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비서(天武秘書)
천무비서(天武秘書)
- 경공편(輕功篇)
- 이 기 운
눈물 섞인 빵도 모자라면
비굴함을 양식으로 삼으라
구푸리고 구푸리며
공처럼 차여 굴러다니기도 하리라
와신상담이라든지,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난다는 말에 지칠 무렵
그대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가리라
궁신탄영(弓身彈影)
사랑을 잃고 울던 소년이
적을 향해 돌진한다
구름같이 에워싼 무리
이란격석(以卵擊石)이라
창칼에 수없이 찔리고
온 몸의 피를 다 쏟아내고
포로 되어 꽁꽁 묶인다
원한에 몸부림치다가 달은 기울고
온 몸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원망도 두려움도 사라지더니
모든 굴레가 벗어졌다
소년은 일어나 풀잎 위를 달린다
초상비(草上飛)
살면서 무엇엔가
쫒길 때가 있도다
막다른 길에 들어서고
건널 수 없는 강에 내몰리기도 하도다
그래도 갈댓잎 하나 물에 띄우고
조각배 삼아 그 위에 뛰어올라
바다 같은 강물을 건너가니
형체는 있으나
속의 살과 뼈, 오장육부가 다
녹아지고 바람이 되었도다
자기를 비우고 비우면
그와 같이 되리로다
일위도강(一葦渡江)
맘 허전한 어느 날 밤에
오랜 벗의 초옥(草屋)에 가서 늦도록
수담(手談)을 나누었다 깊은밤
밖에 나와 보니 눈 내려 아득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그냥 걷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때로는 목표를 잃고 방황한들 어떠리
네 눈물을 외면했던 죄악을 짊어지고
백년을 떠돌아도 좋으련만
집으로 가는 길이 눈발 속에 환하다
눈 위를 걷는데 발자국이 없다
나는 몽중인(夢中人)인가 그림자인가
답설무흔(踏雪無痕)
바람이 분다
파도가 친다
바다 저편 폭풍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울부짖는 사람들 있으니
내 저들에게 달려 갈 것이라
자기를 향한 연민은
깊은 물에 가라앉을 뿐이지만
남을 향한 큰 사랑은
결코 수장(水葬)되지 않으리
피 흘린 그 사람 닮으려는 사람아
물위를 걸어보라
등평도수(登萍渡水)
잊을 수는 없지만 그냥
살 수는 있다
어쩌면 천년쯤 걸리겠지
그래 하루하루 지나가게 하면서
슬픔을 떨쳐 버리는 시간
근심걱정 다 잊어버리는데 필요한 날 수
그런데 너는 이미 천년의 세월을 참았다
너만의 고통과 외로움의 시간은
며칠이든 몇 달이든
이미 천년이 아니더냐
일어서라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기쁨을 찾아보아라(네 발밑부터)
아무리 큰 바위로 짓눌러도 깨어지지 않고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그런 기쁨,
기쁨을 모으며 살아가는 매일이 되게 하라
네 눈물항아리를 기쁨의 구슬로 가득 채우면
그대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리라
어기충소(御氣衝遡)
불쌍하다
살생의 날들이여
불쌍하다
내가 죽인 영혼들이여
남을 죽인 내 영혼이여
불쌍하다
땅에 사는 사람 모두 불쌍하다
나는 죽으리라
너 불쌍해서 내가 죽으리라
너 사랑해서 나는 죽으리라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아도
사랑위해 나는 죽으리라
정말로 죽기 전에는
하늘의 일을 모르는 법,
푸른 하늘을 걷는 그대
얼마나 죽고 죽었는가
능공허도(凌空虛道)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