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 한밤의 침입자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19.08.07l수정2019.08.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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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온 국민이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받았다. 피해자는 한국인만이 아니었다. 아마 일본인들도 아떤 형태로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일본 주가가 한국 주가보다 2배 이상 폭락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경제질서 교란으로 인해 아시아 주가도 대부분 폭락을 면치 못했다. 이 모든 일이 아베정부가 경제보복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각료회의에서 결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저녁 모임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잠을 청했다. 아내는 친정에 가고 아들도 1박 2일 놀러간 터라 집에는 나 혼자였다. 안방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이 있다. 얼마 전에 시집간 딸의 방에서 자면 잠이 잘 왔다. 그 방에는 일체의 가재도구가 없고 침대만 덩그러니 있어서 그런지 잠 안올 때 잠들기에 제격이었다.

딸 방에서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 방 옆에 붙은 화장실에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닫혀있는 화장실문 틈새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까 딸 방으로 올 때 분명히 깜깜했었는데 이게 어쩐 일일까?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다.

암만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습관적으로 불을 끈다. 더구나 아까 방을 옮길 때도 불빛이 비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잠든 사이에 누군가 침입한 걸까.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지고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잠이 다 달아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밤도둑

급작스런 사태에 신변의 위협마저 느꼈다. 어쩌지? 주방에 가서 칼을 가져와야 할까. 나를 방어하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칼은 방어용이기도 하지만 자칫 상대와 싸우다가 내가 찔릴 우려도 있다. 그래, 칼은 보류하자. 제일 좋은 건 야구 방망이일텐데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방어용으로 뭐가 좋을까.

서재에 있는 기념패가 생각이 났다. 묵직한 기념패는 단단한 유리라서 상대의 머리를 내치면 일거에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침대에 앉아 화장실을 응시하며 별 생각을 다해본다. 하지만 머리만 이리저리 굴려볼 뿐 몸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자칫 상대를 자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놈은 화장실에 들어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마 놈도 나의 등장으로 인해 당황했을 것이다. 몰래 도둑질을 하러 들어왔다가 화장실에 들렀는데 느닷없이 주인에게 발각된 도둑의 심정도 그리 편치는 않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의 동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갖 궁리를 다하고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112에 신고하기에는 상대의 실체가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태다.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일단 집 밖으로 몸을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건 비겁하다. 집주인이 도둑을 피해 자기 집을 비운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다. 내 몸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집은 내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실체를 확인해보자. 그래야 귀신인지 도둑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귀신이라면 어떤 형상으로 나타날 수는 있지만 물리적인 반응을 못할 것이고, 도둑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것이다. 화장실 문에 노크를 해본다.

'똑똑.'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도둑도 섣불리 반응하기에는 부담을 느낄 것이다. 상대가 느끼고 있을 긴장감이 나에게 온 몸으로 전해진다. 나도 초긴장 상태다. 도둑이 아니라면 귀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화장실 문손잡이를 돌려보니 돌아가지 않았다. 안에서 문을 잠근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귀신은 아니다.

도둑이 겁을 먹고 있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갑자기 문을 열고나와 나를 확 밀치고 도망갈 마음의 준비를 위해 심호흡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놈은 나의 반응을 주목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어떻게 아파트에 침입했을까. 현관문 비밀번호는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베란다 창문은 열려 있지만 고층이라 올라오기가 어렵다. 저층 빌라에는 가스배관을 타고 오른다지만 고층 아파트의 경우는 배관이 없다.

그렇다면 놈은 보통 도둑이 아니다. 비상한 재주를 지닌 비범한 도둑이다. 하지만 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를 모른다. 놈은 자고 있는 나의 모습만 봤을 뿐 나의 실체에 대해 모르고 있다. 상대의 실체를 모르는 건 놈이나 나나 매한가지다.

나는 밖에 있고 놈은 안에 갇혀 있다. 놈은 화장실에서 취할 무기가 없지만 나는 무기로 삼을 만한게 꽤나 있다. 놈은 그 점을 염려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놈은 나보다 더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책 없이 나왔다간 나에게 제압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더불어 112에 신고라도 하는 날이면 놈은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될 것이다. 여기는 홈그라운드다. 내가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할 건 없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두 시간 동안이나 나는 놈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일단 거실에 나와 집안의 불이란 불은 다 켰다. 환한 상태에서 놈이 어떤 거취를 취할지 지켜보는 게 집주인으로서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신 아파트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베란다 창문은 열려 있는 채로 두었다. 놈의 탈출구를 보장해주는 게 나로서도 유리하지 않겠는가.

이제 슬슬 작전 개시할 때가 되었다. 나는 거칠게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힘찬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서로의 실체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목소리로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다. 내 목청 큰 것을 이럴 때 말고 언제 써먹겠는가.

"화장실 안에 있는 자는 듣거라. 현관문 열어놨으니 얼른 나가라. 좋은 말할 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결정적인 쐐기를 박는다.

"나도 너의 얼굴을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르니, 조용히 나가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

나는 놈의 동태를 살피며 거실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TV를 켰다. 소파 옆에는 무기로 쓸 수 있는 기념패를 가져다 놓았고 혹시 몰라 카터도 비치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아침 6시다.

놈은 화장실에서 잠이 든 걸까. 꼼짝도 않은 채 화장실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문은 잠겨있는 상태였다. 밤새 신경을 써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놈이 화장실에 있는데 잠을 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깜박 졸았다. 잘해야 이삼분 정도 졸다가 깼다. 기분이 묘해 얼른 화장실에 가봤더니 어느새 화장실 문이 열려 있었다. 전기불도 꺼져 있었고, 화장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놈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내가 잠시 졸은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조는 걸 어찌 알고 그 틈에 도망친 걸까. 신출귀몰한 놈임에 틀림이 없다. 화장실 안에는 누가 왔다간 흔적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놈은 귀신들린 사람이거나 아니면 사람 행세를 하는 귀신일지도 모른다.

놈은 화장실 안에서 4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두려움과 나의 두려움 중에 어느 게 더 큰지 생체실험이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화장실 안에서 불빛을 비치는 것만으로도 나를 겁박하여 두려움에 떨게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의연한 태도를 보여서 외려 겁이 난 걸까. 어찌됐든 놈은 갔다. 놈의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다치거나 손해 본 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갑작스레 잠이 쏟아졌다. 깊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가 꿈속에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귀태는 예전에 비해 그 위세가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 귀태는 아베였다. 아베는 밤새 숨어들었다가 귀신처럼 사라진 밤도둑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남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해 귀신처럼 들어왔다가 잔뜩 위협만 준 채 제 풀에 꺾여 꼬리를 내리고 사라진 그 신출귀몰해 보이던 도둑 말이다.

▲ 향

안식향나무의 향이라도 피워야 하는 걸까. 동의보감에 의하면 안식향(安息香)을 태우면 명치 밑에 있는 악기(惡氣)와 귀주(鬼阻), 사기(邪氣)나 헛것에 들린 귀태(鬼胎)와 고독(蠱毒)을 낫게 한다고 한다. 한 잠을 푹 잔 후에 목욕재계하고 안식향이라도 태워 아베의 귀태(鬼胎)에서 발산되는 사악한 악기(惡氣)가 한반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쫓아버려야겠다는 다짐을 잠결에 하면서 다시 끝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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