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건강상의 사유'로 기간제 교사가 재계약 거부(이하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에 대해 필자는 학교장의 권한 남용을 막아달라며 당일 교육청 신문고에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청 답변은 학교장의 행위에 잘못이 없다며 교장의 권한 남용을 오히려 두둔했다. 교사로서 실망했고 힘이 빠졌다. 비정규직 교사의 교권을 마지막으로 보호해 주어야 할 교육청의 태도에 심한 배반감을 느꼈다. 답변은 너무 건조한 어투로 「공립학교 계약직교사 운영관리지침」(이하 지침)의 법조항 문구를 장황하게 인용한 내용이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그래도 다시 마지막으로 교육청에 호소했다. 법조항인 「지침」 의 정신을 살려 법 규정이 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살피어 지난 번 1차 답변을 재검토해 주길 다시 요청했다. 필자가 평교사로서 학교장의 행위를 두둔하는 교육청 관료의 답변이 잘못되었다고 감히 비판하는 이유는 다음 여섯 가지이다.

첫째 : 학교장의 행위는 민주적인 학교운영과 너무나 거리가 먼 독단적 행위였다.

적어도 기간제 교사를 '해고'하거나 새로 임용할 경우 교과협의회에 그 사실을 사전에 알리고 교과교사들의 의견을 청취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교장은 전혀 그렇게 하질 않았다. 민주적인 학교운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고' 사실이나 새로 기간제 교사를 뽑는다는 공모사실을 사전에 공식적으로 공지 받은 적이 없다. 새로 임용되는 기간제 교사 심사과정에 마지막 순간 교과대표가 참여했을 뿐이다.

누구나 몸이 아프면 쉴 권리가 있다. 정규직 교사는 1주일씩 병가도 내고 한 달이나 두 달씩 질병 휴직을 낼 수 있다. 그건 일하는 사람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픈 것이 해고의 사유는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해고'된 기간제 교사는 올해 3일 병가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해고'를 당했다. 그 기간제 교사는 주당 18시간 수업을 훌륭하게 수행했고 강도 높은 학교 업무도 야근까지 하면서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 기간제교사 차별 시정 권고 기자회견(2018년 9월 17일)

<전교조 기간제교사 특별위원회>와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간제교사 차별 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출처 :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모범을 보여야 할 학교에서 왜 정규직교사와 비정규직교사를 차별하고 배제하는가?

왜 교육청은 일선학교를 관리 감독할 책무가 있음에도 학교장의 행위를 두둔하는가?

서울시 교육청의 '배려와 존중의 교육공동체 건설'이라는 구호가 한갓 전시성 구호였는가?

필자는 교육청 관료들에게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어느 날 아무런 설명이나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교사가 사라졌을 때 느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이 모든 게 학교장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행위, 바로 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보교육감 시대! 교육감은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일선학교에서는 왜 아직도 비리가 많은 사립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구시대적 전횡이 재연되는가? 학생 한 명을 퇴학시켜도 이런 식으로 무 자르듯 하지 않는다. 일반 민간기업에서도 이런 식으로 해고를 당하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단계나 절차를 거치는 것이 통례이다.

두 번째로 교육청 답변에는 「지침」을 지켰다고 학교장을 두둔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지침」인 법의 정신을 외면했다. 아래 내용이 교육청 답변이다. 1차 답변이든 2차 답변이든 법조항을 인용한 내용으로 문구가 똑같다.

"1.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 우리 서울특별시교육청으로 제출한 민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 드립니다.

2. 귀하의 민원 내용은 ‘00고 기간제교사 재계약 관련 민원’ 건으로 이해됩니다.

3. 귀하의 민원을 제기한 건에 대해 검토한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공립학교 계약제교원 운영지침」에 단위학교 3개월 초과 임용 기간제교원은 공개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동일한 결원교원이 동일한 사유로 공백 기간 없이 휴직 등을 연장하여 기간제 교원을 임용할 사유가 발생할 경우, 기존 채용된 기간제교원이 공개채용으로 채용된 경우라면 채용공고를 생략하고 연장계약 가능합니다.

나. 00고등학교의 경우 2019년 3월 기간제 교사를 임용할 당시 공개전형으로 채용된 경우가 아닌 것으로 파악되었고, 이 경우에는 연장계약의 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며 00고등학교에서는 이를 근거로 5월 기간제 교사 임용 시 공개 전형을 실시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는 「공립학교 계약제교원 운영지침」에 따라 동일한 결원교원이 휴직을 연장한 경우 채용기간이 6개월 이상이면 공개채용으로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여야 하므로 학교장의 권한 남용으로 볼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교육청 답변에는 중대한 판단 잘못이 존재한다. '해고'된 기간제 교사는 출산휴가로 「지침」에 따라 3개월 '임의 채용'되었고 당시 학교장도 이를 결재한 당사자이다. '해고'된 기간제 교사는 이전에 공모절차를 통해 4년 넘게 우리학교에 근무해 왔던 분이다. 이미 검증된 분이다. 실제로 방과후 3학년 수업에서도 아이들이 많이 신청할 정도로 매우 성실하게 가르쳤던 분이다.

따라서 「지침」인 법조항이 추구하는 정신에 비춰볼 때 재계약 연장 시에 따로 공모 과정 없이도 우선적으로 계약 연장의 대상이 되어야 할 분이다. 해고된 기간제 교사도 재계약 연장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기대하고 있었다. 교육청은 자신들이 만든 「지침」, 즉 법의 정신을 지향하려고 하기보다 형식논리에 빠져 「지침」을 축자적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현행 「지침」은 지난해에 비하면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약자인 계약직 교사에게는 갑(교장)의 횡포를 막아주는 데 미흡한 게 사실이다. 형식논리에 부합한다고 법의 정신이 반영된 건 아니지 않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해고'된 기간제 교사는 '임의채용' 이전에 공모과정을 포함해 모두 4년 넘게 우리학교에 근무했던 검증된 분이라는 사실이다.

세 번째 새로 공모를 진행할 때 교장은 '해고'된 기간제 교사가 '공모에 응해도 뽑지 않겠다'며 다른 데 알아보라고 했다. 그 말은 공모에 응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실제로 전교조 분회장 자격으로 5/25일 항의하려 간 날 '공모에 응하지 말라고 했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투명인간이어야 했던 기간제 교사에 대한 차별과

이를 극복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도 교사입니다>(출처 : 한겨레 신문)

'공모에 응해도 뽑지 않겠다'는 자신의 언행이 부당노동행위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기에 변명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당사자인 기간제 교사에게 '공모에 응해도 뽑지 않겠다'고 하는 말과 자신은 '공모에 응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말은 정말 다른 의미인가? 교장의 그런 완고한 태도를 전해들은 해당 기간제교사가 어떻게 공모에 응할 수 있겠는가?

한 마디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변명을 하며 자신의 책임을 피해가는 교장의 태도를 교육청이 두둔하는 꼴이다.

네 번째 '3일 병가 등 건강상의 사유'가 해고 요건이 되는지 묻고 싶다. 법 규정 어디에도 그런 사유로 해고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감이다. 새로 오신 기간제 교사에게 정신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도 하지 못하고 피켓 시위도 하지 않은 채 참고 또 참았다. 학교를 관리 감독할 교육청의 현명한 처분만을 바라보며 기다려 왔다. 그러나 교육청의 2차 답변은 1차 답변과 똑같았다. 판박이였다. 3개월 '임의채용'이기에 「지침」에 따라 공모 채용한 학교장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통상 교사가 몸이 아파서 결근을 하면 다른 교사가 보강을 들어간다. 3일 병가로 학생들 '학습권 침해'를 운운하는 것은 교장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분이 너무 약하다. 아이들은 오히려 해고과정의 진실을 알게 되면 다음과 같은 충격을 받지 않을까? "아! 우리 사회가 무섭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렇게 무서운 사회였구나!"

이런 모습은 교육이 아니다. 더구나 교육공동체인 학교사회가 지향할 바가 아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지만 모범을 보여야 할 교육공간이기도 하다. 오히려 몸이 아픈 선생님을 대신해 다른 선생님이 가르치면서 배려와 협력, 그리고 약자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게 교육이자 학교가 보여주어야 할 모습인 것이다. 교육청의 답변은 영혼이 없는 모습과도 같다.

다섯 번째 '현실화하지도 않은 건강상의 사유'를 들어 '해고'한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이다. 생계와 관련된 '해고'행위를 무 자르듯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돌아가는 기 막힌 현실이 필자는 이해할 수 없다. 교장의 권한 남용을 교육청이 바로 잡아주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교장의 처사를 문제없다며 두둔했다. 비정규직 교사인 약자는 항상 이렇게 당해도 되는 것인가?

학교장의 자의적 판단으로 '해고'를 자행하고 상급기관인 교육청이 이를 두둔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인가? 「지침」, 즉 법 조항을 지켰으니까 문제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필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국민들의 판단을 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할 수만 있다면 교사들 탄원서도 조직하고 싶고 학교 앞이든 교육청 정문이든 1인 피켓 시위도 하고 싶다.

교육감님이 좀 보시고 판단해 주시라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평생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도덕과 가치를 가르치며 살아온 필자의 생각을 무 자르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사표(師表)는 되지 못했어도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온 삶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분노와 함께 교사로서 정의감에 상처가 깊다.

마지막으로 계약직 교사에 대한 임용 권한이 학교장에게 위임된 건 맞다. 그러나 교사에 대한 임면권은 본래 교육감에게 있다. 자신의 고유권한인 임면권을 행사하는 교육감조차 함부로 교사를 자르지 않는다. 하물며 위임된 권한을 지닌 학교장이 마치 자신의 고유 권한인 것처럼 마구 휘두르는 것은 위임규정의 정신에도 반하는 처사이다.

▲ 두 번째 임기 1주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2019년 6월 27일)

지난 해 조희연 교육감은 올해 학교마다 민주주의가 흘러넘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출처 : 한겨레 신문 신소영 기자)

진보교육감 시대! '배려와 존중의 교육공동체 건설'을 외치고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민주시민교육'을 역설하고 '민주주의가 흘러넘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교육감 스스로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교육청은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그 영혼 없는 답변에 절망감이 너무 크다. 현재 교장은 비판 성명서를 낸 전교조 서울지부장과 기간제 특위위원장 두 분 여교사를 허위사실 유포로 형사 고소한 상태이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 교육청은 자신이 내건 구호대로 학교장의 권위주의적인 처분을 바로 잡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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