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나 사물과 스치듯이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만남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연유가 있기 마련이다. 당시에는 아무 상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이 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는 경우도 있다. 낯선 대상을 함부로 대하면 후회할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지금의 경우는 어떤가. 모짜르트는 나와는 완전히 별 세계에 있던 인물이다. 낯선 인물이 2백 년을 거슬러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가 과연 나의 인생이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지금으로선 전혀 알 수 없고, 감조차 잡을 수 없다.

내가 12자리 숫자를 통해 모짜르트에게 말려들었다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모짜르트 또한 나에게 걸려들 게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상호성의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은 내가 무엇 때문에 걸려들었는지 모를 뿐이다.

모짜르트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고 보는 게 맞다. 유럽인과 아시아인이라는 인종적 차이점은 둘째로 치더라도 자란 환경이나 소질, 성향이 다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천재적 재능을 지닌 음악가'와 '재능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둔재'라는 점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고 삶이 엇갈린다. 그런 사람이 왜 나의 인생에 등장하게 된 걸까.

▲ Mozart Grave Vienna Leopold Mozart Mozart Memorial

모짜르트 전기 작가도 아니고 음악평론가도 아닌 주제에 모짜르트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12자리 숫자를 좀 더 연구해보고 진전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면 모짜르트의 망령도 나에게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모짜르트의 영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 따라 밤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마구 뒤엉켜 있었다.

가수면 상태에서 깊은 잠으로 빠져들기 직전이었다. 이상야릇한 기운이 침실에 가득 맴돌더니 어둠 속에서 어떤 사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얼굴을 보니 사진에서 보던 모짜르트의 모습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암만해도 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의식이 너무 또렷했다.

모짜르트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도 그를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모짜르트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무슨 말을 할 듯하더니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불을 켰다. 신체의 눈으로 본 건지 아니면 신체의 눈이 감긴 상태에서 영의 눈으로 본 것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신체의 눈이 감긴 상태에서 영의 눈으로 그를 본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걸까. 무슨 말을 하려다가 사라진 걸까. 영계에 있는 영이 이 세상에 있는 사람과 접촉을 하려면 그에 걸맞는 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내가 모짜르트에 빠진 나머지 헛것이 눈에 보인 걸까.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헛것을 본 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영적인 상식으로는 저승의 영이 이승에 나타날 때는 분명 피치 못할 사연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모짜르트는 반드시 다시 나타날 것이다. 나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 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속>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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