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101] 대만 사람과 사업하기ㅡ 光群雷射(1)

2020-10-07     김동호 편집위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자주 되새겨봅니다. 어느 순간의 짧은 눈빛 혹은 한두 마디 이야기가 어떤 일의 동기가 되기도 하고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비즈니스의 시작과 끝은 만남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지요. 출생에서 죽음까지 만남의 연속인데 되돌아보니 모두가 필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불평과 비난으로 10년의 만남을 유지한 나와, 처음 만남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반가운 미소를 전하는 또 다른 내가 10년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종종 그려보곤 하지요.

1996년 중국의 대만 해협 봉쇄 후 수입이 없던 97, 8년 가을로 기억합니다. 한국에서 스틸 볼을 수입하겠다고 자주 연락을 취하고 있던 JIE WANG의 Mr 鄭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포장재 전람회에 대만 업체가 참가하는데 아는 친구가 가니 시간이 되면 도와주라는 요지였지요.

당시는 일산 KINTEX와 학여울역 SETEC 전시장이 없던 시절, 한국에서 규모 있는 전시는 삼성 코엑스에서 열렸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홀로그램이란 단어가 낯설던 시절에 대만 업체에서 홀로그램 필름을 전시한다고 하여 전람회 오픈 전날 부스로 찾아갔지요.

그동안 연락을 취했던 Mr 鄭의 친구 조 쉬가 光群雷射 무역부장이란 명함을 주었습니다. 함께 온 회사 동료와 부스에 패널 몇 개 걸고 가져온 필름 바닥에 줄지어 세우는 거로 어설프게 끝내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눈에 자극적이고 빛에 어지럽게 반사하는 홀로그램은 뭔가 불편하고 정이 가지도 않습니다. 또한 영어단어로만 접했던 홀로그램의 반짝이는 자극에 실망도 했고요.

하지만 홀로그램 업계에선 연구실에서만 존재하던 기술을 상용화하여 성공한 업체로 널리 알려졌고, 첨단 기술 분야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대만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신주(新竹)과학기술단지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나를 믿어서 그랬는지 전람회를 찾는 사람들이 모두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지 한국어 통역도 없이 왔습니다. 친구의 부탁이기도 하고 바쁠 일도 없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전시장에 나갔습니다.

현란하고 자극적인 필름에 아주 가끔 기웃거리는 관람객이 반가울 정도로 한산했습니다. 그들의 가벼운 질문에 통역하다 보니 제품에 대해 점점 알게 되고 나중에는 거의 나 혼자 부스를 지키는 꼴이 되었습니다. 3일째인가 남자 둘이 곧장 우리 부스로 찾아와 명함을 건네며, 미국 바이어가 내년도 쇼핑백에 홀로그램을 적용할 거라고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업체가 당시 미국 쇼핑백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光群雷射는 형 알렉스와 동생 대니얼 형제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상장하면서 형은 회장, 동생은 사장을 맡게 되는데, 당시에는 동생 대니얼이 국내외 영업을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생 대니얼이 중국에서 일을 보고 한국에 들러 두 직원에게 보고를 듣더니, 저에게 자기들 제품 전량에 대한 독점권을 줄 테니 한국 시장을 맡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더군요.

당시 직원도 없이 혼자 오피스텔에 있으며, 나의 능력이나 경력이 부족하니 光群雷射를 위해서 좀 더 합당한 한국 파트너를 찾아보라며 거절했지요. 다음 날 대니얼이 귀국하고, 전시장에서 조 쉬가 제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더군요. 저에게 바보 같다며 대니얼이 너를 얼마나 좋게 봤으면 그런 제안을 했겠느냐며, 대만에서는 光群雷射에서 생산하는 홀로그램 제품 중, OPP, PET, PVC 홀로그램과 홀로그램 박(Hot Stamping Foil) 중 한 품목만 가지고도 먹고산다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덧붙여 한국의 모 회사 대표가 찾아와 한국시장에 대한 독점권을 달라고 요구한 상태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대만인들의 특성상 누군가를 친구라고 소개하면 그 사람도 친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Mr 鄭이 조 쉬에게 저를 거의 공자 동생쯤으로 과장했을 거고, 그 정보는 살을 붙여 대니얼에게 전해져서 그런 제안을 했겠지요. 단순히 누군가 나의 도움을 요청하기에 그냥 도와주었을 뿐이고, 밥값은 그들이 회사 경비로 처리한다기에 부담 없이 먹는 정도였지 기대를 했던 것은 없었습니다.

이렇다 할 상담이 없이 끝나가던 마지막 날, 우리는 주최 측에서 주는 선물을 받고 짐을 꾸리고 있는데, 한 건장한 중년인이 들어오더니 미안하지만 상담이 가능하냐고 묻더군요. 러시아에서 귀국하는 길에 공항에서 전시장으로 직접왔다고 합니다. 러시아 시장에서 홀로그램 필름을 찾는다며 자기에게 공급이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삼성 직원으로 러시아에 파견 나갔다가 그곳에서 사업을 하게 된 이야기와 러시아 시장 동향도 들려주더군요.

전시장에서 상담했던 쇼핑백 회사 담당자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쇼핑백과 포장지 시장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의외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다 러시아에서도 관심을 가지니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 연휴가 지나고 조 쉬에게 光群雷射를 방문하겠다고 연락했습니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기술. 1995년 42세로 요절한 중화권 최고의 가수 덩리쥔(鄧麗君, 테레사 덩)을 무대로 불러옴.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