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 성산에 있는 대수상봉 밑의 벙커에서 <빛의 벙커:클림트> 전이 열리고 있어

▲ <빛의 벙커;클림트> 전을 하고 있는 벙커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판

나는 지난 6월 인터넷에서 내 고향 제주의 관광 명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제주에서 <빛의 벙커 : 클림트>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5년 전 동유럽을 여행할 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있는 벨베테르궁 미술관에서 클림트의 '키스'와 에곤 쉘러의 작품들을 만난 감동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작품이 제주에서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전시되어 관광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하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 <빛의 벙커: 클림트>전을 기획하고 구성하여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개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꼭 한번 가볼 만하다'고 강력히 추천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가봐야 되겠다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 이미 지난해에 오픈을 해서 올해 10월 27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이 기간 중 제주를 찾게 되면 꼭 들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더구나 클림트만이 아니라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까지 이번에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2014년 동유럽 여행 당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훈데르트 바서' 마을을 찾은 체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구미가 당겼다.  바로 그 마을에 있는 곡면으로 지어지고 나무가 울창했던 시영아파트를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이 '훈데르트 바서'인데, 이번 '빛의 벙커:클림트' 전에 그의 작품들도 함께 올려졌다는 것이 아닌가?

▲ <빛의 벙커>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한창 피어있는 수국 꽃들
▲ <빛의 벙커>를 향해서 걸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옴팡 밭'

나는 지난 6월 할머니 기제사가 있어서 고향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고향집에는 제주에서 1년살이를 하겠다며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부산의 양선생 모녀가 기거하고 있다. 제주에 다녀오기 며칠 전에 양선생한테 안부 전화를 하면서 " '빛의 벙커'라는 곳에서 '클림트전'을 한다는데 혹시 아느냐?"고 하였더니 이미 자신은 제주에 오기 전인 지난해부터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미 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제주에 오면 한 번 같이 가 보자는 것이 아닌가? 혼자 털레털레 가는 것보다 옆에 벗이 있으면 말동무가 되어 좋은 일이라서, 얼른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기제사 다음날 양선생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

서귀포 시내에서 성산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량 달렸더니 성산포 입구에 있는 고성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지도 검색을 하고 '빛의 벙커' 쪽과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검색하여 버스를 타고 찾아갔다. 네 정거장 정도 갔더니 '빛의 벙커' 입구가 나왔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보면 이곳 정류장에서 '빛의 벙커'까지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고 안내가 되어 있었지만, 그 버스를 기다리느니 걸어가면서 자연 풍광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걸어서 갔다.

 

▲ 2014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 때 찾았던 '훈데르트 바서 마을'의 시영아파트, 훈데르트 바서가 설계를 하여 만들어졌는데, 테라스 등 작은 공간에도 나무나 꽃들을 심고, 벽면들이 전부  곡선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빛의 벙커'는 대수산봉 바로 밑에 있었다. 올레길처럼 고즈넉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가면서 귤밭들도 지나고, 아로니아 농장도 지나면서 여러 가지  여름 작물들도 만날 수 있었다. 밭의 돌담들의 원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으면서 삼나무와 편백나무 등의 방풍림이 늘어선 길에서 산담으로 둘러쳐진 제주 특유의 산소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걸었다. '아왜나무'는 꽃이 한창이었다. 그 꽃에 앉은 '청띠제비나비'는 열심히 꿀을 빨며 꽃들을 넘나들고 있었다.  탐스럽게 피어있는 수국꽃 무리들, 이제 막 여물어가는 송악 열매들이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지형이 평지보다 좀 더 밑으로 꺼져 있는 낮은 지형의 밭인 '옴팡밭'들을 보면서 나는 양선생에게 "저렇게 움푹 파인 밭들을 4.3피해유적지인 '너븐숭이'에서 '옴팡밭'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았지요." "아, 그렇던가요?" 이야길 주고 받으며, 멀리 보이는 일출봉과 돌담, 제주의 집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광을 사진기에 담기도 하면서 걷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아마 셔틀버스를 탔으면 이런 재미는 없었을 것이다. 
 

 클림트 외에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동시에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까지 전시된다니 더욱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클림트야 많이 알려진 화가이지만, 훈데르트 바서는 그리 많이 알려진 사람은 아닐 것이다. 2014년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 들은 이야기는 "그는 재혼하여 한 때 일본인 부인과 같이 살았으며, 짝짝이 양말을 신고 다닐 정도로 굉장히 검소한 생활을 하는 환경운동가였다."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빛의 벙커'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해저 통신망을 보호하기 위하여 1990년에 만들어진 군사용 비밀 벙커이다. 근래에 개방이 되면서 '빛의 벙커:클림트'를 오픈하며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축구장 반 정도 크기의 세로 100m, 가로 56m, 높이 10m로 900평 규모에 27개의 기둥들이 벙커를 떠받치고 있다. 대수산봉의 산자락을 파고 들어가서 만들어진 벙커이기 때문에 출입문만 닫으면 빛과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되는 지하공간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다. 실내 온도가 16도 정도밖에 안되어 더운 날씨에도 이곳에 들어가면 아주 시원하다. 

▲ 작품전을 시작하자 마자 뜨는 영상


~ 미술과 영상, 음악이 만나 이루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AMIEX(아미엑스)>

2009년 프랑스에서 처음 개발하기 시작한 'AMIEX(아미엑스)'는 2012년 프랑스 남부 레보드프로방스 지방의 채석장을 개조해 '빛의 채석장'으로 첫선을 보였다고 한다. 2018년에는 파리의 낡은 철제 주조공장을 개조해 '빛의 아틀리에'를 오픈했으며, 제주의 '빛의 벙커'는 최초로 외국에서 오픈한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인 'AMIEX'(Art &Music immersive EXperience)는 수십 대의 빔프로젝터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미술작품들과 음악이 연출해 내는 새로운 형태의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빛의 벙커:클림트'의 리플렛이 소개하고 있다.
     

 
 바깥의 빛과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되는 곳이기 때문에 수십대의 빔프로젝터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영상은 세로 가로의 벽면은 물론 바닥에도 비치는데, 때로는 가로 세로의 벽면의 영상들이 겹치면서 독특한 영상 효과를 내기도 한다.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입체감을 표현하기도 하고, 화폭에 담겨진 작품들이 그림을 그리듯이 각 부분들의 화면들이 색으로 채워지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거울방이 있어 수십 개의 거울에 비추어져서 반사되는 수십 개의 영상들 또한 신비롭다.  한 코너에는 클림트 등의 원작을 영상의 특별한 기법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 길이가 100m이기 때문에 벽면에 영상을 통하여 비쳐진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원근감이 표현되어 있다.


 화가의 작품들이 영상 편집의 각종 기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다가왔다. 동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부분은 클로즈업 하여 더욱 돋보이게 하기도 하고, 긴 벽면에 여러 작품들을 동시에 늘어 놓으면서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을 하거나, 긴 통로에 여러 작품들이 동시에 진열되어 원근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하는 등 다양한 영상 기술들이 총 동원되고 있었다. 때문에 미술관 벽에 평면으로 전시되어 정지되어 있는 작품들이 아니라, 영상으로 다양한 형태로 살아 움직이는 효과가 도드라진다. 
 

▲ 한 벽면에 동시에 다양한 작품들이 영상으로 비춰져서 또 다른 예술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 클림트의 작품들이 영상을 통하여 이런 방식으로도 다시 탄생된다.
▲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들이 어둠과 빛의 조화를 이루어 빚어내는 또 다른 영상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 수많은 거울이 설치되어 반사에 반사의 효과를 표현하는 기법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영상기법에 더하여 영상에 어울리도록 선택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까지 가미가 되니 시청자들은 넋을 놓고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예술기법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 벽면에 같은 내용의 작품들을 비춰주기 때문에 돌아다니면서 보는 것보다 오히려 한 벽면을 향해서 앉거나 서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 '빛의 벙커' 운영자 중 한 사람에게 어떤 음악들이 선곡이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클림트나 훈데르트 바서가 살았던 시대의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들을 중심으로 선곡했지만, 그 외에도 작품에 어울리는 선곡된 음악들이 곁들여졌다고 한다.

▲ 벽면에 작품과 설명을 비춰주는 공간도 있었다. 클림트의 작품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9세기 말의 신고전주의적 화풍을 거부하고 '분리파'를 이끌면서 세로운 에술운동을 이끄는 중심인물이 된다. 고급과 저급, 성녀와 유곽녀 등의 이분법을 지양하고 총체적 예술을 추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안내 리플렛을 보면 "클림트는 분리파의 집 벽에 대표작인 <베토벤 프리즈, 1902년>를 그린다. 여기서 클림트의 화풍은 신고전주의에서 전면적인 상징주의로 진화하게 된다. 벽면을 황금으로 도색하여 장식주의의 특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후 클림트는 분리파와 결별한 후 시각과 색채에 대한 고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 풍경을 새로운 예술 모티브로 삼아 탐구를 시작한다.   ~ (중략) ~   클림트가 특히 기하학적 형태를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 중에 만났던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이다.

클림트의 황금시기인 1901년에 <유디트 1>이 탄생하는데, 가슴과 배꼽을 드러낸 황금색으로 장식된 기하학 배경과 문양에 둘러싸인 그림 속의 여인의 눈빛과 입술, 표정 등은 관능미의 압권이다. 이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키스>와 함께 클림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등장한다.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미술관에서 만났던 '에곤 쉘러'의 작품. 이번 <빛의 벙커::클림트>전에 에곤 쉘러의 작품들도 함께 사용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인 <키스>는  포옹을 하는 두 연인을 묘사하고 있는데, 작품 속의 두 사람은 클림트 자신과 그의 연인인 에밀리 플뢰게라고 한다. 기하학적인 문양과 황금색에 둘러싸여 두 사람의 구별은 사라진다. 여인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황홀경에 빠진 몽환적인 모습은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다. 그렇지만 클림트는 이런 작품활동을 하면서 대중들 앞에 잘 나서지도 않았고, 그의 삶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이번 클림드 전시에는 클림트와 분리파 운동을 했던 에곤 쉘러의 작품들도 등장한다.

 다음은 리플렛에 안내되어 있는 '훈데르트 바서(Hundert Wasser)'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다.
 "이번 전시에는 클림트가 주도한 예술혁명으로 점철된, 예술 부흥을 철저하게 구현한 비엔나 출신 화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 바서(1928~20000)의 작품을 몰입형으로 보여주는 설치예술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의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인간, 생명과 그 구성요소들의 면면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구스타프 클림트나 에곤 쉘러처럼 훈데르트 바서는 계획에 입각한 구도를 따른 구상방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또한 직선보다 즉흥적인 선, 그리고 불규칙적인 형태를 선호했다."
 
훈데르트 바서는 '직선에는 신이 없다'는 말로 유명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생활할 집들을 곧게 뻗은 직선으로 만들려 하는 사실이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소용돌이치는 모양의 곡선이나 나선으로 표현하였다. 건물의 기둥이나 분구대도 둥글게 만들었으며 벽면도 물결치는 모양으로 꾸몄다.

▲ 어린이들 그림 같은 독특한 표현 기법의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들도 영상과 음악의 조화를 타서 새롭게 탄생되고 있다.


나는 2014년 8월 비엔나를 여행하면서 훈데르트 바서가 디자인 한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라는 시영아파트를 찾은 적이 있다. 이 아파트는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조에 구불구불한 곡선을 조화시켜 지은 건물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을 사용하여 삐뚤빼뚤하게 그려 놓은 동화 속의 집 건물 같았다. 과감한 색깔에 불규칙적이고 기하학적인 실루엣을 종합하고, 기와와 나무, 자기 같은 자연소재를 최대한 이용하여 지어서 건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건축물이었다. 그 시영아파트 건너쪽에는 '훈데르트 바서' 마을이 있고, 그곳의 쇼핑센터도 그의 건축작품으로 곡면을 이용하여 건축되어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 '자연계에 직선은 없다' 말로 유명한 훈데르트 바서의 건축물 표현한 작품


클림트나 에곤 쉘러 등이 '분리파' 운동을 할 당시에 그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30여 년이 지나 태어났지만 훈데르트 바서도 비엔나 태생으로 지역적 연관성도 있고, 그들 분리파 예술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분리파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예술 세계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빛의 벙커:클림트> 전시는 제주 관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본다. 천혜의 자연상품만을 파는 것으로는 제주 관광의 한계가 있다. 볼거리, 즐길거리, 숙박, 교통 등 관광지로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빛의 벙커:클림트>와 같이 예술을 새로운 형태의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면 제주 관광의 품격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내친 김에 자그마한 몇몇 자연 동굴들도 이와 같은 예술 공간으로 활용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빛의 벙커:클림트>는 지난 3월 말에 개관한지 4개월만에 20여 만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내가 찾았던 날은 6월 중순 경인데도 평일이라 그런지 그렇게 붐비는 모습은 아니었다. 만약 올해 10월 말까지 제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빛의 벙커:클림트>는 꼭 한번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입장료는 일반 성인이 15,000원인데, 새로운 예술 장르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버려진 벙커 시설을 이용하여 방음, 방광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여 새로운 예술 영역을 체험하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영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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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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