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도에 쓰인 마리오 푸조 소설 <대부>는 이탈리아 마피아 ‘콜레오네’ 집안 이야기다. 마피아 두목인 '비토 콜레오네'는 도박, 주류, 밀매 등 사업을 하면서 살인도 저지르지만 나름 엄격한 도덕관념을 가져 가족과 친구들에게 만큼은 선량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다. 주위 사람들 부탁을 외면하지 않고 공정하게 잘 들어줘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비토라고 부르기 보다는 ‘대부’라 부른다. 비토 콜레네오는 총격을 당한 후 전권을 셋째 아들에게 넘기고 삶을 마감하는데 죽기 전 아들에게 귓속말로 한마디를 남긴다.

“Life is so beautiful”

오래 전 쓰였고, 영화로도 나온 <대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우리 실험실에 있는 친구 Xiaoru(사오루)와 대화를 하면서다.

▲ 우리 실험실 사람들. 가운데가 사오루

사오루는 중국 광저우에서 왔다. 소처럼 맑고 큰 눈에, 코는 시원스럽게 크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갖고 있는 연구 교수다. 사오루는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어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우리 랩에서 3개 국어를 써가며 일한다. 어릴 적 <노트르담의 꼽추>를 읽고 프랑스에 매료되어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박사와 박사 후 과정을 프랑스에서 했다. 우리 랩에서 부교수급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학생들을 먼저 배려하고 우리를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한다. 말을 할 때 절대 서두르는 법 없이 차분히 천천히 얘기하여 듣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이런 차분한 면 외에도 종종 재치 있는 한마디로 실험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한번은 동물실험실에서 나와 같이 쥐를 돌보다가 생각치도 못한 농담으로 나를 깔깔깔 웃게 만든 적이 있다. 암컷 쥐는 보통 6~7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다. 그런데 사오루가 관리하고 있는 암컷 쥐는 이상하게 새끼 2마리만 낳았다. 사오루가 이걸 보고 “지산! 내 쥐가 중국 정책을 따르고 있어”라며 씩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해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다. 사오루는 웃으며 “쥐가 1남 1녀 정책을 쓰고 있어!”라고 했다. 그제야 중국 산아제한정책에 빗대어 농담한 것을 알아차리고 한참 웃었다. 이렇게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오루는 여유를 잃지 않고 부정적인 상황을 위트로 승화시키는 재미있는 친구다.

이런 긍정적인 면은 사오루의 삶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오루 남편은 현재 중국에서 화학자로 일하고 있다. 남편과는 일 년에 2번 만나 약 2달간 같이 지낸다. 사오루는 남편 사이에서 3살 여아와 5살 남아를 두었다. 타지에서 일하며 혼자 2명의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실험실에서 같이 한 지난 1년간 단 한 번도 불평하는 모습,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학생들 실험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신경을 써준다. 실험실에서도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오루와 나는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실험에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 아니라 인생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한다.

한번은 사오루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사오루, 몬트리올은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보인 사오루는

“응... 몬트리올은 프랑스 영향을 받아서 사고방식이나 문화가 프랑스랑 많이 비슷하다고 들었어. 나는 프랑스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가 친숙해서 그런 문화가 자리 잡은 곳에 가고 싶었어. 또한 캐나다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잖아? 내 아이들에게 2가지 언어를 접하고 두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 그래서 몬트리올을 선택하게 되었지.”

“아 그랬구나.. 프랑스에서 보낸 시간이 좋았나 보네. 프랑스에서 박사과정하고 박사 후 과정 할 때 힘들지 않았어?”

“음.. 일은 많았지만 힘들진 않았어. 실험실 사람들과 늦게까지 일하고 다 같이 저녁과 와인 한 잔 하러 가기도 하고.. 박사 후 과정 중엔 보스가 내 연구에 지원을 많이 해줬어. 그래서 연구 진행이 잘 되었지, 매일 아침마다 설레며 연구실에 갔고 밤늦도록 일 했어. 지금은 물론 그렇게 연구할 순 없지.. 우리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 그렇겠다. 혼자서 아이 둘을 돌보는 거 정말 만만치 않을 거 같아. 대단해 사오루. 나는 나 혼자 사는데도 절절매는데”

“아이 둘을 기르는 건 쉽진 않아. 예전엔 늦게까지 연구도 하고 논문도 읽고 했는데 지금은 애들 동화책 읽어주느라 퇴근 후 일은 꿈도 못 꿔. 하지만 난 지금 행복해. 연구에 100% 집중하긴 힘들지만.. 아이들을 보면 아쉽지 않아 ㅎㅎ”

미소를 지으며 얘기하던 샤오루가 갑자기 생각에 잠긴 듯 표정을 보이더니 나에게 되물었다.

“지산 너 혹시 대부 소설 아니?”

“응! 당연 알지.. 왜??”

“응.. 거기서 대부가 죽기 전에 했던 말 있잖아.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난 그 말을 항상 생각해.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 내가 만약 내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연구에만 집중했다면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하기 힘들 거 같아. 나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가치를 선택했어. 그건 내 아이들이더라고. 아마 너는 지금 이해하기 힘들겠지? ㅎㅎ 나도 아이를 낳기 전까진 몰랐어.”

사오루 말에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행복은 그리고 추구하는 행복은 연구자로서 성공이다. 그걸 이루어야만 행복할 거라 생각했고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오루 얘기를 듣고 나니 행복의 조건은 한 가지만은 아님을 또한 성공과 아름다운 인생이 동일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 걸 눈치 챈 듯 사오루는 갑자기 나에게 소리쳤다.

“지산, 그렇지만 너는 지금 일단 달리면 돼!! Just do it!” 하고는 껄껄 웃었다.

나의 중심을 순식간에 확 휘두른 사오루는 다시금 내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조언을 훅 날려준다. 그리고 늘 그랬듯 웃음으로 마무리 해준다.

사오루가 내 옆에 있어서 참 좋다. 때론 지치기도 하는 실험실 생활에 사오루의 위트와 털털한 웃음은 활력소가 된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는 것도 행복의 조건이겠지?

▲얼마 전 보스 스테판의 별장에서 보트를 타는 사오루.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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