 님은 비석이 세워진 자리까지 가보고 싶어하는데 오르는 길이 험하고 힘들어 근처에 세워진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를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사양했다. 

▲ 비봉 아래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지, 순수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드디어 사모바위 밑에서 털개회나무를 만나다
드디어 비봉능선 전망대 헬기장을 지나 사모바위가 떡 버티고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예상한 대로 사모바위 왼쪽 바로 아랫부분에 한 무더기, 조금 더 내려간 곳에 또 다른 무더기가 자라고 있다. 아래쪽 것은 개화 상태가 아직 좀 이르고, 위의 것은 완전 개화하여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진동한다. 멀리 떨어진 앞산을 배경으로 한 원경도 찍고, 잎, 꽃, 가지 등 부분부분과 전체를 카메라에 담았다. 바람이 불어서 피사체가 흔들려 사진 찍기가 여의치 않았지만 숨죽여 여러 컷 담았다. 그런데 어딘지 잎 모양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봐 온 털개회나무와는 달라 보인다. 잎 모양이 대부분 거의 원형에 가깝고 표면의 잎맥이 뚜렷하게 들어가 보이며 잎 가장자리가 편편하지 않고 안쪽으로 오므라들어가 있다. 혹 정향나무가 아닐까?

▲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 아래쪽에서 활짝 핀 털개회나무 무더기를 드디어 만나다.

'털개회나무'라는 국명의 유래
현재의 국명 ‘털개회나무’는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의 《조선식물향명집, 1937》에 의한 것이다. 털이 있는 개회나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러나 털개회나무는 털이 있는 것만으로 개회나무와 다른 나무가 아니다. 둘 다 같은 수수꽃다리속이지만 개회나무는 꽃 색도 희고 높이 4~10m 정도로 자라는 소교목이라서 고작 2~4m로 자라는 관목 털개회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북한에서도 우리와 같이 털개회나무라고 부른다. 이 ‘털개회나무’라는 국명 외에 정향나무, 암개회나무, 섬개회나무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ウスゲハシドイ[우스게하시도이]’라 부르고, 중국명은 ‘关东巧玲花(관동교령화)[guan dong qiao ling hua]’, 영문명은 ‘Miss Kim lilac, Velvety lilac’ 등이 있다.

‘털개회나무’의 학명
털개회나무의 학명은 러시아 식물분류학자 Turczanínow(1793~1863)가 1840년 처음 발표한 “Syringa pubescens Turcz.”을 기본명으로 한다. 이후 “Syringa kamibayashii Nakai(1918)”, “Syringa patula (Palibin) Nakai(1926)”등으로 여러 차례 이명 처리되었다. 최근에는 “Syringa pubescens Turcz. subsp. patula (Palibin) M. C. Chang & X. L. Chen(1990)”이 정명으로 통용된다. 속명 ‘Syringa’는 ‘속이 빈 줄기와 관련된 갈대, 또는 관(管)’을 의미하는 희랍어 ‘syrinx’에서 유래한 것인데 처음에는 범의귀과의 고광나무속(Philadelphus) 명칭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수수꽃다리속으로 바꿔 쓰이게 되었다. 종소명 ‘pubescens’는 ‘솜털이 덮인, 짧은 털의’를 뜻한다. 아종명 ‘patula’는 ‘확장하는, 퍼지는’을 의미한다. 이 학명은 이 나무의 잎이나 어린가지에 솜털이 퍼져 덮여 있는 특징을 반영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분류, 분포 및 생육지
털개회나무는 분류학상 물푸레나무과(Oleaceae) 수수꽃다리속(Syringa)에 해당한다. 동부 유럽 원산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어 식재하는 라일락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자생종인 수수꽃다리, 개회나무, 버들개회나무, 섬개회나무, 정향나무, 꽃개회나무 등 10여 종이 같은 수수꽃다리속(Syringa)에 해당한다. 털개회나무는 세계적으로 중국의 요령성, 길림성 장백산 지역과 한국이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의 표고 300~1200m의 깊은 산 숲 가장자리 및 개활지에서 주로 자란다.

형태적 특징
털개회나무는 밑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올라와 큰 포기를 이루어 높이 1~4m가량 평원형으로 자라는 넓은잎 낙엽 관목이다. 줄기는 회색이며 겉에 둥근 껍질눈이 있다. 어린가지는 회갈색이며 가늘고, 둥글거나 약간 네모지며 털이 있다. 겨울눈은 2개씩 마주나는데 삼각상 난형 또는 난형으로 털이 없다. 잎은 마주나며 길이 3~10cm, 너비 1.5~6cm의 타원형, 난상 타원형, 도란상 원형, 아원형 등 변이가 다양하다. 잎끝은 뾰족하고 잎밑은 넓은 쐐기형~얕은 심장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 윗면에 털이 없거나 가는 털 또는 솜털이 있다. 뒷면은 융털이 촘촘하게 있거나 중앙맥 밑부분에만 털이 있다. 잎 양면의 털의 유무 및 밀도에는 변이가 심하다. 잎맥은 홈이 파인다. 잎자루는 길이 5~15mm, 털이 없거나 드물게 있다. 꽃은 5~6월에 피는데 2년지 끝에서 나온 길이 5~20cm의 원추꽃차례에 연한 자주색 또는 자줏빛 빨간색 양성화가 모여 달린다. 꽃받침은 길이 1.5~2mm, 4갈래로 갈라지며 융털이 약간 있거나 거의 없다. 화관은 거의 원통형 또는 깔때기 모양인데 끝에서 4갈래로 갈라지며, 화관통부의 길이는 6~17mm이고 가늘다. 열편은 장타원형 또는 난형이며 뒤로 젖혀진다. 씨방은 2실이며 밑씨는 2개씩 들어 있다. 수술은 2개가 화관통부 속에 위치한다. 꽃밥은 자주색 또는 자줏빛 검정색이며 드물게 노란색이다. 꽃에 향기가 있다. 열매는 삭과, 길이 1~2cm의 장타원형이며, 표면에는 사마귀 같은 작은 껍질눈이 드문드문 있다. 9~10월에 갈색으로 익는다. 성숙하면 둘로 갈라지는데 2개의 씨가 나온다. 씨는 편평하고 뒤쪽에 날개가 있다.

▲ 잎의 모양이 거의 원형에 가깝고 표면의 잎맥이 들어가 보여 털개회나무보다는 정향나무로 보인다.
▲ 털개회나무의 꽃은 5~6월에 2년지의 끝에서 나온 원추꽃차례에 연한 자줏빛 양성화가 모여 달린다.

털개회나무, 정향나무, 꽃개회나무
털개회나무와 정향나무는 어떻게 다를까? 고려대 김기중 교수는 한국식물분류학회 《The genera of vascular plants of Korea, 2007》에서 잎 모양이 장타원형~난형인 털개회나무에 비해 정향나무는 상대적으로 잎 모양이 아원형이므로 변종 “Syringa patula var. kamibayashii (Nakai) M.Y.Kim”으로 구별하였다. 이창복 《대한식물도감, 2006》, 이우철 《한국기준식물도감, 1996》 등에서도 꽃차례에 보통 털이 있고, 잎이 거의 원형이며, 잎 표면의 맥이 약간 들어가는 특징이 있어 털개회나무와 구별하여 변종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김진석, 김태영 《한국의 나무, 2013》에서는 정향나무를 변종으로 따로 분류하지 않고 털개회나무에 통합하여 분류하고 있다. 왜냐하면 털개회나무는 잎의 형태적 변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한편 같은 수수꽃다리속에 털개회나무와 꽃 색과 향이 비슷한 꽃개회나무가 있다. 털개회나무는 2년지 끝에서 나온 꽃차례에 꽃이 모여 달리고 삭과 표면에 사마귀 같은 작은 껍질눈이 많이 발달한다. 이에 비해 꽃개회나무는 그 해 생긴 새가지 끝에서 나온 꽃차례에 꽃이 모여 달리고 삭과 표면에는 껍질눈이 없이 매끈하므로 확연히 구별된다.

▲ 서로 엇비슷하여 구분이 쉽지 않은 수수꽃다리속 나무들 ; 털개회나무는 잎이 길쭉한 편인데 정향나무는 잎이 둥글고 잎맥이 들어가 보인다. 개회나무는 흰 꽃이 피고 높이 자란다. 꽃개회나무는 유사종과 달리 새가지 끝에서 나온 꽃차례에 꽃이 모여 달린다.

‘미스김라일락(Miss Kim lilac)’의 유래를 찾아서
서양의 화훼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재배종 ‘미스김라일락(Miss Kim lilac)’의 국제적으로 공인된 학명은 “Syringa pubescens subsp. patula 'Miss Kim'”이다. 이 나무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미국 뉴햄프셔 출신 원예학자이자 육종학자인 엘윈 마셜 미더(Elwyn Marshall Meader, 1910~1996)에 의해서이다. 그는 광복 후 우리나라에 들어선 미국 군정청 소속 직원으로 서울에 근무한다. 1947년 11월11일 미국 재향군인의 날인 휴일에 동료들과 해발고도 835m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오른다. 벌써 눈이 내려 5cm가량 쌓여 있는데 백운대 근처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어깨 높이의 관목을 발견한다. 식물에 안목이 있는 그는 이 나무에 달려 있는 삭과(蒴果)를 살펴보고 바로 라일락 일종임을 금세 알아본다. 거센 바람에 씨앗이 남아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몇 개의 삭과를 채집한다. 그후 1948년 고국에 돌아온 그는 뉴햄프셔대학의 식물학교수로 근무하면서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집한 수수꽃다리속 나무의 삭과에서 12개의 종자를 얻어 시험장에 파종한다. 그중 다행스럽게 7개를 발아시키는 데 성공한다. 5개체는 북한산의 모종처럼 키가 크고 튼튼하게 자랐지만, 2개체는 약간 왜성(矮性)을 띠어 키가 작게 자랐다. 중국 원산의 라일락 품종에 비해 꽃은 한 주일가량 늦게 홑꽃으로 피는데 은은한 향기가 일품이다. 꽃봉오리일 때와 개화 초기에는 자줏빛을 띠다가 꽃이 시들 무렵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얼음 빛깔로 점차 변한다. 2개의 키가 작은 개체 중 하나는 잎이 특히 진녹색을 띠는데 잎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이며, 병충해에도 강해 여름 내내 흰가루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가을에는 진홍색으로 곱게 단풍이 들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렇게 하여 육종한 이 나무를 ‘미스김라일락(Miss Kim lilac)’이라고 이름 지어 출생신고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미스김라일락’이라고 했을까? ‘김’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이고, 그래서 수많은 미스김이 있다. 만약 한국에서 미녀대회가 열린다면 미스김 중의 한 여성이 최고의 미녀로 뽑힐 것이다. 이래서 미스김라일락이라 명명하였다. 그래서일까, 유럽과 미국의 화훼시장에서 라일락 품종 중 여왕으로 인기리에 판매된다고 한다. (참고문헌, 《Lilacs: A Gardener's Encyclopedia, by John L. Fiala, Freek Vrugtman. 2008》)

▲ 원예학자이자 육종학자인 미국의 엘윈 마셜 미더. 해방 후 미군정청 근무 당시의 모습,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종한 털개회나무의 종자로 미스김라일락을 육종하는 데 성공한다.(사진은 구굴에서 가져옴)
▲ 구미에서 라일락의 여왕으로 각광을 받는 미스김라일락, 북한산 백운대 바위틈에 자생하는 털개회나무에서 채종한 씨앗으로 육종한 것이다.

북한산 백운대엔 미스김라일락의 원종이 자라고 있을까? 
북한산 백운대 근처에 자생하는 수수꽃다리속 나무가 털개회나무인지 정향나무인지 직접 확인해 보지 못해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모바위에서 백운대까지 직선거리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해발고도도 큰 차이가 없다. 자생지 주변에 바위가 있고 햇빛이 잘 드는 개활지라는 생태환경 조건도 비슷할 터이다. 미국의 Meader 교수가 백운대 근처에서 채종한 수수꽃다리속 나무가 사모바위 근처에서 내가 만난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미스김라일락의 원조가 된 수수꽃다리속 나무가 북한산 백운대 근처에 지금도 자라고 있을까?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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