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배의 제작 방법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선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며 쉽게 만들 수 있고 함부로 부리기에 좋은 ‘해추선(海鰍船)’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해추선에 갑판만 깔면 어선 등이 되고, 오늘날에는 이 배가 모든 배의 기초가 된다. 이 배를 현재는 ‘채취선’이라고 부른다. 김이나 미역 등을 채취하는 데 사용한다고 해서 정해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는 해추선(海鰍船). 농토선(農土船), 토선(吐船), 해채선(海菜船)이라고 했다. 개인 소유의 배는 지토선(地土船)이라고 구분하기도 했다. 50년대 중반까지도 완도에서는 실제로 해추선(海鰍船)이라고 했다.

▲ 그림1-1 노 젓기 경기 모습
▲ 그림1-2 노 젓기 경기 모습

이 배는 비교적 작은 크기로 길이가 약 18자~20자 정도고 너비는 5자 정도다. 삼의 높이는 대략 1자5치 정도다. 매년 완도에서 장보고축제 때 노 젓기 경기를 하는 배다.

이 배를 만들려면 우선 도면이 있어야 하는데, 필자가 일을 배울 때는 그러한 도면이 없이 선생이 하는 것을 보고 그냥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다. 배를 만들 사람이 어떤 배를 몇 자 크기로 만든다고 하면 통상 해오던 경험에 비춰 만들어 왔다.

경세유표의 기록을 보면 배를 만들 때 자[尺]를 쓰지 않고 눈어림에 의존해 재목이 고르지 않아 배 모양이 달라지곤 했다. ‘바닥은 짧으면서 뱃전은 길고, 바닥은 좁은데 보[梁]는 넓으며, 몸통은 작으면서 키(舵)는 길고, 몸통은 큰데 돛대는 짧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맞지 않아 배(腹)와 등(背)이 움직일 때마다 서로 당겨져서, 키를 틀어도 뱃머리가 돌려지지 않고 돛을 펼쳐도 뱃머리가 앞서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본다면 손 가는 대로 배를 만들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다. 우리의 배 만드는 방법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흔히들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다. 이는 결코 옳은 일은 아니지만 목수들은 자기만이 알아볼 수 있는 가(假)도면을 만들어 쓰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는 목수는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것마저도 없이 진짜 주먹구구식으로 배를 만들다 보니 같은 사람이 만든 배라도 여러 척을 만들다 보면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지곤 했다. 그러나 노련한 목수들은 그렇게 해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배를 만든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 그림2 해추선
▲ 그림3 통나무 자르기
▲ 그림4 복원된 안압지 출토선

1) 선목(船木)의 준비
먼저 배에 사용할 나무를 준비해야 한다. 배에 사용할 목재를 준비하려면 먼저 수종을 정해야 한다. 수종의 선택은 내부와 외부재로 구분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선목(船木)은 소나무를 써왔다. 소나무 중에서도 적송(赤松, 홍송(紅松), 참솔)을 사용했다. 왕조실록에는 변산의 소나무(黃腸木)가 다 없어져 배무이 장소를 완도로 옮겨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배 만드는 소나무가 전국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만 자생했던 것 같다.

삼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연하기 때문에 내부용재로는 쓰지 않고 외부용재로만 사용한다. 내부용재는 지금도 소나무를 쓴다. 외부용재로 쓰는 삼나무는 수분 흡수력이 소나무보다 적기 때문에 배의 사용 연한이 길어서 선호된다. 그래서 배의 밑과 내부용재는 소나무를 쓴다. 지금이야 접안시설이 좋아서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자갈이나 모래 또는 바위 등에 그대로 배의 밑이 닿기 때문에 질긴 소나무를 썼다.

그럼 선 재목은 어떻게 고르는 것일까? 지금은 제재소에 가서 마음대로 나무를 골라올 수 있다. 옛날에는 선 재목을 구하기 위해서는 산에 올라 용도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서 벌목을 하고 그 나무를 사용할 곳(배 만들 장소)까지 옮겨와야 하는데 장정 10여 명이 동원돼도 힘겨운 일이었다.

2) 목도(나무 운반하기)
산에서 벌목한 나무를 사용할 장소까지 옮겨와야 했는데 당시엔 ‘목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목도란 다음의 그림처럼 옮길 나무에 줄을 걸고 가로 막대(목도채, 틀가락)를 끼우고 사람이 좌우에 서서 어깨에 메고 옮기는 것을 말한다. 나무의 굵기와 길이에 따라 6명이 하면 6목도, 8명이 하면 8목도, 10명이 하면 10목도라고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무를 산에서 내리는 데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모든 일이 산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한 사람만 잘못해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모두가 다칠 수 있었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 힘도 덜기 위하여 목도를 할 때 하는 목도소리가 있다. 일종의 노동요다. 옮기는 발을 맞추기 위한 구령과도 같다. 이 소리를 목도소리라고 한다.

▲ 그림5 목도로 나무를 옮기는 모습

여기에서 소개하는 목도소리는 완도지방에서 불리던 것이다.

허여- 허여차 허여 허여차 허여
내려간다 발 조심, 진데 있어 주춤주춤
허여차아 어여차, 허여차 허여 놓고.

‘진데’라는 단어는 비가 왔거나 물이 있어 질펀한 곳이 있으니 미끄러질까 조심하라는 말이다.  ‘놓고’라는 말은 목적지까지 다 왔으니 놓으라는 말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소리가 아주 힘이 있으면서도 경쾌해 듣고만 있어도 흥이 난다.

▲ 그림6 나무를 고르고 있는 모습

3) 톱질
목도로 옮겨온 나무들을 용도에 맞도록 켜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지금이야 제재소에 가서 켜오면 되지만 1800년대에는 그림7처럼 톱 위아래를 두 사람이 잡고 톱질을 해 나무를 켰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림8과 같은 톱으로 혼자서 판재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70년대까지 비교적 큰 재목들은 이렇게 해서 사용했으나 배의 내부용재인 고부랭이(늑골)처럼 작은 나무들은 도끼로 깎고 다듬어서 사용했다.

▲ 그림7 톱질
▲ 그림8 거두(록고, 흑대기)

지금은 선 재목으로 사용하는 삼나무 전량을 일본에서 손질하고 있다. 한때는 러시아산도 손질했으나 나무가 너무 강해 못을 치기조차 어려워 기피하게 됐다. 우리나라 삼나무는 크지 않고 옹이가 많아 일본산에 비해 강해 사용하기 불편하다.

4) 목재의 건조
배 만들 나무가 준비됐다고 바로 배를 만들 수는 없다. 목재가 건조되지 않는 상태에서 배를 만들면 나중에 나무가 마르면서 틈새가 생겨 배를 사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목재를 건조하는 데 최소한 90일을 잡아야 한다. 장소나 방법, 나무의 두께에 따라서 건조율과 건조일수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바닥에 고임목을 놓고 판재를 쌓아 올리는데. 판재와 판재의 사이에 1~1.5치 정도의 각목을 넣고 쌓아야 통풍이 잘돼 건조일수를 줄일 수 있다. 밀폐된 공간이나 건물 안보다 야외에서 나무가 더 잘 마른다. 다만 야외에서 말릴 때 눈이나 비를 막아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노지에 나무를 쌓으면서 피죽(나무의 껍질 부분, 목피)을 따로 모아뒀다가 마치 강원도의 너와집 지붕처럼 덮어주면 좋다. 나무를 쫙 펴서 말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럴 경우 나무가 뒤틀려서 사용하기 불편하다.

 

※사진 출전: 사진으로 본 조선 시대/ 겨레 과학기술 조사연구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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