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2018 어둑했던 시간의 기억

그 해 2018년, 나는 평택에서 일했다. 

토요일 늦게까지 일하고 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고속철에 오르면 절로 눈이 감기곤 했다. 고향 역에 내리면 시곗바늘은 어둑한 9시. 나는 그 어둑함을 건너 집에 들렀다 하루를 자고 다시 역에 나와 기차를 탔다. 반복적인 짧고도 긴 여정, 그 피곤함을 조물거린 건 역사(驛舍)를 떠도는 사람들이었다.

1. 이부자리의 그녀

그녀는 이부자리를 넓게 폈다.

그날 나는 이유는 잊었지만 다소 늦게 내려왔다. 그때 그녀를 보았다. 계절은 겨울인데, 그녀는 편의점과 접해있는 바깥의 도로위에 이불을 깔고 있었다. 길 위가 안방인 것처럼, 그녀는 두꺼운 이불의 끝을 잡고 이불을 펼친 다음 요 위로 이불을 내렸다. 춥지 말라고 단단히 깔아주던 어릴 적 이불의 기억이 지나갔다. 나는 홀린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장자리가 뜨지 않도록 토닥일 때쯤 늦었기에 더 지체할 수 없었던 나는 자리를 떴다.

나는 그녀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 다음 주에도, 그 다음 달에도 그녀를 결국 만나지 못했다. 편의점 비친 불빛에 환하던 두껍고 넓은 이부자리만 기억에 남았다.

2. 과자를 주워 먹던 남자

과자봉지에서 과자가 흘렀다.

그 때 나는 일터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대합실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대합실 의자에 앉은 중년의 남자는 손가락 사이로 과자를 반쯤 흘리면서도 먹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내 눈이 닿은 곳은 그 남자의 아래쪽이었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흘린 과자를 주워 먹고 있었다. 배가 고팠는지, 과자가 고팠는지는 알 수 없다. 과자를 흘리는 남자도, 주워 먹는 남자도 서로의 존재를 알면서도 마치 서로가 존재하지 않는 척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과자를 주워 먹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만원 한 장을 손에 쥐여 주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그는 주워 먹던 과자를 쥔 채 나를 바라보았다. 과자를 먹던 남자도 먹던 동작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나는 뒤돌아서서 개찰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3. 담배를 얻어간 남자

그는 가볍게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전날 그를 처음 보았었다. 역 광장의 흡연구역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을 때였다. 흡연구역은 쓰레기통과 가까이 있었고 여행객들이 버리고 간 음식물들을 노숙인들이 다가와 먹을 만한 것들, 쓸만한 것들을 가져온 배낭에 차곡이 쟁이고 있었다. 어쩐지 답답해져서 세 대째의 담배를 꺼내 붙였을 때 그가 다가와 담배를 청했다. 어둠 속에도 서글서글한 인상, 깔끔한 옷차림이었다. 갑을 확인해보니 피지 않은 담배가 반이나 들어차 있었다. 통째로 갑을 건네자 그는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허리를 굽히곤 돌아섰다.

다음 날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그를 다시 만났다. 그를 또 만날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미리 한 갑을 새로 사두었었다. 자리를 잡고 담배를 뜯어 한 대를 꺼내는데 몸을 돌리는 그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니 그냥 몸을 돌린 게 아니라 말했듯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예측을 벗어난 해후, 나는 연달아 두어 대를 더 피워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부산역 분수대의 화려함은 어둠 속에서 유독 빛난다

평택의 일은 그 해 끝났고, 이후 다시 부산역에 가보지는 못했다.

기억한다.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표식을 몸에 두른 늙은이가 있었다. 병든 몸과 떨리는 눈빛으로 그는 내가 부산역으로 오가는 내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도, 이부자리를 소중히 챙기던 그녀도, 흘린 과자를 주워 먹던 사내도, 예의 바르게 담배를 얻어가던 그 남자도 모두가 사라지고 변하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켰다.

그때의 어둠은 그 모두를 감추었다. 추억도 마음도, 그리고 지금은 과거라고 불러야 할 우리의 현재까지. 그들은 여전히 역 앞, 오가는 어둠에 의탁하여 언젠가 오게 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오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만약 오게 된다면, 더불어 내게도 쉴 곳이 주어질 것인가......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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