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직 교사는 파리 목숨인가

오늘날 기간제 교사는 파리 목숨이다. 사립학교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공의 가치를 지향하는 공립학교에서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벌어진 사건이다. 필자가 전교조 분회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지난 5월 21일(화) 발생한 사건이다. 재계약 만료 3일 전에 재계약 거부(해고)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학교장은 교감을 통해 기간제 교사에게 재계약 거부, 즉 해고를 통보했다. 덧붙여 다른 학교를 알아보라고 했다. 공모에 응해도 학교관리자는 뽑지 않겠다고 했다. 해당 기간제 교사는 무척 당황했다. 그리고 슬픔과 모욕감을 느꼈다. 재계약 거부(해고) 사유는 ‘건강상의 사유’였다. 학교가 내건 표면상 이유는 올해 3일 병가를 낸 게 화근이었다.

학교는 5월 20일(월)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기간제 교사 공모를 이미 공지했다. 같은 교과 교사들조차 모르게 일이 진행됐다. 교과교사들은 기간제 교사 공모 마지막 날인 5월 23일(목) 오후에야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자 그 시간 수업이 비어 있는 교과교사들 여럿이 곧장 교장실로 찾아가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일부 교사는 교과협의회에 알리지도 않고 학교장 독단으로 해고를 통보한 것에 대해 사과를 요청했다. 그러나 학교장은 서울시 교육청 「계약직교사 운영관리지침」대로 따랐을 뿐이라며 사과 요구를 무시했다.

계약 기간 만료일인 5월 24일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필자는 바로 교장실로 찾아가 다음과 같이 항의했다.

“교사가 몸이 아플 수 있고 병가를 쓸 수도 있지 않는가! 3일 병가를 썼다고 어떻게 계약 만료 3일 전에 해고 통보를 할 수 있는가!”

▲ <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학교장의 독단적 운영을 견제>하는 만장(종로구 우정국로 부근).2019년 5월 25일 전국교사대회 당시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촉구하는 전교조 만장 행렬(출처 : 하성환)

그리고 학교의 일방적 통보는 ‘학교장의 권한 남용이자 갑질’이라고 항의했다. 학교장은 절차에 문제가 없기에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였다. 법대로 하라는 말투였다.

분회장인 필자는 곧바로 당일 서울시교육청 교육신문고에 민원을 냈다. ‘학교장의 갑질을 막아달라’고 긴급 구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6월 10일 교육청 답변은 매우 건조한 어투로 문제가 안 된다고 늦게 답장이 왔다. 교육청의 「계약직교사 운영관리지침」에 따른 것으로 오히려 학교장을 두둔했다.

필자는 너무 황당했다. 명색이 진보교육감이 당선돼 1기 4년을 보내고 2기 2년째인 서울시 교육청의 답변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황당한 답변을 내놓은 것에 오히려 화가 났다. 한 마디로 '영혼이 없는 답변'이었다. ‘규정대로 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판에 박힌 답변은 현장 교사로서 깊은 절망감을 갖게 했다. 교육감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교육감으로 바뀐 지 수년이 지나도 교육청 관료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힘이 없는 평교사로서 진보교육감! 조희연 교육감에게 직접 묻고 싶다. 진보의 가치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협력 그리고 연대의식은 진보의 핵심적 가치인데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선 그런 진보의 가치는 온데간데없이 실종된 상태이다.

진보의 가치 이전에 이것은 인간사회 보편 상식의 문제이다. 학생 한 명을 퇴학시키는 데에도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치는 법이다. 하물며 생계가 달린 기간제 교사에게 계약 만료 3일 전에 해고를 통보한 것은 도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반교육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현실화되지도 않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자의적으로 해고한다는 게 말이 되는지 되묻고 싶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독단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해당 기간제 교사는 학교업무와 주당 18시간 수업을 야근까지 하면서 성실하고 훌륭하게 잘 수행해 왔다. 그 점은 학교구성원 절대 다수의 교사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은 기간제 교사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무려 5년 가까이 이 학교에서 근무해 온 탓에 모멸감마저 느꼈다고 했다. 파리 목숨 대하듯 하는 학교의 처사 앞에 슬픔이 밀려왔던 것이다. 출산 휴가에 들어간 정규직 교사를 대신해 비록 3개월 임의 채용이었지만 이전부터 근무해 오던 학교였기에 당연히 계약이 연장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올해 3일 병가를 냈다는 이유로 재계약 거부(해고)를 통보받은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모범을 보여야 할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행위 앞에 동료교사이자 학교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며칠 전까지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첫 화면에 이런 영상이 크고 환하게 떠올랐다. ‘배려와 존중의 교육공동체’ 건설이라는 화면이다. 그러나 교육청 홍보 영상과 달리 학교현장의 배반된 모습 앞에 이젠 교사로서 헛웃음만 나온다. 필자는 교사로서 되묻고 싶다. 진보교육감이 추구하는 진보의 가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진보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 지난 해 인헌고등학교에서 1일 교사가 되어 <10년 후 달라진 학교 모습>에 대해 강의하는 조희연 진보교육감(출처 : 서울시 교육청 제공)

학교장의 독단적 행정행위로 학교사회 약자인 기간제 교사가 고통을 받는데 진보교육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커녕 모멸감을 갖게 하는 공립학교 현실 앞에 ‘배려와 존중의 교육공동체’ 문화 건설이라는 교육청 홍보영상물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교육청 관료들의 답변은 '영혼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현실화되지도 않은 '건강상의 사유'를 들어 해고 통보한 학교장의 독단을 바로 잡기는커녕 오히려 두둔했다. 게다가 지침을 장황하게 인용하면서 학교장의 갑질을 정당화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학교장에게 인간적으로 호소했다. 독단적 행정에 대해 교과협의회 교사들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처리한 점을 사과하고 부당 해고된 기간제 교사를 다른 학교를 통해서라도 구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차갑고 냉정했다. “교사의 판단과 교장의 판단은 다르다!”는 것이다. 현실의 높은 벽! 인간의 벽을 느꼈다.

교사와 교장 이전에 우리는 교육자이다. 교육자로서 그러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니 교육자 이전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러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교육청 운영지침에 대한 존경심보다 교육자적 양심에 대한 존경심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육은 가치를 지향하는 행위이고 교사는 그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배려와 존중, 그리고 협력과 보살핌의 가치공동체이다. 그래서 필자는 되묻고 싶다. 지금이 과연 진보교육감 시대가 맞는지 되묻고 싶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주주통신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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