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 중봉 가는 도로가에서 담은 고광나무 아래로 푸른 산이 아득하다. 

화악산, 해발 1,468m의 높은 산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가장 높은 산입니다.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꽃쟁이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산입니다. 금강초롱꽃, 닻꽃과 같은 높은 산에서나 만나 볼 수 있는 멸종위기 희귀식물이 자생하는 산입니다.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기상 예보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조화이지만 꽃쟁이들에게는 그리 달갑잖은 소식입니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장마 오기 전에 서둘러 꽃동무들과 함께 화악산을 찾았습니다. 아직 한여름이 아니라 진정 여름꽃을 만나 볼 수 없지만 작년에 본 인가목, 꽃개회나무, 세잎종덩굴도 만나 보고 싶습니다.

 해발 약 870m의 산 중턱에 화악터널이 있습니다.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훨씬 아래쪽에서부터 올라가야 했기에 힘이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아주 수월합니다. 터널 입구는 경기도 가평, 지나면 강원도 화천 땅입니다. 예전엔 터널 끝 지점에 쉼터 공간이 있어서 주차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됐습니다. 꽃쟁이들이 하도 많이 와서 교통에 지장을 초래한 때문일까요. 쉼터 주변에는 갓길에 차를 세워 놓고 도로가 벌초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입니다. 우리도 할 수 없이 갓길에 주차를 하였습니다. 한가롭게 카메라 메고 꽃구경 가는 게 좀 미안한 감이 듭니다. 한편 구슬땀 흘리는 고마운 저분들 덕분에 우린 꽃산행을 즐길 수 있지 싶기도 합니다.

 터널 북단에서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오르면 고갯마루 실운현이 나옵니다. 네 갈래 길인데요, 남쪽으로 직진하면 화악리로 내려가는 도로입니다. 동쪽으로는 응봉 쪽 군부대로 올라가는 도로입니다. 서쪽으로는 화악산 중봉과 군부대가 있는 화악산 최고봉 신선봉 쪽으로 가는 포장도로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숲 속으로 난 능선길을 따라 화악산 정상 군부대 지역까지 갈 수도 있지만 지금은 숲 속 능선길에 별다른 꽃을 볼 수 없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중봉 쪽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면서 도로가 사면에 핀 꽃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럼 저와 함께 화악산 꽃산행을 시작해 볼까요?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길 양쪽에 보이는 대로 하나하나 눈맞춤을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주며 올라갑니다. 그냥 목적지까지 시간 내에 주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등산보다 훨씬 힘도 덜 들지요. 철철이 여러 번 답사하여 어디쯤 가면 어떤 꽃이 피었을지 훤히 그려집니다. 예전에 봤던 것이 안 보이기도 하지만 새롭게 만나는 것도 있습니다. 만나는 식물마다 눈길을 주고 이름을 불러 주면 저만의 빛깔과 향기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던 것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됩니다. 이렇게 느릿느릿 꽃구경하며 올라가는 산행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거북꼬리, 풀거북꼬리, 오리방풀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잎이 비슷한 세 종류가 같은 장소에 함께 모여 살고 있네요. 거북꼬리, 풀거북꼬리, 오리방풀입니다.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족보가 전혀 다릅니다. 거북꼬리와 풀거북꼬리는 쐐기풀과이지만 오리방풀은 꿀풀과입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잎 가장자리와 끝을 보면 제각각 다르지요? 잎끝이 가장 요란하게 갈라져 있는 게 거북꼬리고요, 오리 궁둥이처럼 얌전하게 꼬리가 나와 있는 게 오리방풀입니다. 풀거북꼬리와 오리방풀은 잎가장자리와 끝이 비슷하긴 한데 잎맥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거북꼬리와 풀거북꼬리는 3주맥이 뚜렷합니다만 오리방풀은 잎맥이 우상맥이고 잎자루도 다릅니다. 오리방풀은 잎 밑부분이 점차 좁아져 잎자루 쪽으로 흘러내립니다. 거북꼬리나 풀거북꼬리는 잎 밑부분이 둥글고 잎자루가 길게 있습니다.

▲ 거북꼬리(좌상), 풀거북꼬리(좌하), 오리방풀(우)의 잎, 엇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있어 구별할 수 있다.

등칡
쥐방울덩굴과의 등칡이 무성하게 나무를 휘감고 올라갑니다. 잎은 칡을 닮고, 줄기는 등나무처럼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입니다. 4~5월 잎이 다 나기 전에 피는 노란색 꽃은 참 특이합니다. 마치 섹소폰 모양처럼 생겼습니다. 수정이 끝나 꽃은 다 지고 나면 바나나처럼 생긴 열매가 달립니다. 함께한 꽃동무가 기어이 열매를 찾아 냈습니다. 으름덩굴 열매는 먹을 수 있지만 등칡 열매는 전혀 먹을 수 없습니다.

▲ 등칡의 꽃과 열매, 줄기는 등나무, 잎은 칡과 비슷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미역줄나무
노박덩굴과의 미역줄나무 꽃이 한창입니다. 북한에서는 메역순나무라고 부릅니다. 저는 처음에 미역 냄새가 나서 그런 이름이 붙었나 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무성하게 뻗는 새순 줄기가 마치 미역 고갱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연초록 빛이 감도는 하얀색 작은 꽃은 별 볼 품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자잘한 꽃이 이삭처럼 풍성하게 모여 달려 짙푸른 잎과 대조되어 먼 곳에서도 쉽게 한눈에 들어옵니다. 군락을 이루어 피는 미역줄나무 꽃밭은 장관입니다.

▲ 미역줄나무, 무성하게 뻗는 새순 줄기가 마치 미역 고갱이처럼 생긴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꽃개회나무
북한산에서 보고 소개한바 있는 털개회나무는 이미 꽃이 지고 열매만 달고 있습니다. 키가 높이 자라는 개회나무는 아직 꽃이 남아 있습니다. 가까이 볼 수는 없어도 꽃이 흰색이라서 쉽게 구별할 있지요. 앞이 탁 트인 임도에 올라서니 꽃개회나무가 절정입니다. 꽃개회나무는 털개회나무와 잎이나 꽃 모양, 색깔, 향기가 흡사하여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어디에 꽃이 달려 피는지 꽃차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꽃개회나무는 햇가지에 달리는데 털개회나무나 정향나무는 전년지에 달리므로 서로 다릅니다. 개화기도 꽃개회나무가 털개회나무보다 더 늦는 듯합니다.

▲ 개회나무(좌상)는 꽃이 흰색이고, 햇가지에 화서가 달리는 꽃개회나무(좌하)와 전년지에 화서가 달리는 털개회나무(우)는 붉은색 꽃이 핀다.

초롱꽃
밤길 안내하는 초롱 같이 생겼다고 하여 초롱꽃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꽃이 큼직하고 아래를 향해 피는 하얀 꽃이 예뻐 원예적 가치가 충분한 자생종입니다. 꽃 모양과 그 이름이 같아서 한번 보고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꽃입니다. 섬초롱꽃은 붉은색을 띠어 초롱꽃과 쉽게 구분됩니다. 울릉도 특산종인 섬초롱꽃은 원예종으로 개발되여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도 많이 식재되고 있습니다.

▲ 밤길 불 밝혀 길 안내하는 초롱 같은 초롱꽃(상)은 흰색 꽃이, 울릉도 특산의 섬초롱꽃(하)은 붉은색 꽃이 핀다.

구슬댕댕이
구슬댕댕이는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야 볼 수 있는 인동과의 나무입니다. 가을철 빨갛게 탱글탱글 익는 열매가 인상적입니다. 소백산에서 가을에 본 구슬댕댕이 열매가 생각납니다. 꽃보다 열매가 더 예쁜 구슬댕댕이입니다. 꽃이 흰색으로 피었다가 노란색으로 변한다 하여 금은화라고도 부르는 덩굴성 나무 인동덩굴 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인동덩굴 열매는 다 익으면 검은색이 되는데 구슬댕댕이는 빨갛게 익습니다.

▲ 인동과에 속하는 구슬댕댕이 꽃(좌상), 가을철 붉게 익은 열매(좌하), 구승댕댕이 관목(우)의 전체 모습, 고산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희귀종이다.

고광나무
봄에 나는 새순에서 오이 냄새가 난다 하여 ‘오이순나무’라고도 하는 고광나무가 많이 보입니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것은 벌써 꽃이 지고 열매만 달고 있는데 올라갈수록 송알송알 달려 있는 순백의 꽃이 꽃다발처럼 만발하여 멀리서도 눈에 쉽게 띕니다. 하얀 꽃이 만발하면 밤에도 마치 불을 밝힌 듯 환하다고 하여 ‘야광(夜光)나무’라고 부르는 나무가 있습니다. 고광나무의 ‘광’도 빛 ‘光’자를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얀 꽃잎 4장이 달려 있는 양성화는 단아하여 고귀한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유럽 여행할 때 어느 공원에서 하얗게 핀 고광나무를 보며 그 우아함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꽃이 깨끗하고 향기가 진해서 조경수로 개발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나무가 될 여지가 많습니다.

▲ 순백의 꽃잎이 깨끗하고 단아하여 고귀한 기품이 있는데다가 향기가 진한 고광나무, 부가가치가 높은 조경수로 개발할 여지가 있다.

도깨비부채
깊은 산에 가야 만나 볼 수 있는 도깨비부채 하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손바닥 모양의 잎은 지름이 50cm나 될 정도이니 꽤 크지요? 크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홑잎이 아니라 작은잎이 5장으로 된 겹잎입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도깨비부채가 되었을까요? 작은잎 하나의 모양이 어때요? 꼭 도깨비나 들고 다니면 안성맞춤일 성싶은 부채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옛 사람들은 도깨비와도 아주 친숙했나 봅니다. 도깨비부채라는 이름 외에 도깨비바늘, 도깨비가지, 도깨비엉겅퀴, 도깨비사초, 도깨비쇠고비 등 도깨비가 들어간 식물명이 참 많습니다.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도깨비부채를 손에 들고 있는 도깨비가 연상되나요?

▲ 작은잎 하나가 도깨비가 들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인 성싶은 데서 유래한 도깨비부채, 손바닥 모양의 잎은 지름이 50cm나 될 정도로 크다.

다래, 쥐다래, 개다래
요즈음 차를 타고 산길을 가다 보면 하얀 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나무가 많이 보입니다. 이게 바로 개다래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이게 꽃이 아니라 잎입니다. 하얀 꽃은 잎 아래쪽에 들어 있어서 보일락 말락 합니다. 지나가는 곤충이 꽃을 찾아 오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개다래는 잎을 꽃처럼 하얗게 변색하여 지나가는 곤충을 혹하게 유인합니다. 수정을 하여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고도의 위장 전략입니다. 조금 높은 지대에 올라가면 잎이 붉은 색으로 변하여 붉은 꽃처럼 보이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쥐다래입니다. 고려가요 청산별곡 ‘멀위랑 다래랑 먹고 / 청산에 살어리랏다’란 귀절 속 다래는 잎이 변색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마도 다래는 꽃이 크고 향기가 좋아서 잎을 변색하는 위장 전술을 쓰지 않아도 곤충이 쉽게 찾아와 수정을 잘 시켜 주나 봅니다. 가을에 녹익은 다래는 달콤한 맛이 그만입니다. 하지만 개다래나 쥐다래는 맛이 좀 알알하여 먹기가 사나워 못 먹고 말려서 주로 약재로 쓰인답니다.

▲ 잎에 변색이 없는 다래의 꽃과 열매(좌), 잎이 하얀색으로 변하는 개다래의 잎과 열매(중), 잎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쥐다래의 잎과 열매(우)이다.

참조팝나무
중봉 쪽으로 가는 위쪽 도로가엔 참조팝나무가 찬란하게 피어 꽃길을 만듭니다. 우리나라에는 참조팝나무 외에 이른 봄에 피는 조팝나무를 비롯하여 산조팝나무, 당조팝나무, 인가목조팝나무, 갈기조팝나무, 덤불조팝나무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흰색 내지 연한 붉은색 자잘한 꽃들이 한데 모여 겹산방화서를 이루어 무리 지어 피는 꽃송이는 마치 꽃다발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피는 꽃이야말로 진짜 조팝나무라고 생각하여 '참조팝나무'란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관상 가치가 높은 우리나라 귀중한 생물자원입니다.

▲ 중봉 가는 도로가에 참조팝나무가 만발하여 탐방객을 환영하는 듯 꽃길을 만들어 준다.

(예쁜 꽃들이 너무 많아 한 편에 다 담기가 벅찹니다. 화악산 꽃산행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호균 객원편집위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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